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불라 라사, 라틴어로 ‘빈 석판’ 혹은 ‘흰 도화지’라는 뜻이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의 출생 당시를 흰 도화지에 비유하며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적 활동과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도화지가 채워질 때,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경험론을 주장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보다는 역사와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답이 명확한 문제보다는 명확한 답이 없더라도 생각의 흐름이 자유롭게 이어져 나가고, 그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좋았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경제학과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비로소 내가 어떤 공부를 할 때 더욱 빛날 수 있는지 선명히 알게 됐다. 비록 입시라는 현실과의 타협으로 공대에 진학하게 됐지만, 사회과학 분야로 나아가리라는 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이 됐고, 아직 타불라 라사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수명이 백이십 살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리 세대 앞에서 스물이라는 초라한 숫자는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타의에 의해 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더 많이 배워야만 했던 십 대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흰 도화지를 마음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가득 채우며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순간이 .그 출발을 포항공대신문사의 문화사회부 기자로서 시작하려고 한다. 어쩌면 나의 호기심과 열정을 완벽하게 만족하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자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열정을 펼치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답이 명확하게 주어져 있는 수학과 물리 문제들에서 벗어나, 선명하지 않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자가 되고 싶다. 또 나 스스로에게, 독자 모두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만의 흰 도화지를 채워 나가는 발걸음에 독자를 초대하고, 다 함께 생각을 나누며 도화지를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