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흐르는 청수사에서 만난 교토의 정취

일본의 천년 수도 교토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기요미즈데라(淸水寺)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맑은 물 위에 지어진 절’이라는 뜻을 가진 이 사찰은 이름처럼 맑은 물이 솟아 흐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교토를 대표하는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사시사철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소다.
화창한 날씨 속 오전 11시쯤 기요미즈데라를 찾았다. 사찰로 향하는 길은 이미 관광객들로 붐볐고, 외국인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교복을 입은 일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사찰로 오르는 길은 ‘기요미즈자카’라고 불리는데, ‘청수사로 오르는 언덕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양옆으로는 전통적인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곳곳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요미즈자카를 따라 올라가니 니오문(仁王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지나자, 일본 최대 높이를 자랑하는 삼층탑, 산주노토(三重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선명한 주홍빛 옻칠이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은 한층 더 돋보였다. 나아가 섬세한 조각과 균형 잡힌 구조에서도 일본 전통 건축미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삼층탑 옆 난간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있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교토 시내의 전경은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줬다.
니오문을 지나면 소원을 이뤄 준다고 전해지는 즈이구도(慈心院)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연애 △순산 △육아의 신불이 모셔져 있으며, 불교적 신앙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은 듯했다. 또한 기요미즈데라를 대표하는 본당은 험한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본당에는 기요미즈의 무대가 있는데, 이는 느티나무 기둥이 떠받치고 있으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기요미즈데라의 무대에서 뛰어내리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대담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기요미즈데라의 또 다른 명소는 사찰 이름의 유래가 된 약수가 흐르는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다. 본당 아래에 자리한 이 폭포는 세 개의 물줄기로 나뉘어 흘러내리는데,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방문객들은 한두 줄기만 마셔야 하며, 모든 물줄기를 마시면 욕심에 대한 벌을 받는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소원을 빌었다. 아쉽게도 방문한 날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모든 공간을 충분히 둘러볼 수는 없었다.
사찰을 둘러본 뒤 다시 언덕길을 따라 내려왔다. 길가에는 교토의 전통 과자인 유바(두부껍질)나 녹차 디저트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어, 관광 후 간단한 간식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점심으로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두부 요리 전문점을 찾았다. 다양한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었는데, 정갈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돋보였다. 따뜻한 차와 함께 천천히 식사를 즐기며 여행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곳의 음식이 모두 비건 요리였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깔끔한 일본식 채식 요리를 경험할 수 있어 더욱 기억에 남았다.
기요미즈데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 고유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잃지 않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이 함께 빚어낸 공간이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듯하다. 르포취재 끝자락 문화탐방시간에 만난 교토의 이 오래된 사찰은 오래도록 잔잔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정혜정 기자 hj040224@
아마도 일본에 대해 몰랐을 세 가지
일본은 세계 2위 규모의 음악시장을 가지고 있다. (2024년 IFPI 보고서 기준. 우리나라는 7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악기점과 라이브 클럽 등이 있으며, 유통되는 악기도 다양하다. 교토는 도시 규모에 비해 악기점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크고 작은 기타 숍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자는 약 다섯 군데의 기타 숍을 방문했다. 한국의 기타 숍, 특히 낙원악기상가 등에 있는 일반 악기점의 경우 유명 브랜드의 유명 모델만 조금씩 들여오고, 중저가 악기를 위주로 판매한다. 수요량의 차이 때문일까, 기자가 방문한 일본의 기타 숍은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브랜드와 가격대의 기타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군데를 제외하면 모두 자유롭게 기타를 시연해 볼 수 있었다. 시연을 꺼리는 한국과 또 다른 점이었다. 가격도 한국에 비해 확연하게 저렴했다. 한국에서 중고로 기타를 사는 것보다 일본에서 새 제품을 사는 것이 저렴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미화 150달러 이내인 경우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악기에 관심이 있고 일본 여행 계획이 있다면 악기점을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중심 관광지에 있는 기타 숍이라면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이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외곽으로 나갈수록 영어가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예상되는 대화는 어느 정도 외워가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기자는 이번 르포 중 개인 식사를 모두 비건(채식) 식단으로 해결했다. 일본에서 채식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비건 식당이나 메뉴가 많지 않고, 재료나 요리법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신기하게 (어떤 경우 무례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기자들이 머문 교토역 근처는 관광지기 때문인지 비건 식당과 카페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자는 총 세 군데의 식당에서 각각 △두유 라멘 △야채 커리 플레이트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유부·곤약·두유 등 일본에서 흔히 사용하는 식재료를 사용해 동물성 재료를 대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건·대체육 시장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해산물 소비가 많은 일본에서는 대체 해산물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일본항공(JAL)은 2023년부터 식물성 재료로 만든 초밥 ‘플랜트 베이스 스시’를 제공하고 있고, 식품제조업체 ‘아즈마 푸드’는 곤약 등을 활용한 대체 △연어 △참치 △오징어 등을 판매하고 있다. 색다른 일본 식사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식물성 해산물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일본에서 2박 3일간 머물며 가장 눈에 띈 것은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일본은 모든 공간이 좁다. 방은 물론 화장실, 복도, 식당 테이블 등 모든 공간이 딱 한 사람을 위한 크기로 설계돼 있다. 일본의 디자인은 이에 맞게 진화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 식당 등에 딸린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따로 없다. 변기 위에 작은 수전이 있거나 세면대가 아예 화장실 밖에 있다. 기자가 머문 호텔은 샤워기, 욕조, 세면대가 하나의 수전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식당에는 짐과 옷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마련돼 있어서 테이블 밑에 넣어 보관할 수 있다. 또한 코인빨래방을 자주 볼 수 있다. 1인 가구가 많은 일본의 특징상 세탁기가 없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양쪽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문이 2개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을 모든 방향에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여행할 때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만 찍는 것에 지쳤다면, 이런 디테일을 찾아보면서 문화를 직접 느껴보자.
김수진 기자 kimjinsu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