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 중 몇 번은 그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너무 자신 있었던 나머지 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흔히 아프니까 청춘이라던데, 너무 안 아파서 빨리 늙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생각이 얼마 전에 깨졌다.
시험 기간에는 모두가 ‘시험만 끝나면 무엇을 해야지’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내 이번 계획은 △야식 먹고 밤새워서 드라마 보기 △멀리 걸어가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 가기 △오는 길에 커피와 디저트 사 먹기 △도서관에서 영화 DVD를 빌려와 보기였다. 전부 내가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날 밤, 배고프지도 않은데 컵라면을 꾸역꾸역 먹고 졸린데도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봤다. 심지어 새벽 4시까지 본 드라마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계획을 깨기 싫어 밖으로 나갔다. 식당은 생각보다 더 멀었고, 몸이 무거워 더욱더 멀게 느껴졌다. 기껏 도착해서는 속이 안 좋아서 시킨 음식의 반도 못 먹었다. 비싸게 주고 산 쿠키는 달기만 하고 별로였다. 카페에서는 라테를 디카페인으로 주문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두 모금 마시고 버려야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DVD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약 한 달간 보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착잡한 마음에 거의 석 달 만에 일기를 써보려고 노트와 만년필을 꺼냈다. 그마저도 너무 오랜만에 꺼냈더니 만년필 잉크가 다 말라붙어 있었다. 만년필을 씻고 다시 잉크를 채우는 동안 손이 잉크 범벅이 됐다.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실패했으며, 기분만 나쁘고 피곤해졌다.
행복은 공식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에 좋아하는 것을 더한다고 그게 다 좋으리란 법이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닐 수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좋아질 수도 있다. 난 아직 20살이다. 호불호를 딱 갈라놓고 평생 그것만 믿고 살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실패한 하루에서 나에 대해 너무 확신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방황하고 헤맬 수 있을 때 많이 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린 젊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