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용기(勇氣)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용기(勇氣)
  • times
  • 승인 2025.04.23 17:43
  • 댓글 0

포스테키안이라면, 특히 졸업을 앞둔 상황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봤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 잘 맞는 사람일까’, ‘앞으로 어떤 분야에 취직 혹은 진학을 해야 할까’. 언뜻 보면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한 질문이지만, 실제로 답을 찾으려 하면 너무 복잡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선배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봐도 돌아오는 답은 ‘대답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되레 많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꾸만 던질까? 그 끝에는 아마도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짙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테키안들은 대개 성실하고 뛰어난 모범생들이다. 지금까지는 분명한 정답과 확실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대학원과 연구, 그리고 취업이라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붙들고 고민하며, 교과서에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며, 성과는 긴 기다림 후에야 희미하게 드러난다. 그러니 그 과정이 두렵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분야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잘 나가는 분야를 선택하면 좀 더 안정적인 미래가 펼쳐질 거라 기대한다. 어쩌면 커다란 흐름 위에 올라타야 긴 대학원 생활이나 취업 준비의 보상이 더 클 것이라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원을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서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며, 아무리 많은 지식을 동원해도 사회의 흐름을 완벽히 예상할 수는 없다. 최근 AI의 등장으로 여러 직업들이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하나를 분명히 보려고 하면 다른 하나는 오히려 더 불분명해지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이 불확정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삶의 불안함은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속성일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나는 이 불안함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 것인가’이다.

미래의 불안함은 어쩌면 현재의 평안함으로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권하고 싶다. ‘미래보다는 현재의 내가 행복한지부터 묻자’라고 말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일시적인 쾌락이나 순간의 즐거움은 아니다. 연구를 하며 실험 결과가 처음 내 예상대로 나왔을 때의 소소한 짜릿함, 어제보다 성장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울림 같은 것. 그런 순간의 행복이 지금의 나에게 존재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만약 실험 속에서 그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대학원 진학은 좋은 선택일 것이다. 만약 다른 경험에서 그런 미묘한 즐거움을 느꼈다면, 용기를 내어 그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이 옳다. 분야 선택도 마찬가지다. 연구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을 등불이자 등대 삼아 작은 발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다만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이 있다. 선택을 한 그 순간부터는 불안을 떨쳐내려 하지 말고 오히려 친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불안함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긴장감이자, 삶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끄는 자극이다. 이 감정을 잘 안고 가야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 불안을 단숨에 없애줄 거대한 계시나 확실한 답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계시가 아니라 오늘의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다. 불안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필연적인 반사물이다. 그러니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오늘 내가 마주한 작은 행복과 설렘에 충실해보자.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불안했던 미래의 윤곽은 어느새 좀 더 분명하고 따뜻한 빛깔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