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앨프레드 마셜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취임 연설에서 인용한 말이다. 경제학자로서 사회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하되 항상 빈민 구제와 사회복지 등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담고 있다. 해당 문구의 뜻처럼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비단 경제학자뿐 아니라 누구나 목표로 해야 할 이상적인 태도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가워지고 있다.
요즘 미디어에는 자극적인 뉴스가 흘러넘친다. 유명인의 논란부터 정치적 이슈, 갈등 요소까지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면 자칫 여론에 휩쓸리기 쉬운 소재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여론에 곧잘 휩쓸려버린다. 사실 파악은 하지 않고 글이나 유튜브 등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의견은 수용하지 않고, 자신이나 주변인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등, 점차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마치 ‘불’과 같다. 이리저리 옮겨붙는 불처럼 여론은 이곳저곳으로 확산하며 점점 커진다. 그렇게 커진 불은 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댓글, 가짜뉴스를 통한 선동은 누군가를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리고 짓밟아버린다. 차분히 사실을 살피기보다, 무언가를 태우기 위해 앞다투어 달려드는 모습이다. 이성적인 판단은 뒷전이고,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만이 앞선다. 우리는 모든 것을 태워 남은 것이 없을 때까지 식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 사회 전반적으로는 점점 본인의 이익과 권리 확보에 매몰돼 가는 모습을 보인다. 고객에 대한 배려나 존중 없이 이익만을 좇는 회사, 국가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이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이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지만 내 지역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심리까지. 누구 하나 손해 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만연하다. 사회 곳곳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서로를 향한 신뢰는 무너져간다. 각자의 마음속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보단 제 앞길만을 찾아 떠나는 각자도생의 장이 된 듯하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은 타인과 사회 전체를 위한 배려와 책임감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옳은 일을 하려는 이성적 판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수많은 이슈가 쏟아지는 요즘 시대에 하나의 주제를 차분하게 바라보기란 어렵고, 여론에 동참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은 선한 방향이든 악한 방향이든 확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여러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실 확인은 된 사항인지, 가짜뉴스는 아닌지 각기 다른 주장을 들어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라는 말처럼, 따뜻한 관계는 먼저 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배려가 쌓일 때, 우리는 더 많은 신뢰와 양보를 받게 된다.
이런 변화는 △사회 제도와 법의 정비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 △공정한 보상 시스템 등 제도적 뒷받침 또한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가 모두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