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우리대학에 입학하고, 이전에는 상 상조차 하지 못했던 범위의 수많은 선택지 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 자체가 나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학과 △진로 분야 △직업을 모두 내 손으 로 결정해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나의 삶 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고 선택할 수는 없기에 △어떤 기준으로 △어느 시점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 양한 교수님들과 상담할 기회가 있을 때마 다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지금의 연구 분야를 정하게 되셨 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삶을 걸고 평생을 도전할 분야가 그냥 정해졌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교수님들과 같은 한 분야의 대가는 더더욱 어떤 터닝 포인트 로부터 지구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거나, 암에 걸린 아이들을 도 와야겠다는 사명 의식을 얻으셨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랍게도 ‘우연히’ 였다. 우연히 학회에서 들은 발표가 흥미로 워서, 이 분야를 하는 연구실인 줄 모르고 들어갔는데 사실 다른 분야를 하고 있어서 등 거창한 이유와는 거리가 먼 대답이었다. ‘우연히? 어떻게 우연히 인생을 결정하지?’ 그렇게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청난 이 유가 있을 것이라는 새내기의 기대는 점점 무너져갔다.
또 한번은 우리대학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셨지만, 지금은 이공계와 무관한 분야 의 일을 하시는 선배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 었다. 진로 선택에 관심이 많던 나는 어떻게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는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으셨냐고 여쭤봤다. 그러자 선배님께서 는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든 건 아니었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결국 이렇 게 큰 변화가 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삶의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은 없었다. 터닝 포인트를 바라던 나의 심 리는 사실은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내 삶의 선택을 대신해 줬으면 하는 기대였던 것 같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은 생각보다 그렇 게 도박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 이 순 간 나의 작은 행동들과 선택들, 보내는 시간 이 쌓여서 결국 미래의 내가 된다. 물론 우 연한 기회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 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 다. 그러나 그 기회를 터닝 포인트로 만드는 것은 내가 쌓아 온 시간과 경험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 질문을 드렸던 교수님께서 그 학회에 가실 기회가 없으셨다거나, 그 분야 가 내용이 흥미로운지 알아들을 수 없으셨 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수님께 터닝 포인 트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하루하루 원하는 선 택을 하면서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렇게 나만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기 회가 오면 잡아서 터닝 포인트로 만들 것이 다. 어쩌면 터닝 포인트에 가장 가까운 것은 언제일지도 모르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