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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졸업을 위한 과제와 시험을 해결하고, 원서를 준비하던 시간은 꽤나 고단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주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작년 모교에서 조기 졸업한 21명 중 함께 우리대학에 온 친구는 나를 포함해 4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학교에 남아 3학년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나는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퍽 어색하다.과학고 학생에게 조기 졸업은 양날의 검이다. 한 발짝 떨어져 제도를 바라보면 강한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과학고 학생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전제로 공부한다. 이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린다. 나의 경우 군 복무 기간까지 더하면 12년이다. 10년을 한 줄로 놓고 보면 1년을 앞당기는 일은 명백한 이득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인식한 1년의 단위는 시간이었을까, 남들과의 간격이었을까. 우리는 수십, 수백 개의 1년이 모여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그중 하나를 앞당겼다는 이유로 자만하는 사람이 있고, 그만큼 뒤에 있다는 이유로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자만과 좌절은 반대가 아니다. 둘 다 자기 평가의 기준을 남에게 두는 일이고, 소위 ‘뒤처진 사

지곡골목소리 | 정준호 / 무은재 26 | 2026-09-09 06:05

이번 달 5일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부활절이었다. 나 역시 천주교 모태신앙이기에 부활 대축일 미사에 참례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무교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진짜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믿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과학고를 졸업하고 우리대학에 진학해 이공계 공부만을 해온 나 또한 직접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성경은 교리를 위한 것이며, 이를 실제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실존 인물인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거나 눈먼 자를 치유하는 등의 기적을 일으켰다 믿는 것은 현대인, 특히 이공계 학생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종교를 믿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거의 종교는 통치를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 △석가모니 △공자 등 성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은 평민은 지배층의 말에 복종하게 된다. 자연을 이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종교는 심리적 구심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과학이라는 언어로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을 두려워하며 종교에 기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그럼에도 인류 중 약 60

지곡골목소리 | 김준희/수학 22 | 2026-04-29 09:30

누군가 내게 우리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공연 직전 대강당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관객에게 인사할 때 무대 위에서 쏟아지던 너무 밝아 실명할 것만 같은 조명의 강한 빛과, 연주 시작 전 눈빛을 주고받던 지휘자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8년 전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스쳤다.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 자주 찾아 들었다. 대학에 와서도 우리대학 오케스트라 동아리인 ‘한울림’에 들어가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과 가까이 지냈고, 운이 좋게도 협주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곡은 협주곡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이 곡을 알게 된 2018년에, 나는 1악장의 매혹적이면서도 우수에 찬 음악에 매료돼 이 곡을 연주하리라는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8년 동안의 버킷리스트였던 이 곡을 마침내 연주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비록 세 악장 중 첫 악장만 연주하는 것이었지만, 이 곡을 연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렜다.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곡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

지곡골목소리 | 이재희 / 물리 24 | 2026-03-25 16:02

전 세계를 강타한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어왔던 창작과 추론의 영역까지 기계가 넘보는 지금, 혹자는 기술 발전을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우리는 매일 미래를 바꿀 과학과 기술을 연구한다. 하지만 과연 그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풍경에 대해 치열히 고민하고 있는가? 혹시 이런 고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떠넘기고 있진 않은가? 나는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를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이 고민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감히 SF적 상상력은 우리에게 취미를 넘어서 일종의 ‘직업적 의무’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그 의무를 말하기에 앞서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과학기술이 악행에 쓰일 때, 개발자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과학기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율살상무기의 경우, 이 기술은 살상 대상을 식별하고 공격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람을 공격한다는 개발자의 의도 자체가 기술에 필연적으로 개입된 것이다.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개발자가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선한 결

지곡골목소리 | 김영재 / 생명 24 | 2026-02-26 15:08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수많은 과제, 우리대학에서의 일상은 그 어디에서보다 치열하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 걸까?” 학년과 상관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지금 이 시기를 지나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는 주제일 것이다.나는 유독 후회와 자책을 두려워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지금껏 내 선택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의심했고, 무슨 일이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늘 불안해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우정아(인문) 교수님의 ‘특강: 미래 사회 디자인’ 수업을 통해 ‘오디세이 플랜(Odyssey Plan)’을 만나게 됐다. 오디세이 플랜은 향후 5년간의 삶을 3가지 안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이번 오디세이 플랜을 작성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현재의 삶 △대안의 삶 △ 제약 없는 삶이었다. 플랜 작성 활동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으며 이 지면을 빌려 학우 여러분께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 소개하고자 한다.나의 첫 번째 오디세이는 ‘검증과 확신’이다. 나는 선택지가 많을 때는 직접 경험해 봐야 확신을 얻는 성격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부터 화

지곡골목소리 | 이윤석 / 화공 24 | 2026-01-01 11:48

해가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는 이 계절이면 문득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처럼 지금쯤이면 수능을 마치고, 수시 결과를 기다리고, 논술 시험을 앞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몇 년을 달려오며, 목표를 이루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마치 오래 길러온 나무에서 과실을 따 먹는 순간처럼 말이다. 수험생으로서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맞이한 대학교 1학년 생활은 정말 자유로웠다. 원하던 캠퍼스 생활도 마음껏 누렸고, 새로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좋았다.그런데 1학년 2학기가 지날 즈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서서히 찾아왔다. 분명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마치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는 일찍부터 연구실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인턴을 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 나는 관성대로 하루를 살아가며, 어느 순간 ‘혹시 나만 멈춰 있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과 마주하게 됐다. 목표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어느새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하지?’라는 새로운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등학생 때는

지곡골목소리 | 조현우 / 컴공 23 | 2025-12-03 11:06

두 달만 지나면 지나가지 않길 바랐던 2025년도 끝이 난다. 반도체공학과 1학년이자 5분반 새내기로써 보냈던 시간을 돌아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졸업식 바로 다음 날, 새내기새로배움터(이하 새터)에 참여하기 위해 설레는 대학 생활을 꿈꾸며 포항에 왔다. 기숙사 짐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대학 생활을 상상했다. 친구들과 개강 파티를 즐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며,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서 밤샘 공부 후 시험을 보러 가는 상상 속에 △학업 △인간관계 △취미생활도 모두 챙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강 이후 친구들, 선배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관계가 넓어졌지만, 조금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고 친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에 더욱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춤 동아리에 들어간 일이다. 사실 나는 춤을 잘 추지 않았고, 무대에 서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냥 ‘대학 와서 한 번쯤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연습이 시작되자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매주 수업이 끝나고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기본기를 배

지곡골목소리 | 김승현 / 반도체 25 | 2025-11-05 11:24

2024학년도 입학식 당시, 김성근 총장님께서는 “대학 이전의 학창 시절은 마치 강처럼,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누가 먼저 도달하느냐를 겨루는 시간이다. 그러나 대학은 바다와 같다.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어우러지며, 어디로 얼마나 빨리 나아갈지는 각자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학 생활과 미래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던 나는 이 말을 들으며, 막연한 기대 속에서 조금은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그러나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처음의 부푼 기대와는 다른 현실 속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저 정해진 길 속에서, 남들이 가는 대로, 시키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앞만 보고 나아갔을 때는 자유가 그토록 간절했지만, 막상 그 자유를 손에 쥐고 나니 오히려 진로와 미래를 그려가는 일이 답답하고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강은 정해진 방향이 있지만, 드넓은 바다에서 어떤 해류를 탈지는 막연한 것이었다. 도움을 받기에도 한계가 있었고, 이끌어 줄 사람조차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문제들은 끝없이 늘어만 갔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지곡골목소리 | 강태민 / 신소재 24 | 2025-09-02 21:57

우리는 자주 힘들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대학 학생이라면 학부 1학년 때부터 과제가 쏟아지고,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수업과 시험 기간의 밤샘이 일상이 되는 현실 속에서 문득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회의감과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무기력이 마음을 누를 때가 있을 것이다.대학 진학 이후 나 역시 이런 버거움의 빈도가 늘었다. 이번 학기만 해도 전공 팀 프로젝트와 학회 활동이 겹쳐, 시험이 코앞인데도 정작 학과 공부는 손도 대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그러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을 만날 때면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같은 17학점을 듣고 있음에도, 그들은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주말에도 밀린 과제와 공부에 쫓기는데, 그들은 영화관에 들르고 한강을 거닌다. 그런 그들의 여유와 낭만이 나에겐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얼마 전 SNS에서 아프리카의 한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빵을 팔아 생계를 돕는 틈틈이 책을 펴 공부하는 영상을 봤다. 어린 나이임에도 생존과 배움을 함께 짊어진 모습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늘 환경을 탓하며 내가 가진 조건에 대한 불만을 정당화해 왔지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지곡골목소리 | 신요섭 / 무은재 23 | 2025-05-28 15:56

2024 노벨상은 현시대의 연구 트렌드가 ‘AI’임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 관심 분야였던 AI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기뻤지만, 한편으론 ‘AI가 학문 연구에 끼치는 강력한 영향’과 ‘이제는 너무나도 똑똑해진 AI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홀로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더 다양한 연구자들 혹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성을 느꼈다.노벨 위크 학생 파견단으로 노벨 위크에 참가했다. 노벨 위크는 전 세계 각지의 연구자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술의 장이다. 내가 떠올리지 못한 다양한 생각을 듣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 뿐만 아니라 직접 설문을 만들어 수집했다. 강연장 입장을 위해 줄 서서 대기하거나, 노벨 위크 대화(Nobel Dialogue) 세션 중간 쉬는 시간에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소개하고 설문을 요청했다.설문을 통해 받은 소중한 의견을 곱씹으며 고민한 결과, 미래의 연구자로서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지 정리해 볼 수 있었다.첫째로는 AI가 앞으로의 기초 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받아들이고, A

지곡골목소리 | 최선우 / 수학 21 | 2025-03-26 18:15

5년 전, 합격 통지서를 받고 부푼 꿈을 안은 채 우리대학에 첫발을 내디뎠다. 설렘과 기대 속에서 맞이한 대학 생활이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개강마저 계속 미뤄졌다. 결국 6월이 돼서야 처음 등교할 수 있었다. 막연히 꿈꾸고 기대했던 대학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들을 필요가 없었던 기초영어1 수업을 따로 추가로 신청해 듣다가 출결 문제로 결국 수강을 포기하는 등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1학년 때는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대로만 생활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냈지만, 2학년 1학기 때 매우 크게 방황했다. 매일 혼자 술을 마셨고, 공부는 하지 않은 채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험을 망치거나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아무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끙끙댔다. 결국 모든 것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에 도피성 입대를 선택했다.몇 년이 지나고 나서 그때를 돌아보니, 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있었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지곡골목소리 | 문영진 / 전자 20 | 2025-02-26 20:42

최근에 나는 누군가와 아무리 가까워져도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중학교 때 알았던 그 모습에서 많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때는 철없는 장난꾸러기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지금은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대화 주제도 정말 많이 달라져서 같은 사람이 맞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연락을 이어가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많이 나눴다.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는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며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을 알게 되니 변화의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나로서는 친구가 겪은 사건의 무게와 그 순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랬겠거니 하는 추측에 기반한 불완전한 공감과 위로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상대방의 인생을 모두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어떤 상황에서 그들이 느낄 감정과 생각을 완벽히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느꼈다. 처음 이것을 깨달았을 때, 조금 외롭다고 느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 중 그

지곡골목소리 | 손도원 / 컴공 석사 | 2025-02-07 00:32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이번 학기도 어느새 끝자락에 이르렀다. 돌아보니, 내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의연함’이라는 태도였다. 흔히 의연함이라 하면 굳세고 흔들리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내게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위기에 부딪혔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다시 붙잡아 주는 작은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오랜 기간 준비해 온 뮤지컬 동아리 OPCA의 정기 공연이 막판에 외부적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취소됐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공연 날짜를 맞추느라 쏟아부었던 열정과 노력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 같아 분노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임을 깨닫고 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이미 벌어진 일에 매달리지 말고, 이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자’였다. 함께 밤낮없이 연습해 온 동료들을 떠올려 보니, 비록 공연은 무산됐어도 우리가 쌓아 온 우정과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에서 얻는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의연함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학

지곡골목소리 | 정호영 / 무은재 23 | 2025-01-06 09:00

멀리 떨어진 본가에 갔다가 학교로 돌아올 때면 부모님은 항상 나를 배웅해 주신다. 배 웅은 만남의 끝자락에서 이뤄지는 짧고도 긴 순간이다. 나를 배웅하는 부모님의 시선은 특 별하다. 그 시선에는 수많은 말이 묻혀 있고, 그리움과 애정이 깊이 담겨 있다. 이것은 단 순한 배웅이 아니라 ‘눈바래기’라는 말로 더 깊이 표현될 수 있다. ‘눈바래기’는 떠나는 사 람을 배웅할 때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단순히 떠나는 사람을 바라 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시선에 수많은 감정 과 마음을 담아 보내는 말 없는 인사이자 걱 정, 그리고 다정한 응원의 표현이다. 눈바래기의 순간은 따뜻하다. 떠나는 내가 등을 돌린 순간에도 그 시선은 나를 감싸고 있다. 그렇게 부모님의 눈바래기를 받고 학교 로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불씨가 심겨 있다. 그 불씨는 언제나 함께라는 응원과 위로를 준 다. 이처럼 눈바래기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할 사랑과 응원, 그리고 염려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배웅을 넘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속에 항상 함께함을 상기시킨다. 눈바래 기의 따뜻함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깊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소중한 사람의 마음 이 닿는 순간이다

지곡골목소리 | 김민준 / 전자 20 | 2024-11-27 14:32

최근에 핸드폰 사진 정리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까지 거슬러 갔다. 사진을 보며 문득 ‘그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 론 수능이 얼마 안 남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갤러리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이런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때만 의 그 감정, 분위기, 향기, 소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고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분명 매 순간은 항상 좋았을 리 없다. 가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항상 행복했다. 인간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즉, 우리는 과거에도 최선의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과거가 후회되고 미련이 남는 것은 그때보다 더 성장했다는 증거다.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대학생인 나는 고등학 생의 나를 그리워한다. 온전한 자유는 없었지 만, 학교라는 보금자리가 나를 감싸안아 줬 다. 대입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3년을 달 려오며 열정과 치열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생의 나는 중학생의 나를 그리워했다. 마찬가지로, 중학생의

지곡골목소리 | 김주연 / 산경 22 | 2024-10-30 13:00

다양성, 나에게는 학창 시절 도덕 시간에 가볍게 들었던 단어에 불과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여겼던 이 단어가,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갈등,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배척,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 등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들은 단순한 사회적 갈등으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을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나조차도 다양성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과정을 한국에서 마쳤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같은 언어를 사용했으며, 동일한 문화를 공유했다. 심지어 남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대에 진학하며 군대를 다녀오는 과정에서 성별 역시 동일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에게 다양성은 그저 도덕적으로 존중해야 할 가치 혹은 배려를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도 많은 한국 학생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라왔기에, 다양

지곡골목소리 | 제태호 / 컴공 20 | 2024-09-06 19:20

2022년 우리대학에 입학하고, 이전에는 상 상조차 하지 못했던 범위의 수많은 선택지 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 자체가 나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학과 △진로 분야 △직업을 모두 내 손으 로 결정해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나의 삶 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고 선택할 수는 없기에 △어떤 기준으로 △어느 시점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 양한 교수님들과 상담할 기회가 있을 때마 다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지금의 연구 분야를 정하게 되셨 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삶을 걸고 평생을 도전할 분야가 그냥 정해졌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교수님들과 같은 한 분야의 대가는 더더욱 어떤 터닝 포인트 로부터 지구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거나, 암에 걸린 아이들을 도 와야겠다는 사명 의식을 얻으셨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랍게도 ‘우연히’ 였다. 우연히 학회에서 들은 발표가 흥미로 워서, 이 분야를 하는 연구실인 줄 모르고 들어갔는데 사실 다른 분야를 하고 있어서 등 거창한 이유와는 거리가 먼 대답이었다. ‘우연히

지곡골목소리 | 사수현 / 화공 22 | 2024-06-12 16:13

당신은 ‘일상’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 는가? 일상의 사전적 정의는 ‘날마다 반복되 는 생활’이다.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하루를 똑같은 일과로 보낼 수는 없다. 날마 다 듣는 수업이 다르고, 어떤 날은 동아리 모임이 있다. 사람마다 일상의 주기는 다르 겠지만, 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일상은 ‘새롭지 않고 익숙한 나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익숙한 수업들을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규칙적으로 듣고, 주기적으로 동아리 모임에 나가며, 때로는 열정적으로 도전에 나서기도 하는 일상을 만끽하고 있다. 대학생이 된 지 벌써 2년이 지나고 어느 새 3학년이 된 지금,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 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문장이 굉장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일상이란 익숙해야 한다. 하지만 익숙한 날 을 보내는 데 에너지가 들어간다면 이를 익 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일련의 사고 가 특별한 논거 없이 그저 감각적으로 떠올 랐기 때문에, 차분히 이런 생각이 든 이유에 대해 정리해 봤다. 먼저, 일상의 변화는 특별한 계기로 인해 급격히 일어날 때도 있지만, 서

지곡골목소리 | 김용담 / 생명 22 | 2024-05-22 15:52

난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라왔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세상 뉴스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시사상식도 풍부하지 못하고, 부끄럽지만 대학에서도 높은 성적이 아니며 잘하는 운동이 있지도 않다. 성실하고 멋있는 우리대학 학우들과 내 모습은 비교할 점들이 많았고, 신입생 시절 내 자존감은 매우 낮았다.분야를 막론하고, 능수능란한 사람들은 내게 정말 멋있게 비춰진다. 특정 부분에 강점을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집단 내에서 1등이 되고 싶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친한 형이 속해 있어서 별생각 없이 연극부 활동을 시작했다. 첫 무대로 중학교 2학년 시절 지나가는 경비 역할로 무대에 섰을 때 내 주변 친구들로부터 그런 발연기는 처음 본다고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무대에 섰을 때의 그 짜릿함과 커튼콜에서의 감동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연극 생활을 이어갔다. 거듭된 연습과 쌓여가는 경험들로 점차 발성과 액팅이 자연스러워지며 연극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주연까지 맡으며 연극에 대한 자부심이

지곡골목소리 | 문준혁 / 전자 21 | 2024-03-22 18:39

삶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언가를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주어진 기회를 누군가는 용기 있게 자신의 프로세스에 스케줄링 해놓는 반면, 누군가는 실패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끝에 대한 각인된 공포가 시작 자체를 반사적으로 막는 것이다.요즘 사회는 끝의 형태가 실패인 것에 상당히 박해진 것 같다. 사람들은 시작하면 그것이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실패할 바에는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원래 하던 R&E 외에도 1개를 추가로 진행했다. 하지만 학업적인 부분과 연구 활동의 무리한 병행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로가 곧 육체적인 적신호로 나타나게 됐다. 결국 새로 시작한 R&E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R&E 활동을 시작한 친구들과 선생님을 향한 미안한 감정과 함께 나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던 경험이었고, 이에 따라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게임을 즐긴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게임 내의 어떤 목표에 대해서 플레이

지곡골목소리 | 김준서 / 컴공 21 | 2024-02-29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