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1건)

동조는 참 편리하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산되고, 그다지 큰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가 멋지게 닦아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뭐든 남들만큼은 할 수 있다. 다수가 만든 결정의 흐름에 올라타지 않고 자신만의 선택을 해봤자 눈에 띌 뿐이다. 그 선택이 만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힘들며,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에는 그 이유가 존재한다. 심리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다수의 선택이 옳다고 느끼고, 그들에 순응하게 된다. 이젠 동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지며, 남들을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 그 결과 개개인의 특징이라곤 없는 획일화된 사회가 만들어진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위와 유사한 사고방식으로 많은 결정을 내린다. 특히 선택지에 대해 아는 게 적거나 아예 관심이 없을 때 무작정 결정하기가 두려워 남을 따라가려 한다. 또는 자신이 압도적 소수에 속한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할 때 결국 다수에게 순응하게 된다. 단순히 다수와 대립하기 싫어서 자신의 결정을 바꿀 때도 있다. 어쩌면 요즘 사회 분위기 자체가 개인의 특색을 모난 점으로 치부하

78내림돌 | 조준혁 기자 | 2026-09-09 06:05

식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도록 진화했다. 나 역시 몸을 위해 밥을 먹는다. 하지만 아무리 밥을 잘 챙겨 먹는다고 한들, 여전히 허기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마음이 고픈 순간이다.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마음과 정서에도 채워줘야 하는 양분이 있다.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 부른다. 낭만은 내 정신의 양식이 되어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많은 사람은 낭만을 특별하고 거창한 것으로 여긴다. 멋진 여행이나 영화 같은 순간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에게 낭만은 마음의 여유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바쁜 학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지금의 나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는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이 쌓일 때, 비로소 내 삶이 메마르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음악 △산책 △책 읽기에서 그런 여유를 찾는다. 요즘 나는 재즈에 푹 빠져있다. 재즈의 즉흥적인 선율과 세련된 분위기에 스며들다 보면, 어느새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감사하게도 재즈 밴드의 일원으로 함께하며 그런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누리고 있다. 또 가끔은 휴대폰

78내림돌 | 김민하 기자 | 2026-05-27 14:04

지난 9일,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경기 국가대표 마운드 위에 41세의 투수가 올라왔다. 역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최고령 선수, 노경은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선발 투수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올라왔음에도, 좋은 타격을 선보이던 호주 국가대표 타선을 2이닝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역시 WBC 8강 진출에 성공했다.베테랑 투수 노경은의 야구 커리어에는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이에 걸맞게 그의 야구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2003년, 두산 베어스에서 야구 선수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시작은 미미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유망주로 살았으며, 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2012년이 돼서야 그를 믿어주는 감독을 만나며 첫 번째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2년 동안 규정이닝을 채우고, 매년 10승을 웃도는 성적을 거두며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버팀목이 됐던 감독이 경질되고, 새로 부임한 감독과 갈등을 겪으며 그의 경력은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노경은은 두산과의 결별을 택했다.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 번째 기회를 맞

78내림돌 | 최진현 기자 | 2026-03-25 15:51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을 계기로 성사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종찬 동문과의 인터뷰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우리대학이란 울타리 바깥의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잡은 동문과, 다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느낀 순간부터 단순히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은 기자의 몫이지만, 이번에는 그 책임이 크게 다가왔다.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자로서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질문지를 준비하며 단순히 ‘어떤 답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나는 왜 이 질문을 던지는가’를 스스로 묻게 됐다. 취재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때 더욱 선명해졌다. 특히 동문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성취를 조명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대학이라는 공통의 출발점에서 각자가 어떻게 다른 길을 만들어갔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사실 나는 우리대학 학생들의 미래를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모습으로 상상해 왔던 것 같다. 대학원에 가거나, 기업의 연구직으로 나아가는 길. 비슷한 전공과 비슷한 궤적 속에서 삶도 어느 정도 닮아 있을

78내림돌 | 한정우 기자 | 2026-02-26 14:47

지난 시대는 잔향마저 스러진다.상대가 분명한 시대가 있었다. 전후(戰後) 세대에게는 배고픔이 상대였고 물질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민주화 세대에게는 정부가 상대였다. “그때는 문제가 분명했고 싸울 대상이 있었다. 민주화든 무엇이든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의 문제는 그 희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라고 영화감독 이창동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우리 세대의 링 위에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각자 저만의 링 위에서 치열하게 스텝을 밟고 있는 고적한 복서의 세대요, 상실의 시대다.상실의 시대라는 단어의 어감이 지나치게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상실의 시대란 다시 말하면 창조의 시간이다. 열매가 떨어지고 그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듯이, 긴 밤 끝에 여명이 밝아 오듯이 상실은 창조를 잉태하고 있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가 내미는 창조의 과제는 언제나 그 시대 젊음의 몫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한국 번안: ‘상실의 시대’)이라는 소설을 통해 일본에서 전쟁이라는 거대하고도 파괴적인 가치가 소실된 뒤 상실의 시대에 사는 젊음을 그려 보인다. 소설에서 하루키는 창조의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창조의 방향을 짚어 보고 그 이후의

78내림돌 | 송명빈 기자 | 2025-11-05 11:19

나는 이번 여름 3개월간의 방학을 모두 포항에서 보냈다. 계절학기 수강과 연구 참여, 동아리 합숙으로 나름의 부지런한 생활을 유지했다. 처음으로 방학을 포항에서 보내는 동안 느낀 가장 큰 점은 캠퍼스의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학기 내내 북적북적하던 지곡회관과 도서관도 하루 종일 한산한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고, 심심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됐다. 개강이 가까워지거나 동아리 합숙들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사람들이 조금 더 모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기간이었다.하지만 캠퍼스가 조용해지니 비로소 보이는 모습들이 있었다. 6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영어 수업이 진행돼 연구 참여를 같이하거나 과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식사 시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생각보다 지인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절학기가 끝난 이후 동아리 합숙이 시작되기 전에는 적막한 공기 속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본가로 돌아가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 또한 익숙해졌다. 규칙적이고 건전한 생활패턴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게임이나 늦잠으로 시간을 쓰기보다는 운동과 독서를 하며

78내림돌 | 유영주 기자 | 2025-09-02 21:42

얼마 전, 인생 처음으로 국내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람(이하 직관)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본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현장을 찾은 적 없이 TV 중계로만 야구를 접해왔다. 사실 예전부터 야구장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직접 보면 뭐가 그리 다르겠어? 오히려 힘들기만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매번 마음을 접곤 했다. 게다가 그동안은 대학 입학이라는 가장 큰 목표가 있었기에 쉽게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그런 내가 대학에 입학한 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잠실야구장에서 생애 첫 직관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TV 화면 너머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감동을 경험했다. △관중들의 응원 소리 △선수들의 응원가 △풀카운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극도의 긴장감 △득점 순간의 폭발적인 환호 △수비 실책에 따른 탄식까지. 야구장의 분위기는 화면 속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요즘은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예전보다 훨씬 더 쉽게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보니 굳이 현장을 찾지 않아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한때는 글로벌 I

78내림돌 | 한정우 기자 | 2025-05-28 15:5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성향이 유사하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고, 이들과 쌓은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는 묘한 경계심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대학과 같이 관심사가 단조로운 소수의 커뮤니티 안에서는 의도적으로 생각의 품을 넓히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어쩌면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가두고 있을지도 모른다.지난해 친형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일이다. 형은 의류학과에 다니던 중 입대하며 휴학했고, 지난해부터는 요식업과 패션 브랜드의 오너가 되기를 꿈꾸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날 형은 ‘좋은 패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자신의 미래 로드맵을 한 시간가량 내게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는 ‘패션이나 요식업은 다 운 아니야?’ ‘요즘 패션은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사치만 부추기지 않나?’라는 비판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중 몇 가지는 입에 머금고 있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대듯 물어보기도 했다. 진심으로 형의 생각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공부를 통한 성공만이 정답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세워놓

78내림돌 | 김윤철 기자 | 2025-03-26 18:12

컬러 블라인드 챌린지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해외에서 유행한 이 챌린지는 무작위로 배치된 색색의 점들로 팔레트를 만든 뒤, 흑백으로 전환해 색의 명도만을 기준으로 그림을 채우는 과정이다. 처음 이 챌린지를 접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 끝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흑백 반전을 해제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완성도에 감탄했다.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었고, 미지의 영역이 주는 설렘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이는 추리소설에서의 쾌감과도 닮아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추리소설 특유의 몰입감에 매료돼 결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책을 덮지 못하곤 했다. 주인공은 알리바이를 분석하고, 단서를 조합해 트릭을 풀어내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모든 인물이 범인일 수 있다. 심지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인물이 범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추리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느끼는 전율은 단순히 ‘범인을 맞혔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 반전이 만들어낸 짜릿한 충격에서 비롯된다. 이 반전의 묘미는 단순한 서사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반

78내림돌 | 정혜정 기자 | 2025-02-26 20:39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만남이 있으면 작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작별이 많은 것 같다. 졸업으로 학교를 떠나는 사람들, 꿈을 찾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 등 각자 저마다의 길로 나아간다. 12월의 끝이 다가올수록,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감사의 말을 아낀 것을 후회한다. 이번에는 말해야지, 다음에는 정말로. 잊고 있었던 찰나, 어느 날 문득 돌아본 나는 커다래진 감사함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내가 잠시 잊은 사이 마음 한쪽에는 잊어버린 말들이 쌓이고 있었다. 방황하던 때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동아리 선배님들의 조언,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지도해 주신 포항공대신문사 선배님들, 항상 나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주는 친구들. ‘언젠가는 꼭 전해야지’ 하다가 결국 삼킨 말들은 점점 잊어버리다가 결국 전하지 못하고 입안에서 흩어진 채 연말을 맞이하게 됐다.고마움을 전하지 못하고 작별하기에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담아둔 감사의 말을 글로나마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쓰고, 친구들에게 잊어버렸던 ‘고마워’를 전한다던가, 시간이

78내림돌 | 김태린 기자 | 2025-01-06 09:00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모수’의 안성재 셰프는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복싱에 진심이다. 운동하는 동안 그 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 생각하며 삶의 압박을 잊고 겸손해진다는 말은 요즘의 나에게 큰 공감이 됐다.늦은 저녁,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밖에 나갈 준비를 한다. 운동화를 신고 스마트 워치를 찬 채 형산강으로 갈 때면 알 수 없는 고양감에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러닝은 어느새 내 취미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대학에 헬스장도 있고 러닝머신도 있는데 왜 굳이 멀리까지 나가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주변에 러닝을 추천하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동안은 많은 것을 잊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최근 몇 달간 좀 지쳤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고 보란 듯이 실패했다. 강의도 동아리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판을 벌였고 이를 수습하는 내내 후회했다. 친구와 부모님, 교수님 모두 내게 하는 일 중 몇 개는 잠시 내려놓고 쉬는 것을 추천했지만, ‘능력껏’ 하라는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경험하며 얻는

78내림돌 | 유영주 기자 | 2024-11-27 14:29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대유행했지만, 띄어 앉고 조용히 본다는 조건으로 공연이 다시 열리던 무렵이었다. 뛰지도 못하고 떼창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옷이 펄럭일 정도로 큰 드럼 소리,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2시간 내내 불러준다’라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금요일에 학교가 끝나면 롤링홀, 프리즘홀 등 홍대 공연장으로 달려가 인디밴드의 공연을 봤다. 공연에 가지 못하거나, 해외 밴드를 좋아할 때는 라이브 영상을 열심히 봤다. Muse의 2007년 웸블리 공연은 얼마나 많이 돌려봤던지 이젠 영상을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다. 화면에서만 보던 가수를 내한 공연에서 직접 봤을 때는 믿기지 않아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코로나 규제가 완화되고 본 첫 공연이 2022년 ‘뮤즈온데이’ 3일 차였다. 처음으로 함성을 지를 수 있었던 공연인 동시에 처음으로 스탠딩석(입석)에서 본 공연이었다. 이날 크라잉넛을 처음 봤는데, 에너지 넘치는 펑크록을 부르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과 관객들을 장악하는 무대매너에 빠져들었다. 대부분의 노래를 몰랐음에도 펄쩍펄쩍 뛰며 후렴을 되는대로 따라 불렀고, 이날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78내림돌 | 김수진 기자 | 2024-10-30 13:00

‘할 수 있다, 실패해도 럭키비키잖아’외면하고 싶은 순간조차 긍정적으로 사고하자는 뜻의 말이다. 평소에는 나도 웃으며 럭키비키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우연히 이 말을 들으니, 할 수 없는 걸 왜 자꾸 하겠다는 건지, 실패가 어떻게 럭키라는 건지, 싶더라.문득 고등학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피로사회’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은 21세기 현대사회가 과거 ‘~하면 안 된다’가 대전제였던 규율사회에서 벗어나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가 만연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과 긍정성이 사회 곳곳에 만연했던 수직적 구조와 지배적 규율로부터 우리 사회를 더욱 자유롭게 하며 개인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다.기회와 자유의 바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점점 피로해지는 동시에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긍정이 초래한 강박과 탈진 때문이라고 한다. 주어진 자유의 총량은 증가했지만,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와 자기 착취를 불러온다. 자신의 한계를 악착같이 이겨내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마음은 점점 병들게 되는 것이다.스물이 된 올 한 해

78내림돌 | 양지윤 기자 | 2024-09-06 18:46

최근 입시의 최대 이슈는 단연코 의대 정원 확대일 것이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 수험생부터 재수생, 다니던 직장을 쉬고 의대에 도전하는 사람까지 생겨 지난달 5월 치러진 모의고사 응시인원은 지난해 5월보다 15,000명가량 증가했다. 27년 만에 1,509명의 의대 정원이 증가한 지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대(大)의대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나는 의대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의대를 지망하는 사람 중에 정말 환자들을 살리고 의학을 연구하는 일에 열정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물론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요즘에는 사회적 지위나 안정적이고 높은 수입이 의사라는 직업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소신 있게 산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우연히 접한 천문학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지금은 반도체라는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나의 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학 입시 결과나 다른 사람의 말이 자신에게 맞는 대학이나 진로를 정해주지는 않는다는

78내림돌 | 유영주 기자 | 2024-06-12 16:10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 중 몇 번은 그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너무 자신 있었던 나머지 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흔히 아프니까 청춘이라던데, 너무 안 아파서 빨리 늙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생각이 얼마 전에 깨졌다.시험 기간에는 모두가 ‘시험만 끝나면 무엇을 해야지’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내 이번 계획은 △야식 먹고 밤새워서 드라마 보기 △멀리 걸어가서 가보고 싶었던 식당 가기 △오는 길에 커피와 디저트 사 먹기 △도서관에서 영화 DVD를 빌려와 보기였다. 전부 내가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날 밤, 배고프지도 않은데 컵라면을 꾸역꾸역 먹고 졸린데도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봤다. 심지어 새벽 4시까지 본 드라마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계획을 깨기 싫어 밖으로 나갔다. 식당은 생각보다 더 멀었고, 몸이 무거워 더욱더 멀게 느껴졌다. 기껏 도착해서는 속이 안 좋아서 시킨 음식의 반도 못 먹었다. 비싸게 주고 산 쿠키는 달기만 하고 별로였다. 카페에서는 라테를 디카페인

78내림돌 | 김수진 기자 | 2024-05-22 15:49

요즘 들어 새파란 하늘에 낮게 흩뿌려진 구름을 보면 가끔 수업을 그만두고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라. 창가에 앉으면 종종 눈 틈 사이사이 내려앉은 봄볕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출석 확인만 한 채 수업 중간에 몰래 사라지는, 이른바 ‘출튀’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다. 역마살이 낀 듯, 한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려는 충동을 억누른 채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은 확실히 고역이다.그래서 나는 소소한 일탈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잠든 밤 조심스레 기숙사 밖으로 나선다. 자정을 넘긴 시각 얼굴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는 낮 동안 부담의 무게에 억눌려 숨 쉬지 못하던 내가 살아있음을 한 번 더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익숙함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져갈 때마다 차오르는 기대감에 부풀어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폭풍의 언덕을 넘어 학생회관에 도달한 것을 깨닫는다.칠흑 같은 어둠에 제 색을 빼앗긴 학교를 보면 낮과는 상반된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애써 빛을 붙들어 놓으려는 듯 처연히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과는 대조적으로 어두운 회

78내림돌 | 김태린 기자 | 2024-04-22 17:37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방문하고자 길을 걷고 있던 나는 한 글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이 문장을 마주치자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 던졌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우리는 부모님과 전문가들로부터 책의 장점에 대해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가 기능을 하기 위해선 연료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나아가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스스로 던졌던, 독서를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줬던 질문이었다.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읽기 시작했던 책은 시간이 흐르며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해 갔다. 중고등학교 쉬는 시간이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자습 시간마다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전 문학을 읽어도 책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학 서적을 봐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정말 책을 통해 얻는 것이 있는가라는 불안감에 빠져들게 됐다. 사실 고전 문학을 분석하며, 책의 많은 내용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아는 것

78내림돌 | 이주형 기자 | 2024-03-22 18:24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릴 때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의 지난 1년 또한 그랬다. 수시 원서 접수 직전이 돼서야 눈에 들어온 우리대학에 다니게 됐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시를 1년 더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합격’은 일종의 안심이자 구속이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막연하게 공학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내가 정한 길에 현재의 내가 갇혀 새로운 꿈을 펼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대생’이 되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은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 것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지난 1년간 포항공대신문사와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겨울방학에는 2024 새내기새로배움터준비위원회에서 신입생들이 우리대학에서 경험하게 될 첫 행사를 준비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의 자아정체성이 형성될 무렵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나는 ‘인간은 언제나 혼자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깊은 인간

78내림돌 | 오유진 기자 | 2024-02-29 19:59

문득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드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나는 짧은 시간 존재했다 사라질 먼지와도 같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여태까지 내가 목표하고 노력했던 것들의 의미를 잃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한때 무엇을 하든 권태에 빠져있던 적이 있다. 그러다 내 나름의 답을 찾았는데, 그 실마리가 ‘실존주의’였다.실존주의는 이런 허무주의적 관점에 반해 인간의 ‘존재’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선택은 그 자체로 정답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둘러싼 외부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나의 인지 그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정의가 된다.처음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는, 개인의 선택이 모두 정답이라면 법과 규범이라는 외부 세계를 무시한 채로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옳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실존주의란 ‘거기 있음’에 기반을 둔 학문이므로 결국 ‘거기’에 해당하는 세계와 나는 상호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에는 자유와 함께 세계에 대한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많은 이들이 무기력과 허무를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실존주의를 어떻게 받

78내림돌 | 정유현 기자 | 2024-01-01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