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로 살아가다 보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과연 올바른지 문득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새로운 연구 주제를 구상하거나, 지금까지 매진해 온 연구를 정리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갈림길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나아가야 할지 쉽사리 가늠되지 않고, 사람마다 저마다의 판단 잣대가 존재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곱씹어 보는 작은 화두 하나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이 화두는 연구자로서 처음 발을 뗐던 계기를 떠올리게 해 주고, 지금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 걸음 더 내디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돌이켜보면, 가을이 막 저물어 가던 학부 과정 마지막 학기 말 무렵이었다. 졸업과 함께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감 속에서 나는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친구들은 이미 회사나 대학원에서 각자의 길을 확실히 정하고 있었고, 내 자리에는 불안함을 안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만이 남아 있었다.
한때는 호기심 넘치는 연구를 꿈꾸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를 품었지만, 뒤늦은 방황으로 내 소중한 이십 대는 어느새 그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품었던 연구자로서의 꿈을 다시 펼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출발선이 저 멀리 앞서 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었고, 그 길 끝에 내가 무엇과 마주하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불현듯 지도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고 무작정 찾아갔다. 평소에 거의 찾아뵙지 않았던 터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었지만,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어렵게 입을 열고, 연구를 하고 싶지만 현실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늦게 시작하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늦은 것은 맞지. 하지만 연구가 잘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몰라. 학생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따라 달렸지”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어떤 연구를 하는 게 좋을까요?”
교수님은 담담하게 답하셨다.
“나도 그건 잘 몰라. 그걸 안다면 나도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학생이 관심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야”
“관심 있는 게 여러 개라면요?”
“가장 진흙탕 같은 곳으로 들어가 봐”
뜻밖의 대답이었다. 의아해하며 왜 그러냐는 내 질문에 교수님은 다시 입을 여셨다.
“이미 잘 정리되어 아름다운 곳은 누군가가 길을 다 닦아놓은 거야. 그런 곳은 보기엔 좋지만 새로운 뭔가는 적지. 반면 진흙탕 같은 곳은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지저분하지만, 그만큼 새롭고 발견할 것들이 많아. 물론 힘들고 고생도 많겠지만, 그곳을 정리하고 길을 내는 사람들이 필요한 거지”
그 말은 내게 적잖은 충격과 깊은 울림을 줬다. 그 후 나는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늦긴 했지만 후회하기 전에 연구자로서의 꿈을 한번 걸어보고 싶기도 했고, 아직 흐릿했지만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윤곽도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고, 가장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실을 선택하게 됐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고, 새로운 기회들 역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연구자로서 어떤 연구 주제를 정해야 할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늘 큰 고민거리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처럼 나를 이끌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항상 떠올리게 된다. 개척되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늘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얻게 됐고, 그 속에서 얻은 모든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됐음을 느낀다.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라”
짧지만 강렬했던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생생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