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건)

버리지 못하고 계속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을 것이다. 물건 한두 개를 오랜 시간 소장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특정 종류의 물품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각종 홍보용 전단, 즉 리플렛을 모으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비치된 책자에서부터 영화 및 공연 포스터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다. 어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면 그 작품의 포스터는 물론 내가 보지 않은 공연의 것까지 몇 장씩 가져온다. 심하지 않은 수준의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국내의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리플렛을 모았듯, 해외여행을 가서도 리플렛에 대한 수집욕은 계속됐다. 외국어로 적힌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책자 비슷한 게 보이기만 하면 일단 집어 들고 봤다. 결과적으로 읽지도 못하는 생소한 언어의 리플렛이 상당히 쌓이게 됐다. 외국에서 모은 리플렛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영어 공부에 큰 동기를 부여해 주기도 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책자는 물론이고 앞으로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모으게 될 타국의 리플렛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행여 내가 모은 리플렛을 전부 읽어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괜

78내림돌 | 권재영 기자 | 2018-09-19 18:5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교활하고 약은 꾀로 신들을 우롱해 영원히 산 정상으로 돌을 밀어 올려야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 돌은 정상에 다다랐을 때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시시포스의 삶은 끝없는 노동이었다. 나는 ‘목적 없는 노동의 반복’을 가장 무서운 형벌이라 생각했을 그리스 신들, 그리고 그 신들의 뜻대로 결국 일의 목적조차 흩어버리는 ‘권태’에 시달렸을 시시포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뭔가 모를 낯익음에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3년의 대학 생활 한 가운데서 휴학을 결정하고 되돌아본 나는 시시포스와 닮아있었다. 쏟아지는 과제, 반복적인 일상을 매일같이 꼭대기로 굴려나가는 기계로 기억된다. 막상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다가도 이내 현실을 마주할 때면 느껴지는 묵직한 권태로움이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고, 뭘 해도 사라지지 않는 무기력함은 이제 그만 뱉어버리고 싶은 단물 빠진 껌으로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설렘이었던 대학생활을 한순간에 소위 ‘노잼’으로 바꿔버리는 ‘권태’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었다.1960년대 정신신체의학의 선구자였던 스튜어트 울프는 ‘시시포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시시포스 콤플렉

78내림돌 | 공환석 기자 | 2018-05-30 21:53

나는 어릴 때부터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어른들이 장난스럽게 던지는 군대 관련 농담 한마디에도 기분이 종일 울적해지곤 했다. 언젠지 모를 정도로 옛날부터 내 마음 한편에는 군대를 향한 강한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외 도피 관련 병역 기피에 대해 알아보다가 유승준 방지법을 발견하고 실망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군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군대는 가끔 대학생에게 도피처가 되곤 한다. 실패한 인간관계 때문에 친구들에게서 도망칠 수도, 망쳐버린 전공 학점 때문에 학교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육군이 되고 싶은 것이다.내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이유는 군대에 대한 나의 인식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 군필자들이 다들 요즘 군대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국방부에서 제작한 육군 웹 드라마들을 시청해보면 군 생활이 오히려 재밌어 보이기까지 한다. 군대에 가면 훈련과 작업 등으로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겠지만, 바닥을 치는 체력과 잃어버린 지 오래인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줄곧

78내림돌 | 장호중 기자 | 2018-05-10 15:25

중학교 때 우리 집에는 완성된 루빅 큐브 하나가 있었다. 누가 샀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가족 중에 큐브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큐브는 거실 텔레비전 앞에 놓여 장식용 신세를 졌다. 그러다 집에 나이 어린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큐브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 그만 큐브를 섞어 버렸다. 이 때문에 텔레비전 앞에는 섞인 큐브가 놓이게 됐다. 나는 완성된 큐브가 보고 싶었다. 단지 섞인 큐브보단 완성된 큐브가 낫다는 생각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큐브를 잡았다. 하지만, 큐브는 몇 번 돌린다고 쉽게 맞춰지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를 맞추기 위해 큐브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모두 떼서 원래 자리에 다시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왠지 모를 회의감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편법을 써서 큐브를 완성했다고 합리화하는 내가 싫었다.나는 큐브를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큐브를 다시 섞은 뒤 이를 맞추기 위한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큐브는 맞추기 위한 공식이 있었고, 나는 그 공식을 다 외울 때까지 방 안에서 큐브와의 사투를 벌였다. 내가 모르던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은 묘하게 짜릿했으며, 어느덧 완성된 큐브를 손에 쥐기까지 7시간이 흘러

78내림돌 | 황성진 기자 | 2018-04-18 16:55

나는 뭐든지 기록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달력에 매일 할 일을 빼곡히 정리해놓는 것은 기본이고, 몇 년째 수업 필기 자료와 과제를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다. 책, 영화, 공연, 전시회를 보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상문을 쓰고, 여행을 가면 카메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찍기에 바쁘다. 내가 이렇게 기록에 대한 강박을 느끼기 시작한 계기는 꽤 단순하다. 나의 경험, 생각 따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잊힌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과거의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를 영원히 기억에 남기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꼬박꼬박 그것들을 기록하는 것뿐이었다.그런 나의 보물 1호는 언제나 일기장이었다. 매일매일 나의 글씨로 채워나간 일기장들을 펼쳐보면, 과거의 내가 했던 사소한 생각들이 가득하다. 대수롭지 않아서 더 좋다. “매점에 새로 들어온 과일 음료수가 정말 맛있다”, “밤에 산책하다가 달을 봤는데 유난히 밝았다” 같이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거르지도, 고치지도 않고 적어댔다. 심심할 땐 그림도 자주 그렸고, 자습시간에 친구들이 보내온 쪽지 조각들을 구석에 붙이기도 했다.그 무수한 티끌 같은 기록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나

78내림돌 | 박민해 기자 | 2018-03-28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