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역설
노벨상의 역설
  • times
  • 승인 2024.10.30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에게 매우 경사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학기술인들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자신하며 우리 학교가 개교한 지도 벌써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며 텅 빈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동상 좌대를 매일 마주치는 우리 포스테키안도 복잡한 마음이 들 것이다.

노벨과학상이 지닌 의미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여부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성취 수준을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반적인 세상의 시선에 마주칠 때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과학기술인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이해할 만하다. 과학기술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지금 수준의 성과를 거두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그깟 노벨상이 뭐라고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가. 그깟 노벨상이 뭐길래 노벨상을 받지 못하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달성한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노벨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은 과학기술인들을, 노벨상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의 처지로 몰고 있다.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의 해소를 통한 지적 만족이 아니라 노벨상 수상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 연구가 달성해야 하는 지상(至上)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몇몇 노벨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돈과 명예보다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열정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학부에서 실험심리학을 전공한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의 경우 뇌를 모방한 기계의 가능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신경망 연결주의라는 아이디어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당시 대세였던 기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학계의 비주류로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연구에서 느끼는 재미 하나로 그는 꿋꿋이 자신의 연구를 계속 진행하였다. 크리스마스 날 연구실에 돌아가서 좀 더 연구하도록 허락해 준 것이 가족들이 자신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도 폴딧(Foldit)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의 재미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고자 할 정도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연구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즐긴 누군가가 노벨상을 받길 원한다고 했으면서 정작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을 자다가 받은 것을 보면 그는 노벨상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작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o) 역시 저조한 연구비 수주 실적으로 인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연구원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일생을 바친 mRNA 연구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열정은 이러한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그녀가 계속 자신의 연구를 유지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서 노벨상의 얄궂은 역설이 드러난다. 노벨상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흥미를 느낀 분야에서 진득하게 연구를 진행할 때 노벨상은 도둑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한 당대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연구의 가치가 시간이 지난 나중에서야 노벨상 수상을 통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싶다면 우선 노벨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지라도 과학기술인들이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연구에 평생 매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다음에야 마치 황혼이 저물고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노벨상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낱 그림 장난에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라는 문명사적 변혁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노벨위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학생들은 노벨 수상자들의 연구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열정을 느끼고 오길 바란다. 노벨상보다는 애정과 열정을 바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에 평생 매진할 때 우리는 노벨상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