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은 학생의 통상적 정의 범위 내에서 수행하는 행동이 타인의 모범이 되는 학생을 의미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업적 역량과 성과가 뛰어난 학생이 모범생이라는데 이견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범적인 부모의 정의는 무엇인가? 모범적인 인공지능 엔지니어의 정의는 무엇인가? 모범적인 인생·사회·국가의 정의는 무엇인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로, 모두 개별적인 담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모범생의 정의에 대한 답변은 왜 상대적으로 쉬워야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본 글은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나 사교육의 폐해에 대해 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범생들의 학창 시절 이후에 대해 잠시 논하고자 한다. 모범생들의 양성은 장차 모범적인 사회인들의 출현을 야기하고, 나아가 모범적인 사회·국가 구성의 기본 전제가 된다는 논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받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많은 폐해와 부작용의 출현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이 국가 발전의 주요 기인 요소였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교육 체계 수립 입장에서 매우 설득력이 높은 엘리트 양성 접근법이다.
정량적이고 분명한 모범생의 정의가 현재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우선 대한민국의 초등·중등 교육 체계에서 대한민국의 모범생은 국가가 정한 정량적 기준을 근거로 학업 성적이 특정한 백분위수(Percentile) 내 위치하는 학생으로 분류한다. 왜 모범생이 돼야 하는가? 초등·중등 교육 체계가 지정한 모범생 집단에 속하게 되면, 고등교육 체계 내 모범생들이 진학하는 기관, 소위 명문 대학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이 중론이다. 명문 대학 진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인 자본 획득이 용이한 직업, 직장, 사회적 위치에 대한 접근성을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 자본 획득이 용이한 직업, 직장, 사회적 위치는 현대 사회 기준의 부가적인 가치 창출과 획득을 용이하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대표적으로 상위권 수준의 사유 재산(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의미한다. 이는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이에 상응하는 성과와 결과물의 보상이 뒤따르는 능력주의(Meritocracy)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능력주의는 대게 특정 사회, 경제적 가치의 희소성과 연동이 되며 결과적으로 해당 사람의 △연봉 △사회적 지위 △사회적 자유도의 상승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다. 쉽게 표현하면, 공부 잘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론이었고 지금도 상당한 유효성이 다양한 형태로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모범적인 학생은 모범적인 부모가 되고, 모범적인 직장의 리더가 되고, 모범적인 주민이 되는 것일까? 국가의 교육 체계를 마치고 졸업하는 순간 전환과 진화를 기대하면 되는 것일까? 현재 대한민국의 모범생들은 사회인이 되는 순간 학생 시절과 유사하게 연봉(학업 성적), 직장(재학 중인 학교) 등 역시 정량적인 지표(소위 스펙)로 끊임없는 평가를 받는다. 급기야 인생의 △배우자 △자녀 △거주 지역 △자산 등도 모범생들의 단계 평가 과정의 지표로 활용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한탄과 자조의 목적이 아님을 거듭 밝힌다. 다만, 현대 사회의 큰 가치 중 하나인 자유 민주주의 기반의 사회에서 우리의 모범생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단편적인 모범생의 사회적 통념과 정의처럼, 일률적이며 단편적으로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을 양산하는 과정에 과연 자유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중등 교육 모범생들의 절대다수가 특정한 분야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고등 교육의 모범생들 역시 절대다수가 소수의 직장에 취업하고, 사회 모범생들의 절대다수가 특정한 지역에 집중된 것은 개인 자유 의사의 결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범생들로 구성된 대학은 역시 소수의 정량적인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오늘도 끝없이 SCI 논문들을 작성하고 있다. Q1 논문이 수능, 내신 1등급과 비견되는 현재의 연구 중심 대학의 풍토에 대해 자유와 다양성 차원에서 함께 고찰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