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 또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 말로는 내가 태어난 날, 할머니가 나에게 동요 ‘나비야’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악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밴드부에서 보컬을 담당하거나 그럴듯한 노래를 작곡한 적도 없지만, 어쩌면 나는 음악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왔다고 생각한다. 행복할 때도 음악을 들었고, 괴로울 때도 음악을 들었다. 심지어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도 음악을 듣곤 한다. 신이 나거나 새벽 감성에 사로잡히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때는 항상 노래방에 간다. ‘Music is my life’라는 말이 너무나도 거창하거나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은 나도 그 말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눈물의 역치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사람마다 눈물의 역치가 다르고, 나는 그 역치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눈물이 한번 터지고 나면 우울함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다. 그리고 그 역치에 다다르기 전까지 눈물로써 우울감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괴로워한다. △공허함 △외로움 △절망과 같은 것들은 사람을 그저 멍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럴 때마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것은 음악이었던 것 같다. 울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이 나의 우울을 눈치채지 못할 때면 방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1년 전쯤 봤던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 4’ 속 등장인물 맥스가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극복하고 괴물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헤드폰으로 Kate Bush의 Running Up That Hill을 듣는 장면은 꽤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해당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사람이 그 부분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실제로 다양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음악 치료(Music Therapy)가 진행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장면은 제법 상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대 사회는 어쩐지 우울로 가득 찬 듯하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 △산업의 성장 △높아진 생활 수준은 현대인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줄지는 몰라도 행복은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리고 집단이 아닌 개인이 중요해짐에 따라 인간관계는 해체되고 사람들은 이기심이 미덕으로 보이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SNS로 인해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지면서, 우리는 획일화된 행복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다 오히려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오는 공허와 우울이 우리를 집어삼킨다면, 세상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혐오하기보다는 그저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우리의 인생 속 한 장면 장면마다 적절한 배경음악을 고르다 보면, ‘나’라는 영화는 깊은 여운을 주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