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전통을 가진 문예지 ‘문학사상’이 지난 4월호(통권618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문학사상에서 1977년도부터 제정·운영해온 국내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 또한 경영난을 이유로 운영권이 매각됐다. 한국 문학을 대중에 알리고 여러 작가를 등단시킨 ‘문학사상’에 전례 없는 위기다. 출판 문학의 뼈대가 하나둘씩 조용히 스러져가고 있다. 이른바 ‘출판 문학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사실 출판 문학의 위기설이 돈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2010년대 웹소설로 전환점을 맞은 장르문학과 달리 출판 문학에서 제힘을 내는 순수문학 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그 빛이 바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아날로그의 쇠락이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날로그 산업이 사장되고, 사람들은 종이에서 디지털 매체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종이책보다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매체들의 파급력은 예상보다도 훨씬 컸다. 그렇게 종이책은 점점 잊혀갔다. 그 사이에 있었던 굵고 작은 사건들은 도화선이 돼 종이책을 붙들고 있던 독자들마저 한둘씩 떠나갔다. 그때마다 많은 이들이 출판 문학은 위기에 빠졌다고 이야기해 왔다.
‘우리나라 성인 6할 가량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나온 이야기다. 1994년 처음 독서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악조건에도 전자책 등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독서의 비율은 증가하는 것이 눈에 띈다. 종이책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종이책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는 행위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서 활자를 어루만지는 촉감, 책장을 넘기는 소리 등 복합적인 감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종이책을 읽는 것은 대체될 수 없는 무결한 행위이다. 오랜만에 모퉁이의 독립 서점에서 낡은 문예지를 들어 먼지를 닦아본다. 두 달여 만에 다시 읽는 ‘문학사상’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책을 잠시 덮고 “우리는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는 이 작은 잡지를 펴낸다”라는 고(故) 이어령 선생의 창간사를 나지막이 읊어본다.
여기 포스테키안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문학사상’이 있다. 2023년 6월에 발간된 제52권 6호에는 특집으로 ‘문학 안에 나타난 과학’이 실렸다. 그중에서도 이상의 시에 발휘된 물리학적 상상력을 비롯해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선 분석은 기존 문학의 틀을 깨는 것만 같다. 표지를 장식한 김유정 작가의 작품관과 호마다 각자의 색을 뽐내는 시, 소설도 흥미롭다. 이달의 문제작으로 선정된 권혁웅 시인의 ‘겨우 존재하는 것들’과 채호석 작가의 ‘미래라는 조건 읽기’도 눈을 사로잡는다.
‘문학사를 바꾸는 대기획’이라는 목표 아래 시작된 ‘문학사상’이 멈출 순 없다.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8월, 무더위에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키다리 아저씨’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문학사상’ 살리기에 나섰다고 한다. 이르면 10월호부터 복간을 목표로 한다는 소식이다. ‘문화는 경제의 산물’이라는 이 회장의 신념에 감사를 표한다. 멈춰버린 활자들의 시계가 다시 움직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휴간은 618호까지 달려온 ‘문학사상’에 주어진 잠시의 휴식일 거라고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