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에 저항하는 법
관성에 저항하는 법
  • 정혜정 기자
  • 승인 2026.02.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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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내가 떠올린 신문사 기자의 모습은 막힘없이 문장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곧 문장이 되고, 문장이 곧 기사로 완성되는 듯한 사람들. 그러나 지난 2년을 돌아보니, 나는 메일 한 줄을 보내기 위해서도 여러 번 읽고 고쳐야 했다. 기사 속 한 문장을 두고도 더 정확한 단어는 무엇인지,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오래 고민하며 망설였다.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점검하고 다시 쓰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 ‘의심하며 쓰는 사람’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한 번 적은 문장을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 이미 정한 방향으로 계속 밀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이 모습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과 닮아있다. 관성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뜻한다. 가만히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움직이던 물체는 같은 방향과 속도로 나아가려 한다. 관성을 따르는 운동은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 안정성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마지막 학년을 앞둔 지금,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관성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익숙한 선택지와 많은 이들이 택하는 길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궤도 위에서, 나 또한 관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려는 마음을 느낀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의외로 강력해서, 멈춰 서거나 방향을 정비하는 일보다 그대로 나아가는 편이 훨씬 쉬워 보이게 만든다. 고민은 시간을 지연시키는 일처럼 보이고, 도전은 불확실성을 키우는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물체의 운동 방향이나 속도를 바꾸기 위해 힘이 필요하듯,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익숙한 흐름을 거슬러 다른 선택을 고민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힘이 반드시 거창한 결단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번의 실패가 기존의 계획을 다시 보게 만들고, 때로는 이미 세워 둔 목표를 차분히 재검토하는 태도가 새로운 방향을 열어 준다. 왜 이 길을 택하려 하는지, 그 선택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 묻는 과정 자체가 방향을 가늠하는 힘이 된다. 실패와 검토는 시간을 요구하고, 잠시 속도를 늦추게도 한다. 그러나 프레드릭 니체의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문장처럼,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 실패의 경험은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글 한 줄을 고치기 위해 여러 번 멈춰 섰던 시간처럼, 삶의 한 방향을 정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일 역시 낭비가 아니다. 관성은 당장의 불안을 줄여주고, 선택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끝까지 타당한지는 답해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유지보다는 방향의 타당성이다. 결국 길을 선택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나 자신의 치열한 고민과 도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