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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에게 매우 경사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학기술인들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자신하며 우리 학교가 개교한 지도 벌써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며 텅 빈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동상 좌대를 매일 마주치는 우리 포스테키안도 복잡한 마음이 들 것이다.노벨과학상이 지닌 의미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여부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성취 수준을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반적인 세상의 시선에 마주칠 때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이해할 만하다. 과학기술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지금 수준의 성과를 거두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그깟 노벨상이 뭐라고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가. 그깟 노벨상이 뭐길래 노벨상을 받지 못하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달성한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노벨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은 과학기술인들을, 노벨상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의 처지로 몰고 있다. 순수한

사설 | times | 2024-10-30 13:00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글로벌 경쟁의 심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이에 우리대학은 △지산학 간 △국가 간 △학과 간 경계를 허물고(3無),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지원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오픈 커리큘럼 기반 교육으로 혁신하고자 한다. 제도적으로 전통적인 학문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고, 지역 수요 현장 중심 산업인력부터 핵심 연구인력까지 전 영역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자 우리대학만의 오픈 커리큘럼 기반 융합학부(School of Convergence Science and Technology)의 신설과 융합전공의 도입이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변화를 넘어, 미래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시도이다.융합학부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과 개방성이다. 기존의 학과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다양한 융합전공을 부전공 또는 복수전공 형태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학생들의 관심사와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복잡한 현실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사설 | times | 2024-09-27 20:22

개교 이래 포스텍은 세계의 정상을 향해 달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포스텍은 글로벌 대학이 됐다. 그런 포스텍 앞에 이제는 글로컬 대학으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임무가 놓여 있다. 글로컬이라는 수식어는 상반되는 두 단어, 글로벌과 로컬이 모순어법적으로 합성된 옥시모론이다. 글로벌은 보편성을, 로컬은 특수성을 가리키는 말이니 글로컬은 ‘보편적 특수성’ 정도를 의미하는 논리적으로는 모순된 말이다. 시대적 요청들은 종종 글로컬이라는 단어처럼 논리적 모순으로만 들리는 옥시모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환경 파괴의 주된 원인이 되는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이란 수식어를 더한 녹색 성장이 그랬다. 또한, 경제 민주화, 기업 사회책임, 사회적 기업과 같은 말들도 논리적으로 대립하는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일종의 옥시모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환경과 성장을 동시에 그리고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를 모두 함께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의 저자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이라는 책에서,

사설 | times | 2024-09-06 18:45

우리는 모두 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주변에서 떼를 쓰는 아이들을 본 경험이 있다.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떼를 쓰면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에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물론 떼쓰는 것도 필요하고, 떼쓰는 아이로서는 무엇인가 불편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니 들어 달라고 울거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떼쓰는 아이들을 보고 자랐고, 형제자매들이 고집을 부려서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어갈 때 주변에서 바라보며 느낀 경험은 다양할 것이다. 이미 성년이 된 후에도 사회나 직장에서 동료나 선후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탁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나도 한번 나의 욕심을 위해서 떼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 번씩은 가져봤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은 원하는 것을 위해서 떼쓰고 고집도 피우는데, 가만히 있는 나는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가져봤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이나 목적만을 위해서 큰 목소리를 내거나 떼쓰는 사회 분위기가 당연한 것처럼 경험한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은 뒤돌아보기도 한다. 과학고를 졸업

사설 | times | 2024-06-12 16:09

모범생은 학생의 통상적 정의 범위 내에서 수행하는 행동이 타인의 모범이 되는 학생을 의미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업적 역량과 성과가 뛰어난 학생이 모범생이라는데 이견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범적인 부모의 정의는 무엇인가? 모범적인 인공지능 엔지니어의 정의는 무엇인가? 모범적인 인생·사회·국가의 정의는 무엇인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로, 모두 개별적인 담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모범생의 정의에 대한 답변은 왜 상대적으로 쉬워야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본 글은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나 사교육의 폐해에 대해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범생들의 학창 시절 이후에 대해 잠시 논하고자 한다. 모범생들의 양성은 장차 모범적인 사회인들의 출현을 야기하고, 나아가 모범적인 사회·국가 구성의 기본 전제가 된다는 논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받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많은 폐해와 부작용의 출현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국가 발전의 주요 기인 요소였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교육 체계 수립 입장에서 매우 설득력이 높은 엘리트 양성 접근법이다. 정량적이고 분명한 모범생의

사설 | times | 2024-05-22 15:48

올해 4월 30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우리대학을 설계하고 개교 이후 8년간 초대 총장으로 재임한 무은재(無垠齋) 김호길 박사의 서거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아직은 할 일이 많았던 향년 61세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너무 허망하게 떠나버렸지만, 그가 남긴 혁신과 창의의 족적은 단기간에 우리대학이 한국은 물론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국내/세계대학 순위가 한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수준을 반드시 정확하게 포착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1998년 아시아 과학기술대학 1위, 2010년 세계대학 28위 등을 차지하며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NTU)과 홍콩 과기대학(HKUST) 등 신흥 유명 대학 설립 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는 점은 분명 우리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대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영국의 타임즈고등교육(THE)이 개교 50년 이하의 세계대학들을 대상으로 산정한 2023년도 세계신흥대학 평가에서 우리대학을 벤치마킹해 설립된 난양이공대학과 홍콩과기대학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사설 | times | 2024-04-22 17:35

한 사회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고도의 과학화기술화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적 전문지식은 공적 의사결정에서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중요한 공적 의사결정을 오로지 과학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과학기술적 전문지식을 탐구하는 행위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행위이지만, 사회의 공적 의사결정은 정치적 행위이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의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순간 전문가들의 의사결정은 과학적 논리만이 아니라 정치적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적 논리의 핵심은 민주주의이다. 전문가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대립과 긴장의 관계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에 의한 공적 의사결정을 주장하는 전문가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적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동등한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인해 비과학적인 ‘잘못된’ 결정이 내려져 공동체에 해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중우정치’라는 이름으로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제기되어온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자기 스승이

사설 | times | 2024-03-22 18:22

2024년 1학기가 시작됐다. 겨울을 묵묵히 잘 견뎌온 나무의 잎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봄은 오고 있지만 최근의 여러 상황은 봄이 아닌 깊은 겨울 속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현상과 이에 따른 학교들의 폐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라는 말처럼 수도권에서 먼 남쪽 지역의 대학들부터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수도권에서 매우 먼 거리에 있는 우리대학에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도 고려의 대상이다. 우리대학에는 여전히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의료계에 쏠려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를 선도할 대학의 지원자들은 줄어들 것이요, 기존 학생들마저 이공계로부터 눈을 돌리게 될까 염려스럽다.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포스텍 2.0’으로 불리는 제2 건학 추진 계획이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33년까지 총 10년간 1조 2천억 원이라는 사업예산이 혁신적인 방안으로 우리대학의 여러 분야에 투입돼 새로운 도약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 하니 큰 기대를 하게 만든다.그렇다

사설 | times | 2024-02-29 19:58

2023년도 학위수여식을 통해 800명의 포스테키안들은 이제 사회로 나아간다. 각고의 노력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선 졸업생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이들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뒷바라지해 주신 학부모님들에게도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들을 지도하고 지원해 주신 교수와 직원, 그리고 재단에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을 경험하고 있다. 문명사적인 변혁의 시대라고 할 만큼 그 변화의 폭과 속도가 놀라울 정도이다. 이런 변혁의 원동력은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다. 과학기술이 이제는 전문가들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또한 환경, 에너지, 보건, 식량,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시대적 과제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대학 졸업생들에게는 시대적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에 따른 역할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제 교정을 떠나는 졸업생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전한다.우선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짧게는

사설 | times | 2024-02-03 15:37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언제나 새해가 오면 이전을 되돌아보며 액운을 떠나보내고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한다. 매해 반복되는 일이라 다소 식상하거나 작심삼일이 돼 겸연쩍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계획을 짜고 다짐을 새로 하는 일의 의미는 크다. 우리대학은 작년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글로컬대학30’에 선정됐다. ‘글로컬대학30’은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지역과 대학 혁신을 선도할 대학을 지원한다. 특히 그간 정부 주도의 획일적 기준을 제시하던 방식을 탈피해, 각 대학이 주도하는 자율적 혁신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대학 내외부의 벽을 허물고 산학과 지역 협력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을 만든다. 이를 위해 대학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하여 정부에 제안하고,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우리대학은 ‘지역에 뿌리내려, 세계로 뻗어나가 열매 맺는 글로컬대학’을 비전으로 새로운 대학 발전의 모습을 제시했다. 우선 전공과 시공간의 경계를 없애는 3무(無) 수요자 중심의 교육 혁신을 내세웠다. 지역과 산업, 대학 간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첫 번째 ‘무’이다. 이를 위해

사설 | times | 2024-01-01 19:58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넘어 지구촌 전반의 국가·진영 간 갈등의 확산 속 우리나라와 세계는 경제·기술 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등 기존 과학기술 협력 체제와 국제 질서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따르면 “오늘날 세상에서 어떤 나라도 과학기술 없이 혼자 존립하거나 번영할 수는 없다.” 사실 글로벌 무대에서 펼쳐지는 세상의 엄청난 미래 변혁의 기저에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우주 △해양 등 분야에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발한 협력과 치열한 경쟁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외교·안보 측면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최근 과학기술 외교와 경제 안보가 부각되고 있다.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견제 강화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기존 무역 제재 범위를 넘어 기술 및 첨단산업생태계의 제재로 진화함에 따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더불어 첨단·신흥 기술과 국제 정치가 결합하는 기정학이 떠오르고 있다.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외교 △안보의 융합에 주목하고, 통상정책뿐 아니라 공급망

사설 | times | 2023-11-07 20:32

부조리가 판치는 이 세상에 우울해져 갈 때면, 나는 언젠가 진실을 보증하는 엄밀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그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본다. 일찍이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류가 없는 총체적인 추론체계인 ‘보편과학’을 구성하는 것이라 믿었다. 오직 하나의 명료한 의미만을 가지는 보편기호와 이들을 타당하게 조합하는 보편법칙들. 이들로 이 현실 세계와 언어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은 단지 이 체계를 분석하는 기계적인 일로 깔끔하게 환원된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있을 때면 우리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누가 옳은지 한번 계산해보자!” 라이프니츠의 이 담대한 기획은 생전에 진전을 보지 못했지만, 그 후계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역사 속에 부활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그가 꿈꾸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예상치 못한 세계의 기이한 진실 앞에 이러한 도전들은 번번이 좌절돼 왔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웬일인지 자연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들은 깊어져만 가고, 인간이 지닌 지능과 의식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머물러 있다. 또한, 우리가 판단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은 사

사설 | times | 2023-09-27 07:13

올여름 영화 흥행의 압도적 1위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오펜하이머’다. 영화의 원작은 2006년 출판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 이전에 존재했던 티탄족으로 ‘먼저 보는 자’라는 이름만큼이나 완벽한 예지력을 가졌다. 그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걸로도 모자라 미래를 알려달라는 제우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죄로 영원히 바위에 묶인 채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자신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자기 간을 내주었을 것이다.평전의 저자들은 미국인들에게 핵무기를 안겨주고도 소련 간첩으로 몰려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견했다. 하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으로부터 처벌받은 대신 인간들로부터는 숭배받았지만, 오펜하이머를 처벌한 건 그로부터 핵무기를 받은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를 영원히 괴롭혔던 진정한 형벌은 공직을 박탈한 청문회나 그의 등 뒤에서 벌어진 배신과 암투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이 무거운 죄책감과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1945년

사설 | times | 2023-09-06 11:46

지난달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연구중심의대 설립’ 토론회가 개최됐다. 그리고 다음 날 지역의 일간지에는 ‘포스텍 의대 설립, 지역 의료서비스 개선 우선 고려를’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의대 설립을 통해 우리대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지역사회에서 희망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우려의 사설이었다. 포스텍이 지향하는 연구중심대학은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바이오헬스 기술과 바이오의약품의 상용화를 통한 산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의 일각에서는 의대와 병원 신설을 통해 지역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의료서비스가 개선되기를 우선적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다양한 요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6년 포스텍이 설립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포스코는 첨단과학기술 개발과 소수정예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학 설립을 목표로 하였지만, 당시 4년제 대학이 없던 지역사회에서는 지역의 우수인재가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 진학할 만한 좋은 대학의 설립을 희망했다. 당시로서는 둘 다 좋은 목표였지만 현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첨단과학기술 개발과 신산업 창출을 통해 지역사회의 ‘격(格)’과 ‘부(富)’를 높이는 지금의 포스텍이 훨

사설 | times | 2023-06-15 09:31

이제 대학은 본격적인 엔데믹 시대의 학기를 시작해 어느새 학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대학 생활의 일상도 차차 회복 중이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기능 역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의 모습을 찾아간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치열한 논쟁이 있는 대학 모습을 되찾아간다.대학이 교육을 하는 곳인지 연구를 하는 곳인지 논쟁을 벌이곤 한다. 대학을 학교라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들은 이런 논란이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초연구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대학원생 교육 및 양성 과정에서 연구 활동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대학과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이런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한편 대학이 산학협력과 창업에 더욱 전념해야 한다고도 한다. 최근 대학이 더욱 기업가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이에 맞서 그러면 집은 누가 지키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들 간의 차이가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이 뚜렷하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모든 대학이 연구기관이라거나 창업사관학교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전체 사회를 하나의 규범으로 좌지우지하려는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나아가 대학이 연구를 잘 하기 위해 연구환경을

사설 | times | 2023-05-19 10:18

파리 6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 교회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가 잠들어있다. 파리에 머물다 그 주변을 지날 때면, 나는 빠짐없이 생제르맹데프레에 들러 부속 예배실 한편에 놓인 그 무덤 앞에 서곤 한다. 근대학문 전반에 그가 끼친 영향은 가늠할 길 없이 크지만, 그의 고전적인 합리주의는 어떤 면에서 지금 21세기 현실과 더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것만 같다. 데카르트는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실체이원론을 논하는 가운데,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구분법을 제시했다. 그중 첫번째가 바로 ‘언어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이다. 데카르트가 스웨덴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고 삼백 년 뒤,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의 개척자였던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의 충분조건으로 언어 모방게임을 제안했을 때, 그는 분명 데카르트의 글을 참고했을 것이다. 이제 놀랍도록 그럴듯한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 챗봇이 연일 화제가 되는 이 시점에, 여러분은 이 데카르트의 주장이 마침내 기각됐고 따라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존재론적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럴듯한 글을

사설 | times | 2023-03-01 21:17

우리대학에 있어 2월은 참으로 의미 있는 달이다. 그동안 매진했던 학업과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졸업생들이 학위를 취득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우선 값진 결과를 이끌어낸 학위 취득자들에게 커다란 축하를 보내면서 몇 가지 생각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 학위를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졸업생들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함께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상당한 긴장감이 함께할 것이다. 사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대부분 사람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해 새로운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잘 분석해 보면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일부분이고, 상당 부분은 예측과 이해가 가능하다. 이런 확실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노력한다면, 더욱 즐겁고 자신 있게 미래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이제 미래라는 대상에 대해 확실한 부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미래는 ‘밀려오는 엄청난 에너지’라는 것이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미래는, 저 멀리 존재하는 미지의 나라로 형상화돼 있으며 오직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탐사를 시도한다는 등 행동의 주체를 우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未來)라는 한자어와 같이 아직 오지 않은 그

사설 | times | 2023-02-17 22:28

오늘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학기술은 사회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학과 생명과학, 공학이 융합돼 과거에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생체 조직 공학의 발전으로 장기 이식 분야에서 지속적인 혁신이 이뤄졌고, 생체 소재 기술의 발달로 인공뼈, 임플란트, 인공 피부 등 다양한 인공 장기와 인공 조직들을 선보이고 있다. 로봇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수족과 오감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의료 보조 기기의 개발로 이어졌다. 뇌과학과 첨단 로봇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다면 미래에는 영화에서만 보던 인간과 기계의 잡종 형태인 사이보그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충격적인 미래가 예측되면서 생명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법적, 사회적 이슈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다.생명기술과 바이오산업은 성장 초기부터 윤리적, 법적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유전자변형식품과 줄기세포 치료 등을 들 수 있다. 생명기술의 연구 방식과 바이오산업에 대한 규제 방식은 각 나라 별로 시민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결정됐다. 영국에서는 공동체의 경험을 강조하며 합의를 통해 규제 방식을 정했고, 독일에서는 시민들의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까닭에 이해 단체를

사설 | times | 2023-01-07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