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이란 진행 중인 무언가가 장애물과 부딪혀 원래의 진행경로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산란은 깨끗한 물질 속 불순물로 인해 발생한다. 대학 생활, 진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 내가 만난 불순물과 산란의 방향, 이를 통해 느낀 점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산란
부푼 꿈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입학 당시 나는 박사과정에 관한 목표 의식과 하고 싶은 연구 분야가 명확했기에, 자신감뿐 아니라 미래가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1학년 때부터 하고 싶은 연구와 관련된 심화 수업을 수강하고 희망 연구실에서 학부생 연구 참여를 시작했으며, 학회 발표까지 경험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던 것과 별개로, 내가 생각한 연구 분야와 실제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느껴 전공 지식과 열정이 더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에 갈증이 생겼다.
두 번째 산란
올해 2월, 연구 진로 방향을 수정해서 세 분의 교수님과 면담하며 나름대로 촘촘한 진로 설계를 했다. 당시 나는 성과에 대한 욕심이 있어 집중적인 지도를 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바랐고, 이에 맞춰 다음 연구실을 선택했다. 지난 반년의 학부 연구생 활동을 통해서 이번에야말로 진로가 뚜렷해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올해 9월 초, 과 선배들의 연계 과정 진학 방향 변경,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노력만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그렇게 당연히 여겼던 궤도에서 벗어났다. 약 2주 동안 진로 걱정을 이어 나갔고,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했었다. 누구보다 빨리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답답한 마음에 선배,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지만 내가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가장 잘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지금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다.
산란된 나
지금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연구실 자리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노력 끝에 감사하게도 지금의 지도 교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으며, 나는 비로소 진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연구실인 만큼 지금껏 해오던 것의 두 배, 세 배 열심히 하자는 다짐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많이 배우고 성과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가 너무 많은 생각 속에 갇혀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년 세미나에서 뵙고 본받고 싶던, 반도체 회사를 창업하신 ESOL(이솔) 김병국 대표님께서 하신 “인생 절대 계획대로 안 돼”라는 말씀이 지난 2년간의 대학 생활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그렸던 길은 직선도로였지만, 실제로는 매번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굴곡이 절대로 무의미하진 않았다. 첫 연구실에선 학회 성과를 내며 성실함을 배울 수 있었고, 두 번째 연구실에서는 논문을 읽으며 연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웠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순수한 실리콘에 불순물을 넣었을 때 비로소 원하는 특성을 띠게 된다. 마찬가지로 삶이라는 결정(crystal) 속에 불순물이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산란하고 궤적이 바뀌지만, 그리하기 때문에 ‘나’라는 고유의 이야기와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