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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생 처음으로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람(이하 직관)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본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현장을 찾은 적 없이 TV 중계로만 야구를 접해왔다. 사실 예전부터 야구장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직접 보면 뭐가 그리 다르겠어? 오히려 힘들기만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매번 마음을 접곤 했다. 게다가 그동안은 대학 입학이라는 가장 큰 목표가 있었기에 쉽게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그런 내가 대학에 입학한 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잠실야구장에서 생애 첫 직관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TV 화면 너머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감동을 경험했다. △관중들의 응원 소리 △선수들의 응원가 △풀카운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극도의 긴장감 △득점 순간의 폭발적인 환호 △수비 실책에 따른 탄식까지. 야구장의 분위기는 화면 속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요즘은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예전보다 훨씬 더 쉽게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보니 굳이 현장을 찾지 않아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한때는 글로벌 I

78내림돌 | 한정우 기자 | 2025-05-28 15:5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성향이 유사하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고, 이들과 쌓은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는 묘한 경계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대학과 같이 관심사가 단조로운 소수의 커뮤니티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생각의 품을 넓히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어쩌면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가두고 있을지도 모른다.지난해 친형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일이다. 형은 의류학과에 다니던 중 입대하며 휴학했고, 지난해부터는 요식업과 패션 브랜드의 오너가 되기를 꿈꾸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날 형은 ‘좋은 패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자신의 미래 로드맵을 한 시간가량 내게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는 ‘패션이나 요식업은 다 운 아니야?’ ‘요즘 패션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사치만 부추기지 않나?’라는 비판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중 몇 가지는 입에 머금고 있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대듯 물어보기도 했다. 진심으로 형의 생각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공부를 통한 성공만이 정답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세워놓

78내림돌 | 김윤철 기자 | 2025-03-26 18:12

컬러 블라인드 챌린지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해외에서 유행한 이 챌린지는 무작위로 배치된 색색의 점들로 팔레트를 만든 뒤, 흑백으로 전환해 색의 명도만을 기준으로 그림을 채우는 과정이다. 처음 이 챌린지를 접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 끝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흑백 반전을 해제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완성도에 감탄했다.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었고, 미지의 영역이 주는 설렘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이는 추리소설에서의 쾌감과도 닮아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추리소설 특유의 몰입감에 매료돼 결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책을 덮지 못하곤 했다. 주인공은 알리바이를 분석하고, 단서를 조합해 트릭을 풀어내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모든 인물이 범인일 수 있다. 심지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인물이 범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추리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느끼는 전율은 단순히 ‘범인을 맞혔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 반전이 만들어낸 짜릿한 충격에서 비롯된다. 이 반전의 묘미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반

78내림돌 | 정혜정 기자 | 2025-02-26 20:39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만남이 있으면 작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작별이 많은 것 같다. 졸업으로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 꿈을 찾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 등 각자 저마다의 길로 나아간다. 12월의 끝이 다가올수록,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감사의 말을 아낀 것을 후회한다. 이번에는 말해야지, 다음에는 정말로. 잊고 있었던 찰나, 어느 날 문득 돌아본 나는 커다래진 감사함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내가 잠시 잊은 사이 마음 한쪽에는 잊어버린 말들이 쌓이고 있었다. 방황하던 때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동아리 선배님들의 조언,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지도해 주신 포항공대신문사 선배님들, 항상 나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주는 친구들. ‘언젠가는 꼭 전해야지’ 하다가 결국 삼킨 말들은 점점 잊어버리다가 결국 전하지 못하고 입안에서 흩어진 채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고마움을 전하지 못하고 작별하기에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담아둔 감사의 말을 글로나마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쓰고, 친구들에게 잊어버렸던 ‘고마워’를 전한다던가, 시간이

78내림돌 | 김태린 기자 | 2025-01-06 09:00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모수’의 안성재 셰프는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복싱에 진심이다. 운동하는 동안 그 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 생각하며 삶의 압박을 잊고 겸손해진다는 말은 요즘의 나에게 큰 공감이 됐다.늦은 저녁,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밖에 나갈 준비를 한다. 운동화를 신고 스마트 워치를 찬 채 형산강으로 갈 때면 알 수 없는 고양감에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러닝은 어느새 내 취미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대학에 헬스장도 있고 러닝머신도 있는데 왜 굳이 멀리까지 나가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주변에 러닝을 추천하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동안은 많은 것을 잊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최근 몇 달간 좀 지쳤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고 보란 듯이 실패했다. 강의도 동아리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판을 벌였고 이를 수습하는 내내 후회했다. 친구와 부모님, 교수님 모두 내게 하는 일 중 몇 개는 잠시 내려놓고 쉬는 것을 추천했지만, ‘능력껏’ 하라는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경험하며 얻는

78내림돌 | 유영주 기자 | 2024-11-27 14:29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대유행했지만, 띄어 앉고 조용히 본다는 조건으로 공연이 다시 열리던 무렵이었다. 뛰지도 못하고 떼창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옷이 펄럭일 정도로 큰 드럼 소리,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2시간 내내 불러준다’라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금요일에 학교가 끝나면 롤링홀, 프리즘홀 등 홍대 공연장으로 달려가 인디밴드의 공연을 봤다. 공연에 가지 못하거나, 해외 밴드를 좋아할 때는 라이브 영상을 열심히 봤다. Muse의 2007년 웸블리 공연은 얼마나 많이 돌려봤던지 이젠 영상을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다. 화면에서만 보던 가수를 내한 공연에서 직접 봤을 때는 믿기지 않아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코로나 규제가 완화되고 본 첫 공연이 2022년 ‘뮤즈온데이’ 3일 차였다. 처음으로 함성을 지를 수 있었던 공연인 동시에 처음으로 스탠딩석(입석)에서 본 공연이었다. 이날 크라잉넛을 처음 봤는데, 에너지 넘치는 펑크록을 부르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과 관객들을 장악하는 무대매너에 빠져들었다. 대부분의 노래를 몰랐음에도 펄쩍펄쩍 뛰며 후렴을 되는대로 따라 불렀고, 이날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78내림돌 | 김수진 기자 | 2024-10-30 13:00

‘할 수 있다, 실패해도 럭키비키잖아’외면하고 싶은 순간조차 긍정적으로 사고하자는 뜻의 말이다. 평소에는 나도 웃으며 럭키비키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우연히 이 말을 들으니, 할 수 없는 걸 왜 자꾸 하겠다는 건지, 실패가 어떻게 럭키라는 건지, 싶더라.문득 고등학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피로사회’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은 21세기 현대사회가 과거 ‘~하면 안 된다’가 대전제였던 규율사회에서 벗어나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가 만연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과 긍정성이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수직적 구조와 지배적 규율로부터 우리 사회를 더욱 자유롭게 하며 개인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다.기회와 자유의 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점점 피로해지는 동시에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긍정이 초래한 강박과 탈진 때문이라고 한다. 주어진 자유의 총량은 증가했지만,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와 자기 착취를 불러온다. 자신의 한계를 악착같이 이겨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마음은 점점 병들게 되는 것이다.스물이 된 올 한 해

78내림돌 | 양지윤 기자 | 2024-09-06 18:46

최근 입시의 최대 이슈는 단연코 의대 정원 확대일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 수험생부터 재수생, 다니던 직장을 쉬고 의대에 도전하는 사람까지 생겨 지난달 5월 치러진 모의고사 응시인원은 지난해 5월보다 15,000명가량 증가했다. 27년 만에 1,509명의 의대 정원이 증가한 지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대(大)의대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나는 의대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의대를 지망하는 사람 중에 정말 환자들을 살리고 의학을 연구하는 일에 열정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물론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요즘에는 사회적 지위나 안정적이고 높은 수입이 의사라는 직업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소신 있게 산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우연히 접한 천문학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지금은 반도체라는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나의 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학 입시 결과나 다른 사람의 말이 자신에게 맞는 대학이나 진로를 정해주지는 않는다는

78내림돌 | 유영주 기자 | 2024-06-12 16:10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 중 몇 번은 그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너무 자신 있었던 나머지 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흔히 아프니까 청춘이라던데, 너무 안 아파서 빨리 늙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생각이 얼마 전에 깨졌다.시험 기간에는 모두가 ‘시험만 끝나면 무엇을 해야지’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내 이번 계획은 △야식 먹고 밤새워서 드라마 보기 △멀리 걸어가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 가기 △오는 길에 커피와 디저트 사 먹기 △도서관에서 영화 DVD를 빌려와 보기였다. 전부 내가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날 밤, 배고프지도 않은데 컵라면을 꾸역꾸역 먹고 졸린데도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봤다. 심지어 새벽 4시까지 본 드라마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계획을 깨기 싫어 밖으로 나갔다. 식당은 생각보다 더 멀었고, 몸이 무거워 더욱더 멀게 느껴졌다. 기껏 도착해서는 속이 안 좋아서 시킨 음식의 반도 못 먹었다. 비싸게 주고 산 쿠키는 달기만 하고 별로였다. 카페에서는 라테를 디카페인

78내림돌 | 김수진 기자 | 2024-05-22 15:49

요즘 들어 새파란 하늘에 낮게 흩뿌려진 구름을 보면 가끔 수업을 그만두고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창가에 앉으면 종종 눈 틈 사이사이 내려앉은 봄볕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출석 확인만 한 채 수업 중간에 몰래 사라지는, 이른바 ‘출튀’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다. 역마살이 낀 듯, 한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려는 충동을 억누른 채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은 확실히 고역이다.그래서 나는 소소한 일탈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잠든 밤 조심스레 기숙사 밖으로 나선다. 자정을 넘긴 시각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는 낮 동안 부담의 무게에 억눌려 숨 쉬지 못하던 내가 살아있음을 한 번 더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익숙함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져갈 때마다 차오르는 기대감에 부풀어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폭풍의 언덕을 넘어 학생회관에 도달한 것을 깨닫는다.칠흑 같은 어둠에 제 색을 빼앗긴 학교를 보면 낮과는 상반된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애써 빛을 붙들어 놓으려는 듯 처연히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과는 대조적으로 어두운 회

78내림돌 | 김태린 기자 | 2024-04-22 17:37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방문하고자 길을 걷고 있던 나는 한 글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이 문장을 마주치자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 던졌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우리는 부모님과 전문가들로부터 책의 장점에 대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가 기능을 하기 위해선 연료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나아가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던졌던, 독서를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줬던 질문이었다.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읽기 시작했던 책은 시간이 흐르며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해 갔다. 중고등학교 쉬는 시간이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자습 시간마다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전 문학을 읽어도 책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학 서적을 봐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정말 책을 통해 얻는 것이 있는가라는 불안감에 빠져들게 됐다. 사실 고전 문학을 분석하며, 책의 많은 내용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아는 것

78내림돌 | 이주형 기자 | 2024-03-22 18:24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릴 때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의 지난 1년 또한 그랬다. 수시 원서 접수 직전이 돼서야 눈에 들어온 우리대학에 다니게 됐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시를 1년 더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합격’은 일종의 안심이자 구속이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막연하게 공학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내가 정한 길에 현재의 내가 갇혀 새로운 꿈을 펼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대생’이 되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은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 것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지난 1년간 포항공대신문사와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겨울방학에는 2024 새내기새로배움터준비위원회에서 신입생들이 우리대학에서 경험하게 될 첫 행사를 준비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의 자아정체성이 형성될 무렵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나는 ‘인간은 언제나 혼자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깊은 인간

78내림돌 | 오유진 기자 | 2024-02-29 19:59

문득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드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나는 짧은 시간 존재했다 사라질 먼지와도 같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여태까지 내가 목표하고 노력했던 것들의 의미를 잃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때 무엇을 하든 권태에 빠져있던 적이 있다. 그러다 내 나름의 답을 찾았는데, 그 실마리가 ‘실존주의’였다.실존주의는 이런 허무주의적 관점에 반해 인간의 ‘존재’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선택은 그 자체로 정답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둘러싼 외부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나의 인지 그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정의가 된다.처음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는, 개인의 선택이 모두 정답이라면 법과 규범이라는 외부 세계를 무시한 채로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옳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실존주의란 ‘거기 있음’에 기반을 둔 학문이므로 결국 ‘거기’에 해당하는 세계와 나는 상호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에는 자유와 함께 세계에 대한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많은 이들이 무기력과 허무를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어떻게 받

78내림돌 | 정유현 기자 | 2024-01-01 19:59

나는 내년 초에 입대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기분이 좋다. 그동안 하늘에 제발 군대에 보내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사람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나는 1학년 때 카투사 모집에 떨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2학년 여름방학 말이 돼서야 다시 입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입대 시기를 맞춰 바로 복학해 시간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었다. 원하는 날짜에 입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원하는 보직에 지원하는 모집병과 수강 신청하듯이 입대 날짜를 선착순으로 잡는 방법이다. 나는 또한 최대한 실속 있는 군 생활을 위해 원하는 보직으로 가고 싶어 모집병을 알아봤는데,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산점을 위해 헌혈이나 봉사활동을 해야 했고, 자격증을 따고 면접 준비도 해야 했다. 내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입대가 힘들 줄은 몰랐던 나는 너무 늦게 입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고 조사를 계속한 끝에 SW개발병이라는 보직을 발견했다. 헌혈이나 봉사활동 점수가 없었기에 지금 준비해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가산점을 받을

78내림돌 | 정원형 기자 | 2023-12-05 20:49

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노란색 통원버스를 타고 내릴 때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이웃 아주머니 중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구보다 자상한 분들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들도 어머니가 가방을 대신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쓰지 않았다. 그때 다니던 유치원 원훈이 ‘스스로 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가 배웅을 나오셨는데 가방을 들어주시려 했다가 내가 “제 가방은 제가 드는 거예요”라며 가방을 양보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릴 적이지만 내 물건을 스스로 책임지는 기분은 꽤 뿌듯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우리 조상들은 아이를 키울 때 ‘서푼앓이’를 실천했다고 한다. ‘서푼앓이’란 ‘열 푼 중 서 푼 정도를 앓게 한다’는 뜻이다. 한 푼은 대략 600원 정도로, △한 푼 △두 푼 △세 푼 식으로 세는데 발음하기 좋게 세 푼은 서 푼이라고 했다. 열 푼 중 서 푼은 3분의 1 정도를 의미한다. ‘서푼앓이’라는 표현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기보다는 셋에 하나 정도는 부족함을 느끼게 하며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

78내림돌 | 강호연 기자 | 2023-11-07 20:32

자존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나를 사랑하는 정도라 하고, 어떤 이는 내가 나를 대하는 자세라 한다. 저마다 다른 자존감의 기본적인 차이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존감은 우리의 인생을 아울러 우리가 하는 △말 △행동 △판단 △선택 △감정 등 모든 방면에 영향을 준다. 어떻게 보면 ‘정신 건강의 척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첫 시험과 고등학교 입시 실패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첫 정기고사가 실시됐는데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중학교 공부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던 나는 그 당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단순하게도 그 다음에 본 시험, 즉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였다. 이전과 달리 한 달의 기간 동안 계획을 세워 시험을 대비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이후 시험공부에 필요한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점점 효율적으로 공부해 3학년 때는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거의 시험 준비에 시간을 들이지 못하

78내림돌 | 이이수 기자 | 2023-09-06 11:48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9일까지 현재 3학기 이상 재학 중인 무은재학부생을 대상으로 전공학과 신청이 진행됐다. 무은재학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아쉬움도 많고,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기도 한다. 우리대학에서 무은재학부생의 지위는 가히 막강하다. 전공에 대한 책임 없이 자유를 양손 가득 쥐고 모든 전공 선택의 가능성을 저울질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무은재학부라는 따스한 품을 떠나 다소 험난할지 모르는 학과생활에 한 발 들어설 때다. 전공 선택 자유의 이면에 암묵적인 부담감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대학 학부생 중에는 과학고등학교 출신 조기졸업생이 많고, 학부 중에 군대를 다녀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 빠르게 학과에 진입해 8학기 내 졸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같은 학번이면서 한 살 어린 동기들을 볼 때면 마치 내가 재수생이 된 것 같아 대학 생활의 여유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은 빠르게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도, 중도 포기 없이 졸업해야 한다는 압박도 느낄 이유가 없다. 학과에 진입해서도 전과가 자유롭고 복수전공과 부전공의 기회가 모든 학생에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선택한 전

78내림돌 | 김윤철 기자 | 2023-06-15 09:32

길을 걷다 기억하기 쉬운 선율의 음악을 듣고 종종 그 노래를 흥얼거린 경험이 있는가? 이렇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비롯해 눈에 띄는 색상, 독특한 로고 등을 동반한 브랜딩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다. 브랜딩은 연상 작용에 기반해 소비자가 마치 브랜드와 연결된 듯한 감정과 경험을 제공해 상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구매에 큰 영향을 주며 20세기부터 시장 경쟁에서 마케팅의 중요 수단으로 사용됐다.아이돌 산업에서 브랜딩은 주로 각기 다른 콘셉트를 주축으로 둔 마케팅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돌 산업은 그들을 지지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소비·생산의 차원에서 구축된다. 이는 소비자로부터 단순히 물질적 소비뿐만 아니라 감정적 소비까지 발생시킨다는 특징이 있어 홍보 전략의 중요성이 크다. 아이돌은 그들만의 △로고 △공식 색상 △응원봉을 필두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브랜딩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지난 2020년 데뷔한 SM 소속 걸그룹 ‘aespa(이하 에스파)’의 브랜딩 전략은 단연 확고하다. 데뷔 이전부터 유튜브를 개설해 그룹 로고 영상을 공개했으며, 이는 이후 공개된 모든 영상의 후반부에 삽입되며 특유의 효과음과 로고를

78내림돌 | 강민영 기자 | 2023-04-17 19:33

새 학년이 시작될 때면 또 한 뼘 자라있을 내 사촌 동생이 생각난다. 매년 초 할머니 댁을 찾는 사촌 동생은 수줍어하면서도 자꾸만 제 사촌 누나와 친척들 안부를 묻는 정 많은 아이다. 식사 준비로 분주해질 때마다 제가 하겠다며 조금은 산만하게 부엌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꽤나 갸륵해 어른들의 예쁨을 사곤 한다.하지만 그 착한 아이는 학교에서 ‘문제아’다. 처음 문제아가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제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그날 삼촌은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학급 친구 하나가 돌아가신 엄마를 들먹여 동생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의 싸움이 반복됐고, 잦아지는 사고에 동생은 선생님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이제 중학생이 된 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하루는 내가 공부를 돕겠다고 수학 문제를 풀게 했더니 “다들 안 될 거라는데, 지금 내가 공부해도 어차피 못 하겠지”라며 힘 빠지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칭찬 한 번에 목소리가 들뜨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문제를 하나 더 풀어보는 모습에 나는 속이 아려 한층 더 밝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과목이 가장 좋아?” 그러자 동생은 “

78내림돌 | 안윤겸 기자 | 2023-03-01 21:18

우리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느낀 것은 대학에서의 공부가 마라톤 같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나름 자기 주도적 학습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와서는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릴 정도로 새내기 때부터 힘든 학업 일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대학에 간 친구들은 열심히 새내기 시절을 즐겼지만, 나는 과제와 퀴즈 등 쏟아지는 일과를 헤쳐 나가며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학업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만, 나름의 시간 관리 방법을 터득하며 적응했다.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다소 소극적인 학교생활을 보낸 재작년에 반해, 작년에는 다양한 동아리와 단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특히, 학생회와 신문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내게 도전할 용기를 줬고 좋은 자극이 됐다. 이 힘든 마라톤을 견뎌내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나도 거침없이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열심히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관심 있는 연구 분야를 찾았고 대학원 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이룬 것도 많은 한 해였다. 속한 학과의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하게 됐고, 신문사의 편집장으로서 학우들에게 좋은 기사를 전달하기 위해

78내림돌 | 최대현 기자 | 2023-02-17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