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정(情)에 대하여
진정한 정(情)에 대하여
  • 이이수 기자
  • 승인 2024.03.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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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느껴 일어나는 마음’ 또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사전적 정의를 넘어 개인 간 관계뿐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과거 한반도의 풍습인 품앗이도 ‘정’의 일종이다. 가족노동이 모든 노동방식의 기초인 소농 경영의 현실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타인과의 노동력 차용 및 교환으로 해결하고자 한 데서 비롯됐다. 필요한 노동력을 타인에게 빌려 쓰고 이에 대한 답례로서 합당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품앗이는 강한 공동체성에서 출발했는데, 단순히 노동력의 교환이 아닌 상호부조에 의한 규율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은 어떨까. 요즘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는 넓게 보면 대부분 ‘정’과 관련된다고 본다. △젠더 분쟁 △정치극단주의 △세대 갈등 △지역 갈등과 같이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 국한되는 ‘정’의 발현으로, 소득 양극화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은 점진적인 계층 사이의 공감과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익 추구가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사회적 연대가 약화되고 이기주의가 발현돼, 자신 혹은 집단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변화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행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이 있다고 여겨진다. 핵가족을 넘어선 1인 가구의 비율이 40%를 넘어섰고 이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의지할 곳 없는 직간접적인 소외로 이어졌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며 경제적으로 급격한 발전을 이뤄냈지만, 계속되는 인구 변동으로 도시 지역과 낙후 지역 사이의 갈등이 심화했다. 그리고 거대한 빈부 격차와 극단적인 사회문화적 변화가 뒤따랐다. 한편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삶의 질이 매우 향상됐지만, 상대적으로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쉽게 소외됐다.사회적 문제는 공통적으로 △살아온 경험 △가치관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이 차이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경계를 허무는 방법으로는 여러 답이 있겠지만 나는 결국은 진정한 의미의 ‘정’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 또는 집단에만 국한되는 배타적인 ‘정’, 혹은 무분별한 인맥의 영향으로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뇌물수수 △부정청탁 △불공정성은 진정한 의미의 ‘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전통적 사회관계의 연고주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어떤 관련이 없는 이에게도 이해와 공감의 시선을 보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진부할 수 있겠지만, 개인으로서는 대화와 소통만이 상호 간의 이해, 즉 ‘정’의 추구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당연하게도 이를 위해선 사회적 차원에서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연대와 공정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가장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