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포스텍
글로컬 포스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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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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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이래 포스텍은 세계의 정상을 향해 달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포스텍은 글로벌 대학이 됐다. 그런 포스텍 앞에 이제는 글로컬 대학으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임무가 놓여 있다. 

글로컬이라는 수식어는 상반되는 두 단어, 글로벌과 로컬이 모순어법적으로 합성된 옥시모론이다. 글로벌은 보편성을, 로컬은 특수성을 가리키는 말이니 글로컬은 ‘보편적 특수성’ 정도를 의미하는 논리적으로는 모순된 말이다. 

시대적 요청들은 종종 글로컬이라는 단어처럼 논리적 모순으로만 들리는 옥시모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환경 파괴의 주된 원인이 되는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이란 수식어를 더한 녹색 성장이 그랬다. 또한, 경제 민주화, 기업 사회책임, 사회적 기업과 같은 말들도 논리적으로 대립하는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일종의 옥시모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환경과 성장을 동시에 그리고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를 모두 함께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의 저자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기업의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 사이에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폭정(Tyranny of OR) 속에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 둘 모두를 추구한 기업이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어 낸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치 사슬(Value Chain)이라는 말의 창시자 마이클 포터는 기업 활동의 핵심 가치를 공유 가치(Shared Value)의 측면에서 재정의하면 사적 이익과 공유 가치를 동시에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는 대립하는 사적 이익과 공적 가치도 좀 더 깊은 차원에서는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개념들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우리는 종종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식으로 양쪽을 절반씩 섞어 그 딜레마를 해결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해결책들도 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반 성장 반’을 녹색 성장의 실현 방안으로 혹은 ‘사적 이익 반, 공적 가치 반’으로 경제 민주화 혹은 사회적 기업의 실현 방안으로 채택하는 것은 결코 최선은 아니다. 상반되는 것들을 모두 조금씩 채택하는 방안은 그 개념 간의 긴장을 그대로 남겨 두는 것으로 임시적인 균형일 뿐 지속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따라서, ‘로컬 반 글로벌 반’ 식으로 글로컬이 가리키는 방향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 충분하지 않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받는 자리에서 인용하며 널리 알려지게 됐다. 영화 속 인물들의 내밀한 사적 서사는 개개인의 특수성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 개인적 서사가 좀 더 깊어져 극히 내밀한 곳에 이르게 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창의성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로컬 한 것이 가장 글로벌 하다’는 생각이 진정한 글로컬 대학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지역적 특수성과 지구적 보편성 모두를 통합된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대학. 지역문제가 가진 특수성에 성실히 천착하여 얻은,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지구적 보편성을 갖는 결과물을 창출하는 대학이 진정한 글로컬 대학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의 양극화, 고령화와 저출산, 청년 실업 등은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다. 이 모든 문제는 승자독식의 무분별한 세계화의 결과로 이미 예견되던 문제들이다. 이제 글로컬 대학을 지향하는 포스텍은 이런 문제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지역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 이야기에 담긴 탄식과 애환, 소망과 두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지역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 속에서 땀 흘려 구축한 포스텍의 해법이 우리나라와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 되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가장 로컬 한 것이 가장 글로벌 하다’는 역설을 이루어 내는 글로컬 포스텍의 미래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