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 아이를 불완전하게 만들었나
무엇이 그 아이를 불완전하게 만들었나
  • 안윤겸 기자
  • 승인 2023.03.01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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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시작될 때면 또 한 뼘 자라있을 내 사촌 동생이 생각난다. 매년 초 할머니 댁을 찾는 사촌 동생은 수줍어하면서도 자꾸만 제 사촌 누나와 친척들 안부를 묻는 정 많은 아이다. 식사 준비로 분주해질 때마다 제가 하겠다며 조금은 산만하게 부엌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꽤나 갸륵해 어른들의 예쁨을 사곤 한다.

하지만 그 착한 아이는 학교에서 ‘문제아’다. 처음 문제아가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제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그날 삼촌은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학급 친구 하나가 돌아가신 엄마를 들먹여 동생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의 싸움이 반복됐고, 잦아지는 사고에 동생은 선생님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하루는 내가 공부를 돕겠다고 수학 문제를 풀게 했더니 “다들 안 될 거라는데, 지금 내가 공부해도 어차피 못 하겠지”라며 힘 빠지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칭찬 한 번에 목소리가 들뜨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문제를 하나 더 풀어보는 모습에 나는 속이 아려 한층 더 밝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과목이 가장 좋아?” 그러자 동생은 “영어. 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셔”라고 답했다. 어쩔 수 없는 공대생 누나인지라 수학은 어떠냐며 칭찬 한마디 얹어 되물으니 아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별로야. 요즘은 계속 수학 수업 시간에 잠만 자.” 자면 선생님께 혼난다며 내가 농담 한마디 덧붙이자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나 싫어하셔. 그래서 안 깨우시고. 나빠”라며 중얼거렸다.

동생의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당신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이 그 애는 자기 반으로 배정하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단다. 얼굴도 한번 안 봤고 아직 인사도 안 해봤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와 주먹다짐을 한, 성적이 나쁜, 엄마 없는 아이는 소문만 들어도 뻔하기에.

어느 연구 결과를 보니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비 결손가정’ 아이들보다 우울과 불안이 높고 자아존중감과 대인관계 척도가 낮다고 한다. 결손(缺損),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돼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마치 엄마를 일찍 여읜 이 아이는 어딘가 잘못됐다고 외치는 것 같다.

‘비 결손가정’인 내가 비 결손가정으로 자란 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없었다면 삶의 무엇이 달랐을까. “온전히 널 믿어주고, 정을 주고, 네 편에 설 가장 중요한 한 존재가 없었겠지.” 난 의문이 생겼다. 정말 ‘한 사람’만 없었을까? 어린 시절 나를 교육하고 보호하던 학교라는 울타리가, 내 실수를 보듬어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던 수많은 선생님이 내 사촌 동생에게는 왜 없을까. 그 아이의 ‘결손’은 엄마뿐이었나?
숙모가 돌아가시던 날, 예견된 이별이었음에도 나는 엉엉 울었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지금 만질 수 없어 속상해도 제 엄마는 천국에 갔을 거라 하나도 슬프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2년 뒤 문제아가 된 그 날부터, 학교에서 어버이날 계기 교육이 있을 때면 아이는 울었다.

무엇이 그 아이를 불완전하게 만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