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힘들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대학 학생이라면 학부 1학년 때부터 과제가 쏟아지고,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수업과 시험 기간의 밤샘이 일상이 되는 현실 속에서 문득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회의감과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무기력이 마음을 누를 때가 있을 것이다.
대학 진학 이후 나 역시 이런 버거움의 빈도가 늘었다. 이번 학기만 해도 전공 팀 프로젝트와 학회 활동이 겹쳐, 시험이 코앞인데도 정작 학과 공부는 손도 대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그러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을 만날 때면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같은 17학점을 듣고 있음에도, 그들은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주말에도 밀린 과제와 공부에 쫓기는데, 그들은 영화관에 들르고 한강을 거닌다. 그런 그들의 여유와 낭만이 나에겐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전 SNS에서 아프리카의 한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빵을 팔아 생계를 돕는 틈틈이 책을 펴 공부하는 영상을 봤다. 어린 나이임에도 생존과 배움을 함께 짊어진 모습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늘 환경을 탓하며 내가 가진 조건에 대한 불만을 정당화해 왔지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품지 못한 채, 생활 속 작은 불편함에만 시선을 고정했기 때문에 늘 부족함이 커 보였다. 가진 것은 당연해지고, 없는 것만 유난히 부각됐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본능적으로 비교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한다. 대부분은 위쪽을 향한 비교다.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 △더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 △더 잘난 사람. 반대로 내가 누군가보다 많이 누리고 혜택받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의 한 부분은 누군가에겐 간절한 목표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들여다본다면, 감사할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고3 수험 생활 도중 독감으로 크게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그때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회복되면 건강을 잘 관리하겠다고 다짐했으나 몇 주 지나지 않아 창문을 열고 자다 감기 기운이 스며들었을 때 나는 또다시 건강에 무뎌지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건강에 대해 감사함이 너무 빨리 당연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너무 익숙해 무심해져 버린 것들 △따뜻한 이불 △숨 쉴 수 있는 아침 △곁에 있는 사람들 △배울 수 있는 자유 그 모든 것에 대해 의식적인 감사 품기를 습관화하려고 한다. 비록 일상이 내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감사를 잊지 않을 때, 아니 애써 찾아낼 때 내 일상은 아주 특별히 감사한 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