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유행어라니
자살이 유행어라니
  • 강다현/ 단일 15
  • 승인 2016.01.0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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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까지 마감인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에도,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일이 번뜩 생각날 때, 우리가 입 밖에 무심코 던지는 말이 있다. 듣기도 싫고, 말하기는 더 싫은 ‘자살각’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단체 카톡에서 ‘자살’을 검색했을 때 20회를 넘게 세어서, 그만 숫자 세는 것을 관두었다. 언제부터인지 심각한 뉴스나 신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많이 듣는다.
‘자살하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살해라'라는 카톡을 볼 때마다 섬찟 놀란다. 고교 시절의 그 친구가 떠오른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장 그를 잊고 입 밖에 내지 마라는 학교의 주문에, 갑작스럽게 떠난 그의 존재에 교실은 아비규환이었다. 평소에 시장 한복판처럼 시끄러운 여자고등학교의 급식실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밥만 먹었던, 시간이 멈춘듯했던 그 분위기를 떠올리면 눈앞이 아찔하다. 영어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모두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세상에 두고 온 모든 인연들을 아프게 하는  자살이 하고 싶다니, 정말 친한 사이에게 조금의 생각도 없이 한 말이라도 도저히 가볍게 듣고 넘어갈 수 없다.
언어는 문화의 거울이다.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38명, 일주일에 266명이 스스로 그 목숨을 끊었다. 세월호에서 떠난 안타까운 영혼들의 숫자와 맞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월호가 침몰한 만큼의 가정들의 비극이 전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자살은 생각보다 우리 삶과 가까이 있다. 날이 갈수록 더 살기 싫다는 외침이 들린다. 도대체 젊은이들의 삶이 얼마만큼 힘들면 ‘자살’이 유행어일까. 금수저들의 레이스인 헬 조선에서 가진 것이 젊음밖에 없는 이들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남았을까. 한편으로 이렇게 끔찍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단련된 것인지, 사회의 차가운 정도가 느껴진다. ‘자살’의 유행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입에 담게 될까. 우리 삶이 날이 가도 이만큼 변함없이 힘들다고 가정하자. 그때는 ‘자살’이 해소해줄 수 없는,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끔찍한 단어를 말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