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앓이’를 아시나요?
‘서푼앓이’를 아시나요?
  • 강호연 기자
  • 승인 2023.11.0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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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노란색 통원버스를 타고 내릴 때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이웃 아주머니 중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구보다 자상한 분들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들도 어머니가 가방을 대신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쓰지 않았다. 그때 다니던 유치원 원훈이 ‘스스로 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가 배웅을 나오셨는데 가방을 들어주시려 했다가 내가 “제 가방은 제가 드는 거예요”라며 가방을 양보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릴 적이지만 내 물건을 스스로 책임지는 기분은 꽤 뿌듯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를 키울 때 ‘서푼앓이’를 실천했다고 한다. ‘서푼앓이’란 ‘열 푼 중 서 푼 정도를 앓게 한다’는 뜻이다. 한 푼은 대략 600원 정도로, △한 푼 △두 푼 △세 푼 식으로 세는데 발음하기 좋게 세 푼은 서 푼이라고 했다. 열 푼 중 서 푼은 3분의 1 정도를 의미한다. ‘서푼앓이’라는 표현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기보다는 셋에 하나 정도는 부족함을 느끼게 하며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 부모라면 약간의 부족함이 아이에게 주는 가르침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서 푼의 부족함을 앓는 과정에서 아이는 더 가지고 싶어도 절제하는 힘을 키워나간다. 또 남의 부족함을 공감하고, 좀 더 나아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서푼앓이’를 통해 △절제의 힘 △공감의 힘 △노력의 힘을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현명한 육아법을 몸소 실천했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아이는 해도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의 기준이 없다 보니 타인과의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 자신을 위험하게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분명한 행동 기준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심신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따뜻한 햇빛과 충분한 물이 필요하지만, 비바람을 견디는 과정도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 일부 학부모의 과한 민원으로 교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여럿 보도돼 사회적 파장이 크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의 ‘서푼앓이’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