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9건)

“그렇게까지 해야 해?”조정부 대회를 준비하느라 물집과 굳은살로 가득한 내 손을 보며 엄마가 한 말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훈련을 나가고 식단까지 챙기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내가 무슨 선수라도 된 거냐며 너무 과한 게 아니냐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조정부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하는지, 대회를 앞두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는지 하나씩 설명하곤 했다. 나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엄마에게는 설명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기 때문이다.이처럼 어떤 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세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선 본문이 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각주다. 각주는 어려운 말을 풀고, 생략된 맥락을 보충하며, 독자가 글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돕는다.내가 우리대학 신문사에서 맡은 임무는, 결국 각주를 다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대학에는 저마다 다른 일상에 관한 수많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군가에게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그 간격을 메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몇몇 사람에게만 익숙했던 세계를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는 기자, 읽기 어려운 본문 곁에 조용히 각주를 덧붙이는 기자가 되고

수습기자의 다짐 | 김민하 기자 | 2026-04-29 09:35

주변을 살짝만 둘러봐도 양극단을 기준 삼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못하고 늘 중간에 머무는, 애매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여겼다. 딱히 진심을 다한, 뚜렷한 취미도 없는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어 내 주관이 없는 팔랑귀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영화 ‘룩 백’을 봤다. 영화 속에서는 상반된 두 명이 각기 다른 재능 속에 서로 부딪혀가며 하나의 중심을 이룬 작품을 만들어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가진 중간 자리의 모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시선을 모두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쪽의 확신에 매몰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라 여겨졌다. 이런 나의 기질을 가장 가치 있게 발휘할 수 있는 시작이 ‘기사’라고 생각했다. 평소 기사를 읽으며, 좋은 글이란 독자에게 한 가지 정답만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관점을 건네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느꼈다. 실제로 내가 접했던 기사들은 뜨거운 논쟁이나 차가운 현실 속

수습기자의 다짐 | 박단아 기자 | 2026-04-29 09:35

평생을 제주도에서 살았다. 올해 정든 제주도를 떠나 포항에 왔다. 내 삶은 좁은 섬을 떠나 바다를 지나서 넓은 육지에 상륙했으며, 나 역시 작은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포스테키안이 됐다. △난생처음 온 동네 △생면부지의 사람들 △교수님의 복잡한 강의 등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커다랗게만 느껴졌다. 벅찬 새로움이 내 두개골을 채워 뇌를 누르는 듯 어지러웠다. 멀미 같은 불쾌한 감각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경관의 웅장함에 압도돼 느끼는 경이와 유사한 감각이었다.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르는 글’보다는 내 생각을 보관하기 위한 ‘담는 글’을 주로 써왔다. 나르는 글은 입시를 위해 의무적으로 작성한 과제가 전부였다. 내가 원해서 쓴 담는 글은 대부분 한두 문장 정도의 생각 나열에 가까운 글이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메모장에 썼다가 지워져 사라질 뿐이었다. 하지만 포스테키안이 되며 느낀 어지러움이 내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 글들을 그저 사라지도록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포항공대신문을 선택했다. 이제 내가 기자로서 적는 글은 모두 나르는 글이다. 내 글은 수천 부의 신문에 실려 수많은 사람이

수습기자의 다짐 | 오현준 기자 | 2026-04-29 09:35

이어폰을 끼고 있는 동안에는 모른다. 소음이 사라진 건지, 소음을 듣지 않도록 선택한 건지. 그 구분이 흐릿해질 때쯤에는 귀보다 판단이 먼저 둔해진다.노이즈 캔슬링이 만드는 무음은 끊임없는 연산의 결과다. 파동을 덮기 위한 기계의 적극적인 간섭이다. 소거된 세계가 주는 매끄러운 안락감이 되려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 이어폰을 뺀다. 연산이 멈춘 자리에는 불규칙한 마찰음, 일상의 소음이 들이닥친다. 다듬어지지 않은 변수들은 명백히 피로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고립된 환상 속에 머무는 것보다 통제 불가능한 소음과 직접 부딪히는 쪽이 세계를 감각하는 더 정직한 방식이다.소리의 층위를 고르게 압축하는 알고리즘은 효율적이지만 섬세하지는 않다. 원음에 있던 결의 틈, 불완전한 여백까지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문법도 종종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상을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는 빈번히 마찰을 소거하려는 서사의 관성이 개입한다. 가독성을 앞세워 중층적 이해관계를 평탄화하고, 명쾌한 결론을 위해 껄끄러운 맥락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식이다.단차가 지워진 문장들은 일말의 충돌조차 겪지 않으며 지면 위를 매끄럽게 활주한다. 깔끔한 인과율로 수렴하는 구조는 읽는 이에게 달콤한

수습기자의 다짐 | 조아훈 기자 | 2026-04-29 09:35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책과 함께 살아왔던 것 같다. 독서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했으며, 면식조차 없는 타인이 자신의 존재를 눌러 담아 쓴 글을 마음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이라는 매체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글에는 글밖에 담지 못한다. 작가가 머릿속에 그리던 푸른 하늘 아래, 번지는 은은한 꽃의 향기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누군가의 뒷모습. 작가가 많은 것을 포기한 담담한 글에서 독자는 그 모든 것들을 겨우 짐작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속 아쉬움의 응어리를 해소하고자 계속해서 글을 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왔다.그리고 지금, 나는 아쉬움 위에 올라타 글을 읽는다. 글밖에 없는 종이 위에 작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그마한 글씨에 찰나의 느낌과 상상력을 담아 나만의 장면을 그려본다. 장면이 매끄럽게 이어질 때면,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아 나만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가 글로써 완성하기 위해 덜어내고 덜어낸 것을 내 나름대로 다시 글에 주워 담는다. 글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글로부터 시작하는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글이 미처 채워주지 못한 공간은 나를 위한 광활한

수습기자의 다짐 | 조준혁 기자 | 2026-04-29 09:30

친구의 할머니께서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읽고 ‘밥약 문화’를 알게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문을 통해 ‘밥약 문화’를 처음 접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왔다.어릴 때부터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이 많았고, 뉴스를 즐겨봤다. 그래서 이런저런 소식에 내 생각을 담아 직접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고 살아왔다. 우리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곳곳에 비치된 신문과 집에 갈 때마다 도착해 있는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포항공대신문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학업 부담과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한동안 지원을 망설였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대학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자신감을 느끼게 됐고,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신문사에 지원했다. 이제부터 학생 기자로서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나만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내가 쓴 기사를 통해서 누군가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세상에 똑같은 글은 없다. 글쓰기 시간 친구들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같은 내용을 다뤄도 나오는 글은 천차만별이다

수습기자의 다짐 | 김범준 기자 | 2025-04-23 17:56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Bush Man)’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들이 있다. 굶주린 자들은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로 나뉜다. 리틀 헝거는 물질에 굶주린 자들이다. 그들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음식이 고프다. 반면, 그레이트 헝거는 의미에 굶주린 자들이다. 그들은 △왜 살아가는지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하루하루의 가치는 어디에 맺히는지에 고픈 자들이다. 부시맨들은 그들 층위의 고픔이 진정한 고픔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그레이트 헝거라고 부른다.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레이트 헝거로 향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삶 속에서 기자가 된다는 것 또한 그레이트 헝거로 향하는 여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어떤 기사를 써야 할지 알 수 있다. 의미가 고픈 기자가 돼 의미를 담은 기사를 써야 한다. 저널리즘에서의 의미란, ‘세상과 사람을 잇는 매개로 세상의 변화를 도모하고, 사람의 사유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기사가 비추는 세상 자체가 리틀 헝거적이라면 과연 기사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이다.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은 일종의 ‘팬터마임’이라고 생각한다. 팬터

수습기자의 다짐 | 송명빈 기자 | 2025-04-23 17:55

‘성공의 비결은 시작하는 것이다’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이 남긴 명언이다.그간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며 가장 후회하는 것은 하고 싶은 것에 열정적으로 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 자치 단체에 지원하지 않아 학교 행사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이 없어 후회했던 기억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우리대학에 입학해 가장 먼저 다짐했던 것이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자’라는 것이었다.평소 뉴스를 보거나 신문 기사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아 자치 단체 탐방 시간에 신문사를 방문했다. 선배 기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문사에 들어가면 기사를 쓰는 것 외에도 스스로 많은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여느 때처럼 지원이 망설여졌지만 앞선 다짐을 기억하며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신문사에 지원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 학생기자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신문사에 들어온 직후에는 정말 기뻤지만, 이내 ‘내가 정말 신문 기사를 쓸 수 있을까?’라는 수심에 빠졌다. 신문사는 우리 대학을 대표하는 소식지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단체인데 학생기자로서 맡은 역할을 충

수습기자의 다짐 | 조유현 기자 | 2025-04-23 17:54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도서관은 나의 또 다른 집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책이 나를 감싸주는 느낌이 편했고, 아늑한 소파가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렇기에 학교가 끝나면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으며, 책들과 노는 과정에서 글자들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때 나는 글자들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적어도 그 내용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으니까. 자신만이 조용하게 간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글자들은 내 친구가 됐다. 매일 방과 후를 그들과 함께 보내며 △사회 △과학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읽었고, 더 성장한 후에는 신문도 즐겨 읽게 됐다. 그리고 신문을 읽는 것이 일상에 녹아들었을 무렵에는 글자들이 가볍다고 생각했다. 일단 글자들에 힘을 불어넣어 주면 쉽게 날아올라 멀리멀리 날아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자의 생각을 전해주니까.그렇지만 모두가 그들의 생각을 원하는 목적지에 널리 퍼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목적지에 글이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은, 기자 혹은 작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쓴 글은 목적지까지 닿지 못하고 날아가 버

수습기자의 다짐 | 최진현 기자 | 2025-04-23 17:52

어릴 적 부모님께서 신문을 읽으실 때면 나도 옆에서 어린이 신문을 함께 읽곤 했다. 자연스레 신문과 가까워졌고,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친숙한 언론 매체 중 하나다. 우리대학에 입학한 후, 신문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는 독자로서 신문을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기자로서 신문을 만들며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최근 사람들은 종이 신문보다 인터넷 신문을 주로 이용한다. 이는 검색을 통해 정보를 선별할 수 있다는 점과 신문을 읽을 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리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종이 신문은 정보를 통합적으로 얻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신문은 보통 관심 있는 키워드만 검색해 단편적인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치기 쉽지만, 종이 신문은 다양한 분야의 기사들이 한눈에 배열돼 있어 의도하지 않았던 정보까지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인터넷 신문 기사처럼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기보다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담담하게 기사를 풀어나가 독자들이 온전히 기사에 몰두할 수 있게 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허겁지겁 마감 기한을 맞추고,

수습기자의 다짐 | 한정우 기자 | 2025-04-23 17:49

타불라 라사, 라틴어로 ‘빈 석판’ 혹은 ‘흰 도화지’라는 뜻이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의 출생 당시를 흰 도화지에 비유하며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적 활동과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도화지가 채워질 때,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경험론을 주장했다.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보다는 역사와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답이 명확한 문제보다는 명확한 답이 없더라도 생각의 흐름이 자유롭게 이어져 나가고, 그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좋았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경제학과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비로소 내가 어떤 공부를 할 때 더욱 빛날 수 있는지 선명히 알게 됐다. 비록 입시라는 현실과의 타협으로 공대에 진학하게 됐지만, 사회과학 분야로 나아가리라는 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런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이 됐고, 아직 타불라 라사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수명이 백이십 살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리 세대 앞에서 스물이라는 초라한 숫자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타의에 의해 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더 많이 배워야만 했던 십 대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흰 도화지를 마음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가득 채우며 나의 세계를

수습기자의 다짐 | 양지윤 기자 | 2024-04-22 17:48

내가 느끼기에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학에서는 선택을 하는 것도 책임을 지는 것도 오로지 나의 몫이라는 점이다.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각자의 길을 걸어가기에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주기적으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우리대학의 소식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막막했다. 나는 새내기새로배움터가 끝난 후 우리대학에서 지내는 동안 실패할지라도 후회 없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때 포항공대신문사는 어떤 수업을 들을지, 어떤 동아리에 가입할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고민 중이던 나에게 확신을 줬다.나는 평소에도 뉴스나 기사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새내기새로배움터에서 신문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견문을 넓히고 기사를 통해 학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마감 기한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전문적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선뜻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단체들을 알아볼수록 신문사에 대한 도전

수습기자의 다짐 | 유영주 기자 | 2024-04-22 17:47

글을 읽는다는 것은 숲속에 난 오솔길을 걷는 것과 같다. 처음 오솔길을 걸을 때는 낯선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나무에만 집착하거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글도 마찬가지다. 순백의 종이에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들을 처음 봤을 때는 그 무게에 압도돼 도입부만 반복해서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글이라면 학을 떼고 싫어했던 내가 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신문을 접하면서였다. 회색빛 신문지에 남겨진 검은 글자들을 통해 드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기사들 사이사이 배치돼 있던 사설들이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읊조린 이 짤막한 글들은 긴 호흡의 기사들을 읽던 나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휴식처였다. 사설을 읽으며 비로소 나는 나를 잠식한 상념들로부터 해방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내게 기자가 돼 자신의 글을 타인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특히 사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사설은 불규칙하고, 자유롭다. 어떤 사건을 시의성 있게 객관적으로 다뤄야 하는 기사글과는 달리 사소한 것

수습기자의 다짐 | 김태린 기자 | 2024-04-22 17:44

우리가 하루에 꾸준하게 3시간을 걷는다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2년이 지나면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할 수 있고, 7년 후에는 무려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이런 점진적인 성과는 꾸준함의 위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교수님과 면담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교수님들께서 공통적으로 강조하셨던 부분은 ‘성실함’이었다. 이전에는 눈에 잘 띄게 반짝거리는 재능을 동경했던 나는 상대적으로 반짝거리지 않는 성실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은 항상 나의 예상을 넘어섰다. 주변의 동기, 선후배 모두 놀라울 정도로 알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 또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길지 않은 대학 생활을 경험해 본 지금은 성실함이 소박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라 생각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다룰 수 없는 무기 말이다.신문사에 들어온 후 기자가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덕목에 대해 고민해 봤을 때도 성실함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또한 책임감, 예리한 통찰력 등 여러 능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성실하게 매 기사를 대하는 자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백

수습기자의 다짐 | 정혜정 기자 | 2024-04-22 17:43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아이유가 부른 ‘분홍신’의 가사 중 일부이다. 대학 생활을 하며 학업에 의문이 들거나, 동아리에 지원할지 말지 고민되거나, 내 진로에 관해 깊은 고민이 생겼을 때마다 스스로 되뇌었다.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자고. 어차피 그 끝에 내 길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매번 다짐하며 도전해왔다.뒤늦게 2학년이 돼 포항공대신문사에 수습기자로 합류한다. 신문사 수습기자 공고를 봤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교수님들 인터뷰도 해보고 해외르포도 가야지!’라는 기대가 드는 한편으로는 ‘2, 3학년의 바쁜 전공수업과 신문사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지원을 결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맘껏 쓸 기회가 왔다고.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해보고 후회하겠다고.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의 문턱에 섰다.앞으로 신문사 일을 하며 취재하고, 글을 쓰고, 마감 기한을 맞추느라 바쁜 나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스스로 세운 한 가지 다짐만은 놓고 싶지 않다. 나는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는 기사’를 쓰

수습기자의 다짐 | 김윤철 기자 | 2023-04-17 19:37

기자로 활동해본 경험은 중학생 때 구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기자단 정도였다.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여럿 참여하면서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는 진행요원과 행사를 즐기는 시민들까지 모두를 취재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하나의 행사가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새삼 깨닫곤 했다. 그 후 고등학생 때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포항공대신문사의 수습기자가 됐다.신입생이 되고 1달 남짓 대학 생활을 누리면서 생각보다 학교에 대한 정보나 학교에서 참여할 수 있는 동아리나 단체, 이벤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에브리타임과 같은 캠퍼스 커뮤니티에서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익명의 게시글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처럼 미묘한 답답함을 기자 활동으로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포항공대신문사에 지원하게 됐다. 나와 같은 입장의 학우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 모두가 더욱 알찬 대학 생활을 보내도록 돕고 싶었다.대학에서 받은 또 다른 인상은 중고등학생 때보다 온전히 혼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일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도움받을 수 있는 친구와 선배, 교수님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수습기자의 다짐 | 이이수 기자 | 2023-04-17 19:37

‘소통하는 생명과학자’, 꼭 이루고 싶은 평생의 목표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항상 아무리 우수한 연구를 해도 남에게 성과를 전달하지 못하면 소용없기에 과학자에게 정말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소통’이라고 강조하시곤 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과학에서의 소통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도 강조하시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했던 나는 첫 소논문을 쓰며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해 내 노력 전부를 보여주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글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접해보기로 다짐했다.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빌려 읽으면서 글의 종류에 따른 작성법과 작가들마다의 다양하고도 개성 있는 문체를 조금씩 느껴 나갔다. 과학 잡지와 신문을 보며 어떻게 간결하면서도 속이 꽉 찬 글을 쓸 수 있는지 느끼고 고민했다. 글쓰기라는 말만 들어도 쩔쩔맸던 나는 어느새 글로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내 연구를 글로써 남에게 보여줄 때면 마치 내 이야기를 말로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로 소통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수습기자의 다짐 | 강호연 기자 | 2023-04-17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