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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입학한 지 벌써 1년 6개월이 다 돼 간다. 이제 새내기의 부푼 꿈과 설레는 마음은 떠난 지 오래, 부쩍 동기들과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나 그동안 뭐 했지?’라는 물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 자신 있게 내놓을 만큼 대단한 학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외부 대회에 나가 상을 타거나 인턴을 해 본 경험도 없는데, ‘그냥 어쩌다 보니’ 600일에 가까운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며 아쉬움을 표한다.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와 미련이 남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아니라 대답할 수 있다. 이것 하나만은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이루고자 향한 방향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과 ‘나만의 중심을 잡는 것’.스물이 시작할 무렵 떠올렸던 마음 중 하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포항에서 보낸 세 학기 동안 가장 깊게 공부하고자 노력한 것은 물리도, 생명과학도, 수학도 아닌 ‘나’에 대한

78오름돌 | 양지윤 기자 | 2025-05-28 15:53

흔히 학점을 잘 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농담이 있다. 하나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대학 강의의 대부분은 상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해 학점을 부여한다. 그 때문에 시험을 보고 나면 평균은 몇 점인지, 표준편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서로 비교하는 상황이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강의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았다.지난해 우리대학에 입학해 1년을 보내면서, 인생을 상대적으로 살아가려 하면 참으로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장이 아닌 주변의 누군가를 목표로 했을 때 그 끝은 항상 허무했다. 아래를 내려다봐도 끝이 없었고 위를 올려다봐도 끝이 없었다. 주변보다 좋은 학점을 받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누군가보다 좋은 학점을 받으니, 성적이 A+로 가득한 다른 친구가 눈에 보였고 나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상대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 주위를 둘러보니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줏대 있는 삶과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잠시 대학 생활을 쉬며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들보

78오름돌 | 유영주 기자 | 2025-03-26 18:13

퇴계 이황은 젊은 시절 학문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다. 20세 무렵, ‘주역’에 깊이 몰두한 나머지 먹고 자는 일조차 잊었고, 결국 몸이 쇠약해지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후에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기력을 헤아려서 자야 할 때는 자고, 일어날 때는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 곳에 따라 관찰하여 살피고 체험해서 이 마음으로 하여금 멋대로 거리낌 없이 놀지 않도록 하면 될 것이다. 굳이 나처럼 무리하다가 병을 불러올 필요야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량을 돌아보지 않고 배움에 대한 의욕만 앞세우면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병을 불러온다고 경계한 것이다.나 역시 고등학교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는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잠을 줄이며 무리하게 공부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피곤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속도 안 좋았다. 그러던 중 ‘퇴계선생언행록’에 있는 가르침을 접했고, 배움이 더 나아가려면 쉼을 챙기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이후 공부와 휴식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고, 배움의 효율이 훨씬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비유하자면 개구리가 더 높이 뛰기 위해 잔뜩 움츠리는 자세가 필수인 이치랄까.

78오름돌 | 강호연 기자 | 2025-02-26 20:39

원래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말이 너무 많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12·3 계엄 사태 이후 도저히 같은 주제로 글을 쓸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이 너무 없다.지난 12월 14일 토요일, 윤석열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졌다. 전국에서 집회가 열렸고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개표를 기다렸다. 아이돌 팬은 소중한 응원봉을 들고, 건설 노동자는 소중한 헤드랜턴을 끼고 거리로 나왔다. 나는 기자로서 12월 9일 자 한겨레 신문 1면을 피켓에 붙여 손에 들었다. 그곳에는 12월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사진과 이름이 있었다.이 105명을 규탄하는 이유는 단순히 탄핵에 반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결정의 기본인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정치인이라면, 반대표를 내더라도 투표는 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본회의장을 나간 105명은 분명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그들의 입장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기 때문이다.침묵이 중립이 아니라는 말은 정치인에게

78오름돌 | 김수진 기자 | 2025-01-06 09:00

내 대학 생활은 줄곧 포항공대신문과 함께였다. 첫 신문사 면접에서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다루고 싶다던 그 포부는, 지금 돌이켜보면 꽤 많이 이뤄낸 것 같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같이 신문사에 입사한 기자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편, 마감에 쫓기며 느꼈던 중압감과 책임감은 늘 내 마음 한편에 자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지금까지, 포항공대신문은 내 삶의 중심이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포항공대신문의 편집장이 됐다. 편집장이 된 후에는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매 발행을 위해 전체적인 기획을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편집장이 되면서 다른 학보를 참고할 일이 많아졌고, 그때마다 우리 신문이 더 발전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항상 관성적으로, 마치 공식에 값을 집어넣듯 신문을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매체의 급격한 변화가 학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에, 매번 비슷한 주제와 현장감 없는 기사로 지면을 채우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었다. ‘포항공대신문이 과연 독립된 언론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계속해

78오름돌 | 이재현 기자 | 2024-11-27 14:29

경쟁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존재하던 시기부터 역사적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했다. 식량을 얻기 위한 다툼에서부터 영토를 확장하려던 전쟁까지, 남들과 겨루는 일은 반복돼 왔고 시간이 흐른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학업적인 부분에서 경쟁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는 만큼 우리 모두 경쟁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하리라는 사실이 자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렇듯 경쟁이 아름다운 기억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잠을 줄여 공부했던 날들, 그럼에도 실패하고 뒤처지는 기분을 느꼈던 날들. 경쟁에서 승리해 얻는 성취감도 있었겠지만, 또다시 그 굴레 속으로 빠져드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경쟁의 목적은 효율적인 발전을 지속하기 위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과 집단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을 고용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발전하길 원한다. 이때 경쟁은 우리들의 역량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 돼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뒤처짐을 느끼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곤 한다. 특히 나에게 맞는 길인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달린다면 회의감과 상처를 더 많

78오름돌 | 이주형 기자 | 2024-10-30 13:00

52년 전통을 가진 문예지 ‘문학사상’이 지난 4월호(통권618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문학사상에서 1977년도부터 제정·운영해온 국내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 또한 경영난을 이유로 운영권이 매각됐다. 한국 문학을 대중에 알리고 여러 작가를 등단시킨 ‘문학사상’에 전례 없는 위기다. 출판 문학의 뼈대가 하나둘씩 조용히 스러져가고 있다. 이른바 ‘출판 문학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사실 출판 문학의 위기설이 돈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2010년대 웹소설로 전환점을 맞은 장르문학과 달리 출판 문학에서 제힘을 내는 순수문학 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그 빛이 바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아날로그의 쇠락이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날로그 산업이 사장되고, 사람들은 종이에서 디지털 매체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종이책보다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매체들의 파급력은 예상보다도 훨씬 컸다. 그렇게 종이책은 점점 잊혀갔다. 그 사이에 있었던 굵고 작은 사건들은 도화선이 돼 종이책을 붙들고 있던 독자들마저 한둘씩 떠나갔다. 그때마다 많은 이들이 출판 문학은 위기에 빠졌다고 이야기해 왔다.‘우리나라 성인 6할 가량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문화체육

78오름돌 | 김태린 기자 | 2024-09-06 18:47

카페에 앉아 넓은 통유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르고 광활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 아래 반짝거리면서 살랑이고 있는 언덕 위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울적해졌다. 이 감정을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최근에 읽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서 묘사된 전쟁의 참혹함을 보았기 때문일까.지구 반대쪽에선 두 개의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곳 사람들에겐 저 푸른 하늘이 미사일이 떨어지는 천장으로 보일 거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가면 시끌벅적한 일상적인 장면보다는 사람들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들을 두려워하며 뛰어다닐 거고, 모든 건물의 문은 닫혀 있을 것이며, 약탈과 쟁취가 넘쳐나는 원시적인 공간일 거다.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한 채 걸으면서 잠을 보충하고, 맨정신으로는 볼 수 없는 끔찍하고 잔인한 광경들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목표로 버티고 있으리라. 간호사, 의사들은 쉬지 않고 들어오는 환자들과 그 환자들이 누워있던 침대가 빠르게 갈아치워지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우울감과 공포감에 휩싸였다가 나중에 무감각해지지 않을

78오름돌 | 조원준 기자 | 2024-06-12 16:11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 또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 말로는 내가 태어난 날, 할머니가 나에게 동요 ‘나비야’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악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밴드부에서 보컬을 담당하거나 그럴듯한 노래를 작곡한 적도 없지만, 어쩌면 나는 음악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왔다고 생각한다. 행복할 때도 음악을 들었고, 괴로울 때도 음악을 들었다. 심지어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도 음악을 듣곤 한다. 신이 나거나 새벽 감성에 사로잡히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때는 항상 노래방에 간다. ‘Music is my life’라는 말이 너무나도 거창하거나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은 나도 그 말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눈물의 역치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사람마다 눈물의 역치가 다르고, 나는 그 역치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눈물이 한번 터지고 나면 우울함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다. 그리고 그 역치에 다다르기 전까지 눈물로써 우울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78오름돌 | 오유진 기자 | 2024-04-22 17:37

‘정’이란 ‘느껴 일어나는 마음’ 또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사전적 정의를 넘어 개인 간 관계뿐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과거 한반도의 풍습인 품앗이도 ‘정’의 일종이다. 가족노동이 모든 노동방식의 기초인 소농 경영의 현실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타인과의 노동력 차용 및 교환으로 해결하고자 한 데서 비롯됐다. 필요한 노동력을 타인에게 빌려 쓰고 이에 대한 답례로서 합당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품앗이는 강한 공동체성에서 출발했는데, 단순히 노동력의 교환이 아닌 상호부조에 의한 규율이다.현대 사회에서 ‘정’은 어떨까. 요즘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는 넓게 보면 대부분 ‘정’과 관련된다고 본다. △젠더 분쟁 △정치극단주의 △세대 갈등 △지역 갈등과 같이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 국한되는 ‘정’의 발현으로, 소득 양극화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은 점진적인 계층 사이의 공감과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익 추구가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사회적 연대가 약화되고 이기주의가 발현돼, 자신 혹은 집단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것이 현실이다.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영향을 미친

78오름돌 | 이이수 기자 | 2024-03-22 18:25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우리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결정을 내리지만, 때로는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결정이 사실은 편협한 시각과 제한된 정보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특히 현대 세대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팽배로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은 우리가 인생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음을 간과하게 만든다.현대인에게 △공동체주의 △종교 △도덕과 같은 것은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많은 사람은 이를 비합리적이라 규정하며 공동체보다 개인을, 종교보다 세속적 삶을, 시답잖은 도덕보단 개인의 안위를 중시하곤 한다. 실제로도 주변을 보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단기적인 성공과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공동체의 유지에 해악을 끼치며 결과적으로 자신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비합리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우리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윤리적 토대로 기능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우리 인류는 지금껏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개인은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전해 왔다.

78오름돌 | 이재현 기자 | 2024-02-29 20:00

지난해 10월 김포시가 서울 편입을 요청하며 ‘메가시티 서울’(이하 메가 서울)이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경기도를 남도와 북도로 분리하는 논의 과정에서 김포시가 남도와 북도 양자택일을 포기하고 차라리 서울시에 편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포시에 이어 △광명시 △하남시 △구리시 등 서울 인접 도시에서도 서울로 편입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되며 메가 서울 논쟁이 전국으로 번졌다.정권이 바뀌어도 공통으로 내거는 국정과제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시대’다. 메가 서울은 두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정책으로, 이제껏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 통계청의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면적의 12%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 50%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의 핵심은 단연코 서울이며, 비대해진 서울은 국토 활용의 비효율과 지방소멸을 야기한다. 따라서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수도 서울의 인구 과밀을 해소하고 지방 도시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여러 자구책을 마련해 왔다. 대표적 사업으로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세종시가 있다. 세종시는 수도에 집중된 △정치 △행정 △경제 등 사회적 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지난 20

78오름돌 | 김윤철 기자 | 2024-01-01 19:59

눈이 말했다. “나 없으면 너넨 아무것도 못 봐.” 그러자 귀가 대꾸한다. “못 듣는 건 괜찮고?” 옆에서 손과 발이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어차피 행동은 다 내가 담당해. 다 앉아.”어렸을 때 읽었던 책 내용이다. 감각기관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중요성을 어필하며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겨뤘다. 누가 더 중요한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뭘까? 초등학생 때의 나에게 이 질문은 꽤 어려운 질문이었다. 눈을 고르자니 귀가 중요해 보였고, 귀를 고르자니 코도 중요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각기관들은 한 아이 아래 도토리 키재기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뇌다. 뇌는 명령을 하는 ‘주체적인’ 기관이다. 반대로 나머지 감각기관들은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인’ 기관이다. 뇌는 감각기관들의 싸움이 얼마나 하찮아 보였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대다수였던 서민들은 감각기관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사는 것만을 목표로 뇌가 시키는 대로 ‘생존’이라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들은 물건과 음식을 팔며 돈을 벌었다. 또 그날 번 돈으로 그날을 살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산업화가 시작됐다. 기업과 공장이 만

78오름돌 | 조원준 기자 | 2023-12-05 20:50

왜 우리는 슈퍼히어로에게 열광하는가. 처음 슈퍼맨이 등장한 시기는 미국 대공황 시대인 1938년이었다. 많은 슈퍼히어로가 1930년대에 유독 큰 인기를 얻은 것에는 잦은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세상의 많은 문제 상황, 그러나 발전 없이 그저 대립하는 구도의 연속에서 사람들은 이를 타파할 위인을 찾게 된다. 영웅물의 대가인 마블 코믹스의 스토리 작가 마크 밀러는 “경제 호황기에는 히어로의 죽음이 잦아지고, 불황기에는 히어로의 인기가 급상승한다”라며 불황기 시대 사람들이 슈퍼 히어로를 통해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 ‘조커’의 제작자 제리 로빈슨은 다시 영웅이 돌아왔다며 “요즘 시대가 그리 좋지 않다. 우리는 영웅을 다시 찾고 있다”라고 덧붙였다.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 곁에는 영화 속의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없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했으며 정치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정치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도록, 국가의 권력을 양도받아 유지 및 행사하는 주체들이다. 국민은 매번 선거를 통해 나라를

78오름돌 | 강민영 기자 | 2023-11-07 20:32

지난 7월 21일부터 대한민국에는 칼부림사태가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우석대 배상훈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칼부림 사태를 “심리적으로 불안한 개인이 억누른 자신의 분노를 이번 계기로 모방 범죄화한 것이다”라며 원인에 대해 분석했다. 칼부림 사태의 첫 사건이 도화선이 되긴 했으나 그 본질적인 원인은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개인’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빠른 발전은 편리함을 비롯한 많은 이점을 가져오지만, 이를 누리는 사람에게도 빠름을 요구한다. 풍요로워진 만큼 성공의 기준은 높아졌고, 소통이 원활해진 만큼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게 됐다. 통계청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청년에게는 생계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사회에서 20대는 불안함의 가운데 있다. 스스로 설 자리가 불안하다 보니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다수가 스스로만을 위하게 되면 개인은 심리적인 고립감과 불안감을 느껴 더욱 자신만을 위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커진 불안함은 급박함과 과격함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이것이 표현, 행동으로 드러난 결과가 지금의 사

78오름돌 | 고평강 기자 | 2023-09-06 11:48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낮말이든 밤말이든 모두 들린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그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지구 반대편 소식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편리함만 존재하는 것 같은데, 어찌 이런 세상의 불편함을 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분명 편리한 사회를 살고 있다. 당장 공부할 때를 생각해 봐도 우리는 이전에 누릴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전문가처럼 답변해 주는 인공지능 챗봇과 과제를 함께하고, 무거운 전공책 대신 아이패드를 쓸 수 있으며, 녹화 강의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속도로 돌려보며 수준에 맞게 배울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과거에 비해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해도 개개인의 일상이 노출되기가 너무 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모습은 CCTV에 찍히고, 말들은 녹음기에 담긴다. 주고받은 전화 통화와 메시지들은 고스란히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다.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등 대부분이 사용하는

78오름돌 | 최대현 기자 | 2023-06-15 09:33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술이다. ‘왜 이렇게 좋아할까’, ‘외국에도 술이 있는데 한국은 대체 뭐가 다르기에 이토록 열광할까’ 머릿속에 생긴 질문들에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용기 내 외국인에게 물어봤다. 싼 가격으로 빨리 취할 수 있고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게 장점이라고 한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술집의 장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비해 술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술과 담배는 건강에 위험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담배는 담뱃갑에 보기 흉측한 광고를 부착하고, 금연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로 금연을 장려한다. 반면 술은 유명 연예인들이 선전하는 주류광고가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이는 등 우리 사회는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사회적인 분위기와 문화도 음주에 많이 수용적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술이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실생활 속에서도 MT, 회식 등 단체 활동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책 ‘금주 다이어리’에는 이런 문장이 담겨있다. “다른 약물은 그걸 하는 사람이 이상하고, 끊는 사람을

78오름돌 | 조원준 기자 | 2023-04-17 19:34

지난달 6일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 부근에서 2차례의 강진 이후 6,000회가 넘는 여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피해 지역에서는 4만 6천여 명이 사망하고 120만여 명이 대피했으며, 10만 5천여 개의 건물이 손상될 정도로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계속되는 구조대의 수색 작업과 건물 복구 작업으로 피해 현장을 수습하고 있지만,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위험에 노출된 피해·피난민들이 많아 타국의 도움과 일손이 필요한 실정이다.그동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며 튀르키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우리나라도 많은 구호 물품을 전달했으며, 직접 도움을 주려는 국내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튀르키예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상당한 병력을 파병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온 국가다. 우리가 지난날 튀르키예로부터 받은 많은 도움과 응원을 이제는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참사가 일어난 직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이하 KRDT)는 튀르키예로 파견돼 수색·구조 활동을 벌였으며, 각종 △지자체 △기업체 △공공기관 △은행 등에서 자체적으로 구호 물품과 성금을 전달하는 기부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진

78오름돌 | 강민영 기자 | 2023-03-01 21:18

대한민국 사회는 △이념 △젠더 △세대 △종교 △학력 등 수많은 분야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재작년 6월, 영국의 킹스 칼리지 런던 정책연구소가 국제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의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갈등’이 우리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닌지, 어느 한쪽이 없어져야만 끝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그러나 변증법으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변증법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정명제’와 ‘반명제’로 일컬어지는 두 개의 다른 주장 간의 대립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찾는 방법을 말한다. 즉, 서로 다른 담론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갈등 속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해답인 ‘합명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고, 다시 정명제와 반명제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갈등과 해소가 반복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이 변증법에서 말하는 역사의 변천 과정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헤겔,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변증법은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으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에 대한 긍정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젠더 갈

78오름돌 | 이재현 기자 | 2023-02-17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