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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출시된 락스타 게임즈의 창립 20주년 기념작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1899년 미국 서부시대의 끝물을 배경으로, 무법자 갱과 새로운 법질서의 충돌, 그리고 몰락하는 갱에서 주인공의 내·외적 갈등을 다룬다. 이 게임은 △스토리 △연출 △연기 △그래픽 등 모든 방면에서 극찬을 받았고, 역사상 네 번째로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이 됐다. 게이머들이 아쉬워하는 건 딱 하나, 바로 속도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튜토리얼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챕터 ‘콜터(Colter)’는 완수하는 데 약 두 시간이 걸린다. 플레이어는 그동안 설산에 갇혀 기대했던 광활한 오픈월드와 자유로운 인카운터를 즐길 수 없다. 시리즈의 전작 ‘레드 데드 리뎀션’보다 말 타는 속도가 현실에 맞게 느려졌고, 전작에선 어느 때든 쓸 수 있던 ‘빠른 이동’은 본작에선 극 후반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시스템은 보통 게임의 적으로 불린다. 하지만 난 이 지루한 미션이 이 게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본다.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단순한 총싸움의 카타르시스보다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느린 플레이를 통해 사용자는 맹목적으로 자극을 찾기보다 캐릭터 사

포스테키안의픽 | 김수진 기자 | 2026-09-09 06:05

동조는 참 편리하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산되고, 그다지 큰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가 멋지게 닦아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뭐든 남들만큼은 할 수 있다. 다수가 만든 결정의 흐름에 올라타지 않고 자신만의 선택을 해봤자 눈에 띌 뿐이다. 그 선택이 만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힘들며,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에는 그 이유가 존재한다. 심리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다수의 선택이 옳다고 느끼고, 그들에 순응하게 된다. 이젠 동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지며, 남들을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 그 결과 개개인의 특징이라곤 없는 획일화된 사회가 만들어진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위와 유사한 사고방식으로 많은 결정을 내린다. 특히 선택지에 대해 아는 게 적거나 아예 관심이 없을 때 무작정 결정하기가 두려워 남을 따라가려 한다. 또는 자신이 압도적 소수에 속한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할 때 결국 다수에게 순응하게 된다. 단순히 다수와 대립하기 싫어서 자신의 결정을 바꿀 때도 있다. 어쩌면 요즘 사회 분위기 자체가 개인의 특색을 모난 점으로 치부하

78내림돌 | 조준혁 기자 | 2026-09-09 06:05

식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도록 진화했다. 나 역시 몸을 위해 밥을 먹는다. 하지만 아무리 밥을 잘 챙겨 먹는다고 한들, 여전히 허기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마음이 고픈 순간이다.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마음과 정서에도 채워줘야 하는 양분이 있다. 나는 그것을 낭만이라 부른다. 낭만은 내 정신의 양식이 되어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많은 사람은 낭만을 특별하고 거창한 것으로 여긴다. 멋진 여행이나 영화 같은 순간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에게 낭만은 마음의 여유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바쁜 학기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지금의 나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는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이 쌓일 때, 비로소 내 삶이 메마르지 않고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음악 △산책 △책 읽기에서 그런 여유를 찾는다. 요즘 나는 재즈에 푹 빠져있다. 재즈의 즉흥적인 선율과 세련된 분위기에 스며들다 보면, 어느새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감사하게도 재즈 밴드의 일원으로 함께하며 그런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누리고 있다. 또 가끔은 휴대폰

78내림돌 | 김민하 기자 | 2026-05-27 14:04

사람은 누구나 자기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모두가 자기 얘기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글쓰기 수업, 에세이 상호 첨삭이 있는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포항공대신문에 약 2년간 있으면서 많은 학생의 수필을 읽었다. 당연히 수준이 좋지 않다. 아마추어의 글이니 주제도 문장도 어설프다. 이해한다, 다들 글을 그렇게 잘 쓰면 왜 여기에 있겠는가? 하지만 조잡한 것을 넘어서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아마추어 수필은 대체로 이런 흐름을 따라간다.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일이 발생해 괴로웠다. (주로 성적이 안 좋아졌거나 진로 고민이 생긴다) 그러다 어떤 것을 깨달았다, 또는 시도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다. 이제 앞으로 내 앞엔 이게 남았다. (주로 어디에 취업하거나 진학하려고 한다) 다들 이랬으면 좋겠다.구성만 놓고 보자면 흠잡을 곳 없이 교과서적인 수필이다. 자신의 체험에서 가치를 찾아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글은 결론적으로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경험이랄 것이 특이하지도 않고, 체험을 통한 사색은 얕다. 어쩌겠는가, 모두가 특이한 경험을 하면서 살지는 않으니. 결정적인 점은 소재가

78오름돌 | 김수진 기자 | 2026-04-29 09:30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란 무엇인가.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는 오늘을 살아내기도 벅찬 어른에게, 우정과 사랑은 안개처럼 희미한 이상에 불과하지 않은가.필자는 오늘날을 ‘정(情)의 상실’의 시대라 부르고 싶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각박한 하루 속, 한없이 자신에게는 관대해지지만, 타인에게 웃음을 잃고 날을 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소리쳐 작가는 그런 의도에서 ‘명품관의 진상’을 기획하게 됐다. 물질주의가 가장 범람하는 ‘백화점’이라는 배경에서, 진상 손님들을 맞닥뜨리고 이에 대처하는 주인공 ‘오진상’의 에피소드를 차례차례 꺼낸다. 가장 물질적인 공간 속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서 점차 잊혀 가는 △우정 △사랑 △신뢰 △꿈과 같은 가치가 반짝이고, 그 가치를 잊고 살아가던 우리의 마음속 상처를 어루만진다. 단지 명품을 사러 온 손님은 명품보다 더 큰 치유를 얻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정을 잃어가는 시대 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워낸 작은 다정함은 상실의 공허함을 크게 채울 힘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누군가에게 이미 진상 손님이 돼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상실을 타인에 대한 날 선 태도로 채우려

포스테키안의픽 | 양지윤 기자 | 2026-03-25 15:55

입학한 지 2년이 지나고 어느덧 졸업 학년인 3학년이 됐다. 누군가에겐 3년이라는 학부 기간이 짧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후회 없이, 대학 생활을 즐겁게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새내기 시절 작성했던 ‘마스터플랜’을 꺼내 봤다. 적어뒀던 모든 계획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과 경험을 중요시하게 여겼던 자세만큼은 지켜졌다.나의 대학 생활을 가장 활기차게 만든 원동력은 분반과 학과라는 소속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타인과 호흡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던 단체 활동이었다. △도서관 자치 위원회 △과 학생회 △포항공대신문사. 이런 활동들은 단순히 공부와 여가 사이를 채우는 것을 넘어, △경험 △소속감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준 소중한 자산이 됐다. 도서관 자치회 사무실에서 동기와 함께 밤을 새우며 시험공부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며, 내가 쓴 기사가 신문으로 인쇄돼 세상에 나오는 성취감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2학년 여름에 다녀온 미국 UCI 해외 파견 프로그램이다. 낯선 해외 대학 캠퍼스 생활과 여러 도시 여행으로 보낸 여름방학은 치열했던 일상의 휴식처가 됐다. 먼 미래에 “내가 대학생

78오름돌 | 김범준 기자 | 2026-03-25 15:52

지난 9일, 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경기 국가대표 마운드 위에 41세의 투수가 올라왔다. 역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최고령 선수, 노경은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선발 투수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올라왔음에도, 좋은 타격을 선보이던 호주 국가대표 타선을 2이닝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역시 WBC 8강 진출에 성공했다.베테랑 투수 노경은의 야구 커리어에는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이에 걸맞게 그의 야구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2003년, 두산 베어스에서 야구 선수로서의 첫걸음을 뗐다. 시작은 미미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유망주로 살았으며, 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2012년이 돼서야 그를 믿어주는 감독을 만나며 첫 번째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2년 동안 규정이닝을 채우고, 매년 10승을 웃도는 성적을 거두며 기량을 뽐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버팀목이 됐던 감독이 경질되고, 새로 부임한 감독과 갈등을 겪으며 그의 경력은 위기를 맞았다. 결국 2016년, 노경은은 두산과의 결별을 택했다.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 번째 기회를 맞

78내림돌 | 최진현 기자 | 2026-03-25 15:51

영국의 시인 M.아널드(M. Arnold)가 자신의 저서 시론에서 “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은, 가벼운 글자들로 쓰인 시가 사실 우리의 내면을 무겁게 비추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때때로 스치는 무게를 무시하곤 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 나간 화자가 갑자기 마주한 물웅덩이는 언덕에 진 멍일지도 모른다. 언덕이 아직 많은 토끼를 가지고 있음을 앎에도 사라진 흰토끼 하나를 쫓는 것은 사실 언덕 자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럼에도 때론 우린 “있지도 않은 양 따위, 중얼거린다”(양 기르기). 안희연의 시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사실은 우리 내면에 잔존하던 본질과의 충돌이다.안희연은 시집의 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언덕엔 마음을 기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린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화자가 여름 언덕을 마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덕에 멍 진 물웅덩이를 뒤

포스테키안의픽 | 김태린 기자 | 2026-02-26 14:59

학생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내가 떠올린 신문사 기자의 모습은 막힘없이 문장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곧 문장이 되고, 문장이 곧 기사로 완성되는 듯한 사람들. 그러나 지난 2년을 돌아보니, 나는 메일 한 줄을 보내기 위해서도 여러 번 읽고 고쳐야 했다. 기사 속 한 문장을 두고도 더 정확한 단어는 무엇인지,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오래 고민하며 망설였다.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점검하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어쩌면 나는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 ‘의심하며 쓰는 사람’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한 번 적은 문장을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 이미 정한 방향으로 계속 밀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이 모습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과 닮아있다. 관성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뜻한다. 가만히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움직이던 물체는 같은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려 한다. 관성을 따르는 운동은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 안정성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마지막 학

78오름돌 | 정혜정 기자 | 2026-02-26 14:55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을 계기로 성사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종찬 동문과의 인터뷰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우리대학이란 울타리 바깥의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잡은 동문과, 다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느낀 순간부터 단순히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은 기자의 몫이지만, 이번에는 그 책임이 크게 다가왔다.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자로서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질문지를 준비하며 단순히 ‘어떤 답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나는 왜 이 질문을 던지는가’를 스스로 묻게 됐다. 취재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때 더욱 선명해졌다. 특히 동문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성취를 조명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대학이라는 공통의 출발점에서 각자가 어떻게 다른 길을 만들어갔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사실 나는 우리대학 학생들의 미래를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모습으로 상상해 왔던 것 같다. 대학원에 가거나, 기업의 연구직으로 나아가는 길. 비슷한 전공과 비슷한 궤적 속에서 삶도 어느 정도 닮아 있을

78내림돌 | 한정우 기자 | 2026-02-26 14:47

상류에 글램핑장을 지으면 마을로 오염수가 내려간다. 타쿠미를 비롯한 마을 주민은 글램핑장 건설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들도 자연을 개발해서 살고 있는 일본의 농지 개척 3세대다. 사업 담당자인 타카하시도 어쩔 수 없이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 상황에서 마을 측과 건설 측 중 어디를 악으로 봐야 할지 딜레마가 생긴다.결말에서 타쿠미와 타카하시는 타쿠미의 실종된 딸, 하나를 발견한다. 하나는 총을 맞은 새끼 사슴과 대치 중이다. 타카하시가 하나를 구하려 하자 타쿠미가 그를 공격한다. 일시에 하나는 부모 사슴에게 공격받은 듯하다. 인간 측 포수가 자연 측 새끼 사슴을 쐈으므로 자연 측 부모 사슴이 인간 측 하나에게 위해를 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타쿠미가 타카하시에게 폭력을 가한 사실은 붕 뜬 명제로 남는다. 타쿠미와 하나를 다른 위치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타쿠미와 하나를 양측 어디도 아닌 양자를 매개하는 중간자에 둔다면 완전한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인간이 자연에 가한 폭력은 중간자를 매개해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내포 저자란 작품 속에 존재하는 저자로, 실제 저자와는 다른 개념이다. 관객은 내포 저자의 시선을 거쳐 사건을 받아들인

포스테키안의픽 | 송명빈 기자 | 2026-01-01 11:48

산란이란 진행 중인 무언가가 장애물과 부딪혀 원래의 진행경로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산란은 깨끗한 물질 속 불순물로 인해 발생한다. 대학 생활, 진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 내가 만난 불순물과 산란의 방향, 이를 통해 느낀 점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첫 번째 산란부푼 꿈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입학 당시 나는 박사과정에 관한 목표 의식과 하고 싶은 연구 분야가 명확했기에, 자신감뿐 아니라 미래가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1학년 때부터 하고 싶은 연구와 관련된 심화 수업을 수강하고 희망 연구실에서 학부생 연구 참여를 시작했으며, 학회 발표까지 경험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던 것과 별개로, 내가 생각한 연구 분야와 실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느껴 전공 지식과 열정이 더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에 갈증이 생겼다.두 번째 산란올해 2월, 연구 진로 방향을 수정해서 세 분의 교수님과 면담하며 나름대로 촘촘한 진로 설계를 했다. 당시 나는 성과에 대한 욕심이 있어 집중적인 지도를 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바랐고, 이에 맞춰 다음 연구실을 선택

78오름돌 | 김범준 기자 | 2026-01-01 11:45

집에 있어도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 속 혜원은 부푼 꿈을 안고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을 떠나 상경했다. 생각만큼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로 학업도 연애도 취업도 그 어느 하나 얻은 것 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다시금 삶에 열정을 느끼게 된다.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잠시 잊을 때가 많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를 보면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의 암울한 미래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이 듣기에는 다소 힘 빠지는 이야기도 많다. 사회가 정한 성공의 틀에 짜 맞춘 삶을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그때까지의 세월과 성공으로 향하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영화 속 혜원은 그런 무의미한 시간을 벗어던진다. 비록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고향에 왔지만 스스로 살아있음을 몸소 체감한다. 이 영화가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시골 가서 밥 먹기만 해도 하루가 다 지나가네. 실제로 저렇게 사는 건 판타지야”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맞다. 이 영화는 실제 시골의 삶과 다른, 마치 현대 도시인이 만든 시골 판타지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영화가 주

포스테키안의픽 | 조유현 기자 | 2025-12-03 11:05

매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때론 만족스러운 순간을, 때론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마주한다. 어떤 날에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쳐 무너질 것 같은 시기도 있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내 삶의 공식’이 필요하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알려주는 지침이 있다면, 심적으로 힘든 순간에도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공식이 늘 100점짜리 해답은 아니더라도, 외운 대로 실천하기만 해도 삶에 대한 만족도를 최소 70점은 확보해 줄 것이다.어떻게 삶의 공식을 찾을 것인가?수학의 공식을 유도하기 위해 기본 개념을 익혀야 하듯, 삶의 공식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지난 학기에 들었던 한 교양과목에서는 △수면시간 △식습관 △운동 빈도 △타인과의 소통 △자아실현 방법 등과 그날의 상태를 매일 기록하는 과제가 있었다. 이 과제를 통해 내가 어떤 조건에서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는지, 나에게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

78오름돌 | 이주형 기자 | 2025-12-03 11:03

‘그린 북’은 피터 패럴리 감독이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매니저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1960년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매니저 ‘토니 발레롱가’의 여정을 그린다. 영화 제목인 ‘그린 북’은 1936년 빅터 휴고 그린이 흑인 여행자를 위해 이용 가능한 장소를 정리해 발간한 실제 안내서로, 극중에서는 초반부에 토니가 건네받는 책으로 등장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 비고 모텐슨은 토니 역을 맡아 후덕해진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로 현실감 있는 인물을 그려낸다. 그의 연기를 통해 관객은 셜리를 바라보는 토니의 시선을 따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생생히 체험하게 된다.영화의 배경인 1962년은 인종차별이 숨 쉬듯 당연하다. 셜리는 차별의 벽을 넘고자 흑백 갈등이 심한 미 남부 투어를 계획하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어디를 가든 공연의 주인공임에도 매니저인 토니보다 무시당하기 일쑤다.작중 셜리 박사는 전혀 ‘흑인답지’ 못한 사람이다. 재즈 대신 클래식을 연주하고, 펍 대신 레스토랑에서 공연하지만, 백인에게는 피부색으로 외면당하고 흑인들과는 계층의 차이로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다. 이

포스테키안의픽 | 유영주 기자 | 2025-11-05 11:21

2년 전, 호기로운 열정을 품고 신문사에 들어서며 ‘마지막 기사는 4년의 대학 생활을 한 편의 글로 묶어 내보이겠다’라고 다짐했었다. 졸업을 앞둔 요즘, 기자로서 원고를 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아직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못한 학부생이지만, 지난 4년의 대학 생활 속에서 깨달은 세 가지 사실을 후배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부디 나의 작은 깨달음이 후배들의 긴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친구의 성취를 거울삼아 나아가기내가 대학 생활을 하며 가장 경계했던 감정은 바로 ‘질투’였다. 질투는 나의 성장을 갉아먹는 걸림돌이다. 친구의 성공을 축하하지 못하고 깎아내리려는 마음이 먼저 든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질투한다고 해서 내 성과가 생기는 것도,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앞서가는 친구의 발목을 잡아끄는 일이 매우 비참하게 보인다. 우리대학에는 유독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 친구들의 수상 소식이나 성취를 들을 때마다 위축되기도 하고, 그 성과를 낮춰 부를 때도 있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고 깎아내리려 했던 못난 마음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질투를 배격하기 위해서는 친구와 함께 성장할 여유

78오름돌 | 김윤철 기자 | 2025-11-05 11:20

지난 시대는 잔향마저 스러진다.상대가 분명한 시대가 있었다. 전후(戰後) 세대에게는 배고픔이 상대였고 물질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민주화 세대에게는 정부가 상대였다. “그때는 문제가 분명했고 싸울 대상이 있었다. 민주화든 무엇이든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의 문제는 그 희망이 없어졌다는 것이다”라고 영화감독 이창동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우리 세대의 링 위에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각자 저만의 링 위에서 치열하게 스텝을 밟고 있는 고적한 복서의 세대요, 상실의 시대다.상실의 시대라는 단어의 어감이 지나치게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상실의 시대란 다시 말하면 창조의 시간이다. 열매가 떨어지고 그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듯이, 긴 밤 끝에 여명이 밝아 오듯이 상실은 창조를 잉태하고 있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가 내미는 창조의 과제는 언제나 그 시대 젊음의 몫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한국 번안: ‘상실의 시대’)이라는 소설을 통해 일본에서 전쟁이라는 거대하고도 파괴적인 가치가 소실된 뒤 상실의 시대에 사는 젊음을 그려 보인다. 소설에서 하루키는 창조의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창조의 방향을 짚어 보고 그 이후의

78내림돌 | 송명빈 기자 | 2025-11-05 11:19

얼마 전 친구와 밥을 먹다가 캐릭터 ‘라부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라부부가 그렇게 귀여운가?”“엄청 예쁘게 생긴 건 아닌데, 뭔가 매력이 있네.”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밥을 먹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라부부의 ‘못생긴 귀여움’을 다룬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우리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구나 싶었다.라부부는 중국 팝마트(Pop Mart)에서 선보인 아트토이(art toy) 캐릭터다. 라부부의 외형은 전통적인 ‘예쁨’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양옆으로 한껏 올라간 입, 커다랗고 익살스러운 눈, 짧고 엉성한 팔과 다리. 언뜻 보면 귀엽다기보다 우스꽝스럽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모습에서 더 큰 매력을 발견한다. 실제로 라부부의 인기에 힘입어 팝마트는 전 세계 완구 회사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랐고, 베이징 경매에서는 라부부 피규어가 2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전통적인 ‘예쁨’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강력한 매력이 된 것이다. 이 현상은 비단 캐릭터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틀에 박힌 완벽함에 지쳐 있었던 건 아닐까.이처럼 오늘날 우리는 늘 타인으로부터 정해진 기준에 맞추기를 요구받는다. SNS 속

78오름돌 | 정혜정 기자 | 2025-09-02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