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4.
출간 안희연 / 창비
영국의 시인 M.아널드(M. Arnold)가 자신의 저서 시론에서 “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은, 가벼운 글자들로 쓰인 시가 사실 우리의 내면을 무겁게 비추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스치는 무게를 무시하곤 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 나간 화자가 갑자기 마주한 물웅덩이는 언덕에 진 멍일지도 모른다. 언덕이 아직 많은 토끼를 가지고 있음을 앎에도 사라진 흰토끼 하나를 쫓는 것은 사실 언덕 자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럼에도 때론 우린 “있지도 않은 양 따위, 중얼거린다”(양 기르기). 안희연의 시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사실은 우리 내면에 잔존하던 본질과의 충돌이다.
안희연은 시집의 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언덕엔 마음을 기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린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
화자가 여름 언덕을 마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덕에 멍 진 물웅덩이를 뒤로 하고 내려가는 여정은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름 언덕을 내려가야만 한다. 마냥 여름에만 갇혀있을 수는 없기에, 비록 모든 것을 불태우는 여름이 끝나고 견딜 수 없는 추위가 우릴 기다리고 있음을 앎에도.
저작권자 © 포항공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