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성향이 유사하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고, 이들과 쌓은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는 묘한 경계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대학과 같이 관심사가 단조로운 소수의 커뮤니티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생각의 품을 넓히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어쩌면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가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친형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일이다. 형은 의류학과에 다니던 중 입대하며 휴학했고, 지난해부터는 요식업과 패션 브랜드의 오너가 되기를 꿈꾸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날 형은 ‘좋은 패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자신의 미래 로드맵을 한 시간가량 내게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는 ‘패션이나 요식업은 다 운 아니야?’ ‘요즘 패션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사치만 부추기지 않나?’라는 비판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중 몇 가지는 입에 머금고 있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대듯 물어보기도 했다. 진심으로 형의 생각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공부를 통한 성공만이 정답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세워놓고 형의 꿈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때 형은 군대에서 밤마다 혼자 고뇌하며 작성해 온 자신의 브랜드 계획서 수백 쪽과 유명 브랜드 분석 보고서 여러 권을 보여줬다. 그리고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모두가 다 너처럼 생각한다고 믿지마”라며 나를 나무랐다.
순간 말문이 막혔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공학과 논리가 주류인 나의 세계관에서 문화 산업은 늘 비주류였다. 이제껏 공부를 통해 성과를 내온 나로서는 공부만이 정도였고 그 외의 길은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보였다. 은연중에 모르는 분야를 함부로 재단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포항에서는 나처럼 수학과 과학에 몰두하는 사람들과만 교류했기에 다른 세계관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공부가 전부였던 내 세계관에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붙이려 노력하고 있다.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이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있다. 우물 밖으로 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우물 안에 안주하다 보면 생각의 벽이 점차 굳어져 우물을 벗어날 엄두조차 안 날 때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때 주저앉지 않도록 오늘도 부지런히 발을 넓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