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조그마한 변주를
일상에 조그마한 변주를
  • 김태린 기자
  • 승인 2024.04.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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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새파란 하늘에 낮게 흩뿌려진 구름을 보면 가끔 수업을 그만두고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창가에 앉으면 종종 눈 틈 사이사이 내려앉은 봄볕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출석 확인만 한 채 수업 중간에 몰래 사라지는, 이른바 ‘출튀’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다. 역마살이 낀 듯, 한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려는 충동을 억누른 채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은 확실히 고역이다.

그래서 나는 소소한 일탈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잠든 밤 조심스레 기숙사 밖으로 나선다. 자정을 넘긴 시각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는 낮 동안 부담의 무게에 억눌려 숨 쉬지 못하던 내가 살아있음을 한 번 더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익숙함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져갈 때마다 차오르는 기대감에 부풀어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폭풍의 언덕을 넘어 학생회관에 도달한 것을 깨닫는다.

칠흑 같은 어둠에 제 색을 빼앗긴 학교를 보면 낮과는 상반된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애써 빛을 붙들어 놓으려는 듯 처연히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과는 대조적으로 어두운 회색조를 띤 채, 묵묵히 그 원형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서글픈 감정마저 든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늦은 시간, 나는 잠시 적막한 학교의 한편을 빌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해가 뜨기 직전의 하늘은 창백한 연파랑 빛을 띤다. 짙은 어둠에 잠식돼 있던 사물들도 어느 순간 시릴 정도로 백색에 가까운 빛에 슬그머니 제 색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났노라 말하는 것만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레 형형색색의 모습을 뽐내는 풀들, 잠에서 막 깨어나 조잘대는 새들의 모습을 난 좋아한다.

입학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9주의 시간을 뒤로한 채, 따뜻한 5월이 다가오고 있다. 때론 반복된 일상에 지치고, 지금 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곤 한다. 매일매일 같은 하루만을 반복하기에 질렸다면 일상에 소소한 변주를 주는 것도 좋다.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은 채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걷는 것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담뿍 쌓인 도서관의 서가에서 낡은 책 뭉치를 발견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