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쌓으세요”
  • 유민재 기자
  • 승인 2020.07.06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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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국립대 김상호 교수 인터뷰
▲싱가포르 국립대 김상호 교수
▲싱가포르 국립대 김상호 교수

왜 교수가 됐나?
어렸을 때부터 교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동안 직장을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기계과를 졸업했는데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막연하게 석사라도 해볼까 해서 유학을 하러 가게 됐다. 그러다 박사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제일 잘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해보니, 대학교 다닐 때 과외를 계속했는데 내가 꽤 잘 가르친 것 같았다. 가르친 애들이 거의 다 나보다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렇게 교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 생명 공학 분야 1등이었던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인 최초로 포스닥을 하게 됐다. 연구가 싫지는 않았지만, 연구에 큰 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티칭 상을 13년 동안 9번 정도 받았다. 가르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까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 나 혼자 연구할 때는 100% 연구였는데 실험실에 학생들이 생기니까 그것도 또 가르치는 것이 됐다. 연구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학생들이 앞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다. 


여러 대학 중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교수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한국대학에서는 오퍼를 못 받았다. 대신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에서 오퍼를 받았는데, 월급, 언어 등의 조건이 싱가포르가 가장 좋아서 오게 됐다. 다만 싱가포르는 너무 작아서 가족과 갈 곳이 없다는 점이 가끔 아쉽다. 오퍼를 못 받았던 것은 당시 한국에서는 생명 공학이 생소했고, 공학적인 성향이 강해 나하고는 안 맞았다. 한국에는 의대가 없는 학교도 많고, 의대가 있더라도 공대와 협업이 잘 안 됐던 것 같다. 싱가포르는 공대임에도 문제를 의학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점을 매우 좋아했다. 


연구 분야와 그 분야를 선택한 계기는?
혈액을 연구하고 있다. 분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싱가포르 국립대의 테뉴어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조교수 7년 동안의 성과를 보고 종신 고용을 결정하는 제도인데, 이 비율이 40%가 채 안 된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조교수 때는 하고 싶은 연구보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 내가 어떻게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때 찾은 주제가 혈액이다. 싱가포르에서 혈액을 연구하는 교수가 별로 없었고, 공대 교수 중에 생체실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 동물실험을 계속했기 때문에 7년간 동물실험 관련 혈액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테뉴어를 받고 난 후에는 연구 방향을 바꿨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향후 2, 3년 연구 방향에 대해 계속 토론을 한다. 그렇게 정한 것이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하지 말고, 병원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초과학과 응용을 하는 팀 두 개를 만들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주제도 나와 학생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에게 연구 또는 개선이 필요한 기술이 있는지 직접 물어본다. 


기초과학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병원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인데 기초과학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응용에 앞서 그것이 왜 필요한지 답할 수 있게 기초과학부터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내가 실수한 것을 말해주면 모든 게 답이 될 것 같다. 샌디에이고에서 혈액 점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를 발표하는 세미나의 첫 번째 질문이 나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공대생에게 심장병과 관련해 혈액 점도를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를 했다. 그런데 의대 교수님들은 생리학적으로 혈액의 점도가 높아져서 전단 응력이 커지면 혈관이 팽창하기 때문에 혈액이 더 잘 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샌디에이고에서 기초과학만 공부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공학적인 지식이 사람 몸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기술 중 99.5%는 이런 기초과학의 부재로 잘못 개발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 0.5% 안에 들어갈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연구 방향이 중요하지, 연구 주제가 중요한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굳이 내가 그걸 안 해도 세계 누군가는 이미 그것을 하고 있다.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연구를 할 것인지, 좋은 논문을 못 쓰더라도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연구 문화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싱가포르에서 하는 연구 모두 이미 다 한국에서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연구하는 대학이 싱가포르 국립대(NUS), 난양공대(NTU), SUTD 세 곳뿐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연구가 훨씬 많다. 싱가포르는 랩별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생명공학과의 연구 클러스터라고 생각한다. 건물 각 층의 중간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 공간을 실험실이 둘러싸고 있다. 실험실은 생명공학 연구 분야별로 네 개의 클러스터로 나뉘는데, 서로 벽 등의 구분 없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 연구하다 보면 유체 역학, 세포, 로봇 등 여러 분야가 필요한데, 클러스터별로 다 연결이 돼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실험할 수 있다. 이런 구조를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안전이고, 두 번째는 협업이다. 교수가 시작하는 랩 간의 협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으로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포항공대신문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싱가포르 국립대로 유학을 왔으면 한다. 굳이 싱가포르 국립대가 아니라도 학부를 졸업하고는 미국을 가든, 석사를 하든 꼭 새로운 경험을 해봤으면 한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법을 터득하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 학생들이 이런 것들을 정말 잘한다. 여러 교수님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괴롭힌다. 인간관계는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 하려고 하면 교수님들이 다 잘 받아주시기 때문에 해외도 좋고, 포스텍을 떠나서 국내 다른 대학 교수님께라도 연락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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