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가기 위한 쉼표
더 나아가기 위한 쉼표
  • 강호연 기자
  • 승인 2025.02.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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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젊은 시절 학문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다. 20세 무렵, ‘주역’에 깊이 몰두한 나머지 먹고 자는 일조차 잊었고, 결국 몸이 쇠약해지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후에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기력을 헤아려서 자야 할 때는 자고, 일어날 때는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 곳에 따라 관찰하여 살피고 체험해서 이 마음으로 하여금 멋대로 거리낌 없이 놀지 않도록 하면 될 것이다. 굳이 나처럼 무리하다가 병을 불러올 필요야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량을 돌아보지 않고 배움에 대한 의욕만 앞세우면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병을 불러온다고 경계한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는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잠을 줄이며 무리하게 공부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피곤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속도 안 좋았다. 그러던 중 ‘퇴계선생언행록’에 있는 가르침을 접했고, 배움이 더 나아가려면 쉼을 챙기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이후 공부와 휴식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고, 배움의 효율이 훨씬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비유하자면 개구리가 더 높이 뛰기 위해 잔뜩 움츠리는 자세가 필수인 이치랄까. 당장은 뒤로 물러나는 것 같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퇴계 이황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경쟁이 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어쩌면 필요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리한 공부는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되고, 결국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데 방해가 된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약해지고, 학문에 대한 흥미마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궁극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과정인데 스스로를 혹사해 불행해지고 있다면 이는 모순이다. 열정을 가지고 배움에 임하는 것만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절하는 것도 배우는 이의 필수적 태도다.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도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치열하게 집중해 자신의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열심히 해봤다는 경험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그 경험은 삶에서 위기가 닥칠 때 내면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다만 도전과 무리는 다르다. 도전은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고 사고를 깊게 하지만, 무리는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배움의 기회를 앗아간다. 행복의 필수 요소인 ‘심신의 건강’이라는 선을 지켜야 한다. 나의 존재와 나의 행복을 뛰어넘는 가치는 없다.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에서 경쟁과 도전은 있을 수밖에 없고 성취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혹사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때로는 자신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동시에 ‘나는 더 나아갈 수 있다’라는 믿음도 놓지 않았으면 한다. 학문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무리한 공부는 지속될 수 없다. 지금 당장의 성과만을 좇기보다 꾸준히 배울 수 있도록 심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퇴계 이황이 제자들에게 남긴 가르침처럼 건강을 지키면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배우는 이의 진정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나를 포함해 배움에 임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