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워싱턴대학교의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교수 연구실은 7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과 60여 명의 대학원생을 포함해 150여 명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연구실이다. 포스텍 한 학과의 대학원생 수가 대략 200여 명이니 한 대학교의 단일 연구실로서는 그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거대한 연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CNS 논문’(Cell, Nature, Science)을 연간 5-10편씩 꾸준히 출판하고 있으니 규모뿐 아니라 수행하는 연구의 수준 또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노벨상 수상 여부를 떠나 도대체 어떤 연구실이길래 이러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고 한 분야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궁금해지게 된다. 베이커 교수 연구실의 운영 방식과 구성원들의 연구 문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 최고의 연구그룹을 지향하는 다양한 우리 포스텍 연구실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베이커 교수가 구성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태도는 소통과 연결이다. 커뮤널 브레인(Communal Brain)이 돼야 함을 틈만 나면 구성원들에게 설파한다. 즉, 구성원들의 아이디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움을 창출하기를 기대한다. 연구 미팅 중 새로운 방향이 떠오르면 해당 분야의 학생을 즉시 참여시켜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이메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참조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이쯤 되면 어떤 연구자들은 구성원들 사이의 연구 주제 경쟁이나, 저자 순서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것이다. 베이커 연구실에도 당연히 이러한 문제들은 존재한다. 서로 서운한 일도 많이 생기고, 저자 문제로 여럿 피곤한 일도 많이 생긴다. 하지만 베이커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을 기꺼이 수용하고 정면 돌파한다. 서로 소통하고 연결 지으면서 얻는 가치가 훨씬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이커 그룹의 구성원들은 매우 수평적이다. 특히, 베이커 교수는 이제 막 들어온 대학원생이나 박사후과정생의 의견을 상당히 경청하고 존중한다. 당연히 어설프고 부족하겠지만, 이런 부분은 좀 더 경험 많은 학생을 연결 지어주면 해결될 일이다. 어설픈 아이디어 일지라도, 지도교수가 그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생은 자신감을 갖고 그 아이디어를 개선해 나간다. 지도교수의 이러한 태도를 보면, 다른 구성원들 또한 연차에 상관없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이디어가 수평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 저연차 학생은 바보 같은 생각 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도교수에게, 고연차 박사후과정생에게 그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제안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현실화는 안 되지만, 그중에 몇 개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결국 세상을 바꾸는 논문이 되어 나간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성원들이 편안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환경에서, 연구실의 리더인 지도교수의 역할은 무엇일까? 베이커 교수는 ‘치어리더’라고 답한다. 아무리 지도교수가 똑똑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넘쳐흐르는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모두 앞에서 끌고 갈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베이커 교수는 학생들 각자가 리더가 되어 본인의 연구 주제를 끌고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뒤에서 도와주고 격려한다.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도움이 될 만한 다른 구성원들을 소개해 주고 연결해 줌으로써,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게끔 유도한다. 지도교수의 신뢰와 응원을 받은 구성원들은, 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연구 분야마다 연구하는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연구실 규모에 따른 차이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베이커 그룹의 운영 방식이 정답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연결과 신뢰, 그리고 격려에 바탕을 둔 연구 문화는 왜 그들이 한 분야를 세계적으로 이끌어가는 그룹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이번 노벨상은 한 명의 천재에게 주어진 상이라기 보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 문화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결과인 것이다. 다음 달 노벨위크를 통해 우리 학생들이 노벨상 강연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그 강의에서 베이커 교수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어디서 오는지 잘 경청하기 바란다. 노벨상 수상 이야기가 나오면 베이커 교수는 공로를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모두 돌릴 것으로 감히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