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81건)

2008 2008년에는 우리대학 캠퍼스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RC (Residantial College) 기숙사가 준공되면서 우리대학은 기숙 대학 제도를 도입했다. 층마다 1명의 마스터 교수와 3~4학년 RA 2명이 상주하면서 입학 후 첫 2년간 학생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멘토링하며 기숙사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또, 학생회관 1층에 존재했던 OZ존과 여행사가 리모델링되어 인터넷 서점의 오프라인 대리점과 커피숍이 혼합된 북카페로 새롭게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학생회관의 스낵코너와 지곡회관 학생식당의 리모델링이 완료되어 이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12월에는 지곡회관에 버거킹이 입점했다.2009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강타하면서 포카전이 취소되는 등 우리대학 학생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우리대학은 신종플루의 여파를 딛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다.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나 농어촌에 거주하거나 도시 저소득층에 속해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일반계 고등학교 2~3학년생을 대상으로 방학 중 4주간 ‘포스텍 잠재력 개발 과정’을 실시했다. 또, 학부 입시에서 국내 대학 최초로 입학생 전원 입학사정관

특집 | 명수한 기자 / 박지후 기자 / 김건창 기자 | 2016-12-07 12:24

19971997년은 여러 제도의 정비 및 신설이 이루어진 해였다. 우선 본격적으로 석박사 통합과정이 운영됨에 따라 대학원생의 해외단기유학이 활성화 됐으며 자매결연을 맺은 9개 해외대학과의 교환학생 교류 또한 활발해졌다. 한편 이전까지 교수재량에 따라 실시되던 강의평가를 전면 실시해 객관적인 강의평가를 도입했다. 19981998년은 학생식당에서 위조 식권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우리대학 운영위원회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학생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한시적 장학제도로서 63명의 IMF 장학생을 선발하여 각자에게 식권 90장 및 시간 근로를 제공했다. 하지만 카페테리아의 학생할인율이 30%에서 20%로 감소하는 등의 할인 정책 변화로 학생들이 받는 혜택이 줄어들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20002000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일부 학생을 무학과 제도로 모집하는 방안이 실시되어 학생들이 1년간 학교를 재학한 뒤 개인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학과를 선택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97년 암으로 별세하며 2억 원의 기금을 우리대학에 기부한 방명숙(나카무라 도시에)씨를 기리는 ‘방 도시에 세계문화 탐방대’가 신설되어 선발 학생들에게 해외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특집 | 명수한 기자, 박지후 기자, 김건창 기자 | 2016-11-09 20:31

우리대학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포항공대신문에서는 개교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포항공대신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기로 했다.이번 특집 기사는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며 각 회마다 10년 동안 우리대학에 있었던 기사를 모아본다.1986년 포항공대 태어나다포항공대 30년 역사의 시작. 과학기술분야의 지도자적 인재를 양성하고 기초과학 연구와 산학협동 연구를 통하여 인류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연구중심의 고등교육을 실시한다는 목적으로 1986년 12월 3일 설립되었다.1988년 교수님 안녕하세요포항공대신문이 창간된 해로 신생 학교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들이 기사로 다루어졌다. 먼저 89년까지 180명의 교수진을 확보하는 ‘교수확보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98년 10월을 기준으로 130여명의 교수진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1989년 우리대학 문화의 시작1989년에는 우리대학 학생들이 대학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 학생들의 여가 문화를 만들어 주려는 학교의 노력이 돋보였던 일들이 많았다. 우선 착공 1년 3개월 만에 우리대학 체육관이 공사를 마쳤다. 체육관에서는 테니스, 탁구, 라켓볼, 골프, 사격 강습회를 연 2~4회 실시할 계획을 발표해 우리대학

특집 | 명수한, 박지후, 김건창 기자 | 2016-10-12 17:43

내가 진정으로 수학에 뜻을 두기 시작했던 1976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름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동안 들어 온 천재 수학자는 온통 외국인 이야기들뿐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소위 일류 수학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장기간 봉사한 경험 덕분인지, 우리 한국인 중에도 결코 선진 외국의 천재들에 못지않은 수학 천재들이 여러 분 계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이분들 대부분이 우리 포스텍 및 나와 인연이 있는 스승님들이시기에 나는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데,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만 두었던 얘기를 이제는 독자들과 나눠보려 한다. 1. 첫 번째 소개하려는 천재 수학자는 이임학(李林學 1922-2005) 교수이다. 이 교수는 함경도 함흥 태생이다. 그러므로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익숙해진 이름은 “리림학”이며 당신께서 평생 사용하신 영문 이름도 Rimhak Ree이다.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후 우리나라의 뜻있는 분들은, 일본이 버리고 떠난 케이조(京城) 제국대학의 이름을 서울대학교로 바꾸고 교육을 재건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인 교수들이 떠나버린 교수진은 황량하였기에 초대 교수진 선발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이 때 경성제국대학에 수학과는 없었지만, 물리

특집 | 김강태 교수 / 수학과, 기하학연구센터장 | 2016-09-28 23:21

제372호부터 포항공대신문사에 새로 들어온 16학번 새내기 수습기자 7명이 활동한다. 각자 열정과 포부를 갖고 입사한 이들은 이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교내외 소식을 발 빠르게 취재할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통찰력 있는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대학 캠퍼스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할 이들의 모습에 주목해 보자. 이들이 기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자로서의 다짐을 들어본다.POSTECH에 입학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입학 전 기대했던 대학생활과는 다르게 바쁘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붙여만 준다면 열심히 해보겠다는 초심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비단 나만 안고 가는 고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자신감보다 ‘뒤처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지금은 이렇게 쏟아지는 과제와 퀴즈에 피곤한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지만, 다시 입학 전을 떠올려본다면 대학에 와서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하는 기대에 찬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때 나는 대학 이름만으로도 칭찬 받을 수 있는 POSTECH의 학생으로서 많은

특집 | 공환석 기자 | 2016-04-06 17:46

어린 시절, 내가 어떤 분야에 흠뻑 빠졌을 때마다 꾸었던 꿈은 그 분야의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역사에 빠졌을 때는 역사 기자, 야구에 빠졌을 때는 스포츠 기자를 꿈꾸었다. 어떤 분야에 대한 기사를 쓴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공부한 후에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기자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 마치 한 분야를 깊게 탐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과도 같게 다가왔다.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큰 매력이었다. 물론 포스텍에 합격한 지금 나는 기자보다는 과학자의 길에 좀 더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항공대 신문사에서 묻어 두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내가 준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파헤쳐 글을 써보고 싶고, 동료 기자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며 좋은 기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앞으로도 하지 못 할 일들을 마음껏 해보며 많은 경험을 쌓고 싶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 기자는 학교 내외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학우들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립적으로 전

특집 | 김건창 기자 | 2016-04-06 17:46

먼저 지금 이 다짐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신문사 선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학생이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학창시절 내내 꿈꿔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포항공대신문사 30기 수습기자가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속한 사회와 단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 이슈들에 대해 내 이름으로 된 기사를 써보고 싶었다. 나는 기자란 사회 전반적인 사건과 정보를 전달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에 대한 프레임을 구독자들에게 제시하고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한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비평적 시각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쪽에만 치우쳐진 생각을 하지 않는 중립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교의 공식적인 단체의 일원이 된 만큼 책임감을 가지며 기사 한 자 한 자를 써 내려갈 것이다. 내가 다룬 기사가 학교의 이름으로 인쇄가 되고 여러 학우들과 학우들의 가정에 배포되는 만큼 이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잘 해낼 것이다.지난 월요일 신문사 첫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기삿거

특집 | 김희진 기자 | 2016-04-06 17:45

수습기자로서의 다짐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되면서 먼저 내가 되고 싶은 기자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결정하고 그런 기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포항공대신문의 수습기자로서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기자상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자’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자’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뿐 아니라 서로를 깊숙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잇는’기자이다.이를 위해 먼저 학교와 학생을 잇는 기자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게 하고 싶은 말, 궁금하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사항을 모아 학교에 전달하는 기사를 쓸 것이며, 학교의 정보 중 학생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알기 쉽게 전달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학교 내부와 학교 밖 사회를 잇는 기자가 될 것이다. 우리대학은 포항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기숙사 생활로 인해 사회적 이슈나 문화생활에서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직접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고 기사를 쓸 것이며, 읽은 것만으로도 직접 체험한 것 같도록 생생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잇는 기자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서로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공유의 장이 될 기사를 쓸 것이며 다

특집 | 박준현 기자 | 2016-04-06 17:45

작년 초 이공계 학과 대탐험을 왔을 때 처음 신문을 보고 꼭 포항공과대학교에 합격해서 신문사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신문사에 수습기자로 들어오게 되어 매우 감사한 마음이다. 사실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썼던 많은 글들은 나 혼자만 알던 비밀들이거나, 아주 적은 사람들만 읽는 폐쇄적인 글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신문사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내 글이 알려지고, 나를 통해 학교의 많은 소식들이 전달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다.학생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의 소식을 빨리 알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내가 좋은 기사를 작성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게 될 것이고, 학교의 소식이 더 빨리 전달될 것이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북돋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면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수습기자가 되었을 때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지금까지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성실해지는 것이다. 2016년에 신문이 발행될 날짜는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이 기한에 맞추어 좋은 기사를 쓰기

특집 | 박지후 기자 | 2016-04-06 17:44

이 글은 포항공대신문사에 올라가는 나의 첫 기사다. 정식 기사라고 하기에 간소하지만 첫 기사인 만큼 마음은 설렌다. 창밖에 봄꽃이 피고 있다. 봄바람을 쐬며 수업을 가면서 드디어 봄이 왔음을 느낀다. 그와 함께 나의 기자 생활도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초봄의 피지 않은 꽃처럼 아직은 미숙한 기자이다. 선배들과 첫 편집회의를 하며 얼추 신문이 쓰이는 과정, 기획 과정 등을 배웠다. 동시에 앞으로 배울 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 꽃이 피어날 때 나의 기자 생활도 아름답게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렇듯 신문사에 로망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책임감을 느낀다. 내 글이 학교를 대표하는 신문에 실린다는 점, 나의 기사가 11,000여 부 가량 인쇄되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펜을 들 수가 없다. 기자로서 지켜야 할 형평성, 객관성도 고려하면 더더욱 글쓰기에 부담을 느낀다. 지금 쓰는 글도 맘처럼 쉽게 써지지 않는다. 전보다 글을 쓰는 데 더 신중해졌고, 진지함과 남들의 시선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신중함을 유지하되 기존에 내가 글을 쓰며 느꼈던 즐거움은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자가 된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기자

특집 | 이승호 기자 | 2016-04-06 17:44

큰일이다.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수습기자가 되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2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마감의 격류가 발밑에 움찔거리더니 서서히 허리춤에 찰싹인다. 또 하나의 책임져야 할 공간 속으로 스스로 발을 들였다.“좋아하는 일도 의무가 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얼추 비슷한 말을 여러 경로로부터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의무가 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의지로 극복해야 할 일은 늘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중 일부가 의무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가슴의 부담을 덜어서 어깨에 올리는 셈이다. 과제 분량에 있어서 정점에 선 포항공대, 이곳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의지는 부족하나 배움을 가까이하고 싶다. 학생을 방치하는 곳에 가야 하는가, 들볶는 곳에 가야 하는가,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한 번 힘을 받은 그 발걸음은 관성을 유지한 채 신문사 문턱에까지 일렀다. 나는 수습기자, 정기자, 편집장, 객원기자를 모두 거쳐보고 싶다. 꼭 직책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보고 싶다는 의미이다. 기자라는 역할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 균형 잡힌 글, 일깨우는 글, 신선한

특집 | 하현우 기자 | 2016-04-06 17:43

일본의 인기 학과에는 어떤 것이 있나.주변에서는 자격증이 생기는 약대, 그리고 치대, 의예과 등이고 문과는 법학이 인기다. 공대 쪽이면 에너지나 기계 쪽이 인기가 있다. 취직 잘할 수 있는 화학도 인기가 높다. 한국에서 학부생일 때 유기화학은 기본적이고 인기 없는 분야였는데, 여기 오니까 유기화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이 학교 특성인지는 몰라도 순수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원은 화공이 인기가 많다.유학생으로 왔을 때 일본어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나.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나.수업이 일본어로 이루어져 따라가기 어려웠다. 유학생은 튜터라고 일본인이 일대일로 생활 불편이 없도록 지원해준다. 튜터에게 수업 관련 행정 서류 절차 등을 이것저것 물어본다. 유학생이 잘 적응하도록 제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일본어를 못하는 상태로 오면 힘들다. 가스나 수도 관련해서 업자에게 연락할 때, 주민 등록하러 시청에 갈 때 등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힘들었다. 입학시험은 과에 따라 다른데 JLPT를 내는 등으로 일본어 실력을 검증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입학시험지가 일어로만 되어 있어 일본어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통과할 수 있는 과도 있고, 시험지가 일

특집 | 박정민 기자 | 2016-03-09 19:42

장학금 기준포스텍 - 유니스트의 장학금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유니스트 - 3.3이상이면 등록금을 100% 지원받고 2.7이상이면 50% 지원 받는다.포스텍 - 3.0 넘으면 등록금을 100% 지원받지만 2차례 이상 3.0 미만일시 장학금이 지급 안 된다.유니스트 - 우리대학의 경우 이공계장학금을 받게 되면 교재비로 등록금의 20%를 더 지원해준다.포스텍 - 우리는 사립학교여서 그런 부분은 없다.유니스트 - 서울에 있는 이공장을 받는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면 별도의 교재비를 지원 받지는 않는 것 같다.포스텍 - 지원받은 교재비로 전공서적을 새 책으로 구입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유니스트 - 교재비로 지원금을 받지만, 일부는 생활비로 사용하기도 한다.(웃음)포스텍 - 우리 대학은 선배들이 쓰던 전공 서적을 싸게 살 수 있는 중고서적 장터가 열리기도 하는데 혹시 유니스트도 중고 서적을 사고파는 행사가 진행되는지?유니스트 - 학부학생회에서 중고장터를 열기도 하고, 최근에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중고 거래하는 페이지가 생겼다.포스텍 - 우리 같은 경우는 벼룩시장이 정말 활성화되어 있다. POSB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페이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자전거도 팔고 옷, 화장품 등을

특집 | 최태선 기자 | 2015-06-03 11:29

포항공대신문사의 수습기자가 되었다. 교내의 최신 정보와 이슈들을 신속하게 전달하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지금까지 써 왔던 글들과 다르게 맞춰진 형식에 따라 글을 쓰고, 그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이다. 그래서 긴장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신문사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신문사는 동아리도 자치단체도 아니다. 처음 신문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공적이고 조직적인 ‘회사’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조직적 환경이라 걱정도 되지만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서로를 도와주며 큰 문제없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사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보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유익한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사가 개인의 생각을 바꿀 영향력이 있기에 책임감을 갖고 올바른 소식을 알리는 기자가 될 것임을 다짐한다.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

특집 | 이민경 기자 | 2015-04-08 17:36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할 무렵, 포항공대신문사의 수습기자가 되었다. 대학생활의 로망인 연애와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며 입학했지만 결국 남초들의 성지(?)인 신문사로 오게 되었다. 내가 기자로서의 길을 어떻게 걷게 되었나 하면, 고등학생일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어온 경험 덕분일 것이다. 나는 신문을 읽으면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견식을 넓혔다. 진보, 보수 양쪽의 기사를 읽게 되면서 사회이슈를 다각적으로 보는 노력을 했다. 사실 신문 읽는 것이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신문 읽는 것은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참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한 사건에 대해 쓴 여러 기사의 다른 관점, 다른 해석의 기사들을 보면서 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신문 읽기의 장점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자가 되어 좋은 기사를 써서 사람들이 신문을 읽게 만들고 싶었다. 수습기자로서 첫 목표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사란 전달하는 바가 명확하고 관점이 뚜렷한 글이다. 좋은 기사는 읽는 이가 기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비판할 수 있으며, 읽는 이의 생각을 키워

특집 | 김윤식 기자 | 2015-04-08 17:35

포스텍에 붙은 이후로 면접을 봐서 성공한 나의 첫 사례가 된 포항공대신문. 원래부터 신문을 좋아해서 매일 읽어왔고 아버지의 직장이 신문사였던 만큼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대학에 가면 신문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였기에 합격의 기쁨은 더욱 컸다. 고등학교 때야 글쓰기 대회나 교지에 실릴 글들을 쓰고 상이나 선물을 받는 정도였지만 이곳에서는 기자라는 명칭도 붙여주고 내가 쓴 글이 담긴 신문이 10,000부 넘게 인쇄되어 학우들에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을 선배님들의 얘기를 들으며 꽤 실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 터전에 어떻게 적응을 하면 좋을까. 이제 막 대학생이 된 터라 아직까지는 교내 기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활동비를 받고 새벽까지 회의를 하면서 여러 기획을 하는 등 고등학교 때와 다른 점들이 많이 생소하다. 물론 차차 적응해나갈 예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한다거나 일정을 잘 조절 못 해서 일도 공부도 모두 날려버리지 않도록 4월 달부터는 신경을 써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매사에 일거리를 만들고 바쁜 상태를 유지하면서 긴장을 놓지 않는 성실한 수습기자가 되리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 언제나 1인분을 넘어서 못해도

특집 | 명수한 기자 | 2015-04-08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