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30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서 우리대학을 설계하고 개교 이후 8년간 초대 총장으로 재임한 무은재(無垠齋) 김호길 박사의 서거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아직은 할 일이 많았던 향년 61세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너무 허망하게 떠나버렸지만, 그가 남긴 혁신과 창의의 족적은 단기간에 우리대학이 한국은 물론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국내/세계대학 순위가 한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수준을 반드시 정확하게 포착하지 않는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1998년 아시아 과학기술대학 1위, 2010년 세계대학 28위 등을 차지하며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NTU)과 홍콩 과기대학(HKUST) 등 신흥 유명 대학 설립 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는 점은 분명 우리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대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영국의 타임즈고등교육(THE)이 개교 50년 이하의 세계대학들을 대상으로 산정한 2023년도 세계신흥대학 평가에서 우리대학을 벤치마킹해 설립된 난양이공대학과 홍콩과기대학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반면, 우리대학은 울산과기대(10위)에 이어 14위에 머무르며 세계 1위는 커녕 국내 1위의 지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과기특성화대학이라는 명성에 대한 의구심이 학내·외 구성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표출되고 있으며, 지난해 우리대학에 대한 모 언론사의 악의적인 보도는 우리대학 구성원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열정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혁신과 창의의 가장 큰 적은 성공의 함정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공개되며 성공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내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현재의 성공을 가져다준 아이디어를 뛰어넘는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대학이 겪고 있는 정체의 원인은 바로 이 성공의 함정으로 볼 수 있다. 개교 이후 우리대학은 혁신과 창의의 상징이었다. 김호길 초대 총장은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 한국대학에서 최초로 박사학위 취득자로만 구성된 교수진 확보, 한국 최초의 방사광가속기 구축 등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실현함으로써 개교 이래 단기간에 우리대학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우리대학이 단기간의 성공에 안주하고 있을 때 우리대학의 성장을 견인해온 아이디어들은 이미 경쟁 대학들에 의해 흡수되고 분석되고, 혁파되고 있었다.
수도권 인구집중 및 지방소멸, 출산율 저하 및 학령인구 감소, 인구 고령화, 고도경제성장의 종료 등 우리 대학이 건립되고 비상하던 1980~1990년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 역시 우리대학의 발전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집중 현상은 우수한 교수진, 연구인력 및 학생 유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대학이 ‘포스텍 2.0’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한 제2의 건학이 김호길 초대 총장의 서거 30주년인 올해부터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성공의 함정에 빠진 우리 대학이 수도권 인구집중 및 지방소멸 등의 사회경제적 악조건 속에서 다시금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김호길 초대 총장이 보여주었던 혁신과 창의의 아이디어,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김호길 초대 총장은 한국의 과학기술로는 무리라며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실패하더라도 실패의 경험이 한국의 과학기술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굳은 의지로 혁신을 실현했다. 또한, 학문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자연과학도이면서 유학 및 한시(漢詩) 등 인문학에서도 굵직한 업적을 남긴 그의 융합적이고도 개방적인 ‘무은재(無垠齋)’ 정신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의 원천으로 우리대학 구성원들이 본받을 점이다. 38년 전 그러했듯이, 우리대학은 다시 한번 더 최고의 대학으로 솟아오를 것이며, 끊임없는 혁신과 창의로 연구와 교육의 선도적 지위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