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하다는 건
의연하다는 건
  • 정호영 / 무은재 23
  • 승인 2025.0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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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이번 학기도 어느새 끝자락에 이르렀다. 돌아보니, 내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의연함’이라는 태도였다. 흔히 의연함이라 하면 굳세고 흔들리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내게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위기에 부딪혔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다시 붙잡아 주는 작은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뮤지컬 동아리 OPCA의 정기 공연이 막판에 외부적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취소됐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공연 날짜를 맞추느라 쏟아부었던 열정과 노력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 같아 분노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임을 깨닫고 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이미 벌어진 일에 매달리지 말고, 이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자’였다. 함께 밤낮없이 연습해 온 동료들을 떠올려 보니, 비록 공연은 무산됐어도 우리가 쌓아 온 우정과 그 과정에서 얻은 배움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에서 얻는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의연함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학업 스트레스 앞에서도 의연함은 큰 힘이 됐다. 시험과 과제가 몰려올 때면, 다른 사람들은 척척 잘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공연 취소라는 큰 좌절을 이겨 낸 뒤부터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이번 시험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컸지만, 지금은 실패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그게 내 전부를 결정짓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 무대가 무산되는 일을 겪으니, 성적이라는 것도 내 삶을 좌우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늘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다. 공연이 무산된 날이나, 과제 점수가 예상보다 낮았던 날 밤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의연함이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잠시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설 힘’이라는 걸 배웠다. 부정적인 감정을 무작정 외면하기보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돌아보고 나면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렇게 어제의 좌절이 오늘의 발판이 됐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일이 틀어질 수 있고, 아무리 공부에 매진해도 성적이 늘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다. 이번 학기를 통해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와도 결국 다시 중심만 잡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그게 내가 깨달은 ‘의연함’의 핵심이다.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가올 또 다른 도전도 흔들림 없이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앞으로도 나를 일으켜 세울 가장 든든한 힘이 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