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과거보다 나아졌는가
현재는 과거보다 나아졌는가
  • 조원준 기자
  • 승인 2023.12.05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이 말했다. “나 없으면 너넨 아무것도 못 봐.” 그러자 귀가 대꾸한다. “못 듣는 건 괜찮고?” 옆에서 손과 발이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어차피 행동은 다 내가 담당해. 다 앉아.”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내용이다. 감각기관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중요성을 어필하며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겨뤘다. 누가 더 중요한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뭘까? 초등학생 때의 나에게 이 질문은 꽤 어려운 질문이었다. 눈을 고르자니 귀가 중요해 보였고, 귀를 고르자니 코도 중요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각기관들은 한 아이 아래 도토리 키재기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뇌다. 뇌는 명령을 하는 ‘주체적인’ 기관이다. 반대로 나머지 감각기관들은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인’ 기관이다. 뇌는 감각기관들의 싸움이 얼마나 하찮아 보였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대다수였던 서민들은 감각기관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사는 것만을 목표로 뇌가 시키는 대로 ‘생존’이라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들은 물건과 음식을 팔며 돈을 벌었다. 또 그날 번 돈으로 그날을 살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산업화가 시작됐다. 기업과 공장이 만들어졌고, 나라와 국민, 기업들은 힘을 합쳐 대한민국을 신생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이 업의 주역이었던 이전 세대들은 IMF 사태를 비롯한 위기로부터 한국을 구출해 내느라 무언가를 지향할 틈이 없었다. 이번에도 생존 키워드가 여전히 사회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근로자로서 기업과 국가를 번영시키며 묵묵히 살아왔다. 지난 세대의 삶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외국에서 한국을 모르기가 쉽지 않을 만큼의 위상에 섰다. ‘생존’이라는 키워드가 사라진 것 같았다. 뇌처럼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제는 조선시대와는 다른 삶을 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과거보다 나아졌는가?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더 심각한 것 같다. 이번엔 ‘사회’라는 뇌가 시키는 대로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의대를 준비하는 마라톤에 뛰어든다. 출산율은 0.7명대를 기록했고, 사교육비는 하늘을 찌르며, 서울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터지기 직전이다. 달라진 건 사회의 모습일 뿐, 우리 삶은 조선시대 때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변했지만 우리 삶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은 여전히 사회가 가리키는 곳으로 뛰고 있다. 사회는 빨리 변해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는 ‘문제 인식’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그리고 어제의 삶보다 더 나은, ‘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오늘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글의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