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나마 대학에서의 활동도 개인차가 심하다. 누군가는 밤새서 해야 겨우 평균 정도의 성적으로 가는데 누군가는 대충하면서도 상위권인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2동아리, 3동아리 하면서 매일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놀러 가는 사람도 있다. 하루를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빼곡한 시간표로 바쁘게 보내는 사람도 많다. 그에 반해 열심히 바쁘게는 살고 있지만, 본인이 잘 살고 있는지조차도 모른 채 알게 모르게 헛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면 언젠가 마주치는 질문이 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이렇게 공부해서 남는 게 있는가, 공부를 더 해서 학점을 올려야 하는가, 내 교우관계가 너무 얕지는 않은가, 해보고 싶은 것은 있는데 지금의 내가 시작해도 괜찮을까? 등 그리고 과거에 조금만 더 잘했으면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고민들이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겪기는 하겠지만 과연 그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 내가 하는 고민과 같은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고민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 고민은 그것과는 어딘가 다른 질문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으로 앞서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나는 뒤처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에게 뒤처지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남들과 비교하는 게 아닌 나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러한 감정이 꼬리를 물고 나에게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시간적, 능력적, 금전적 제약이 너무 많다. 이것이 사회인 것인가? 어른들이 포기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나는 대학생이라는 사회인이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나는 한 번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에 대학에 오기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연습했다면, 준비했다면 지금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라면서, 혼자 고뇌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무능하다고 느껴진다면 현실이라는 벽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고민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상담하는 건 쉽지 않다고 느끼며 혼자서 고민한다. 상담한다면 그 대답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는 시간을 줄여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라 등의 말은 지금의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라도 생각하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르다. 초등학생 때 대학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것처럼, 지금도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모르는 것처럼, 사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더 있지만 그걸 지나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끙끙 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볼 수 없는 것을 언젠가 나중에는 알게 된다. 그렇지만 당장 내가 가진 것이 틀에 박힌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 생각이 짧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빨리 오도록 노력하면 된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학생이 되기까지 내가 겪은 일들이 쉬운 것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지금 이것도 쉬운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진중한 고민은 지금 내 삶의 부분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서 나온다.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건 지금 스스로 만족하면서 나름 잘 지낸다는 것이다. 만약 하고 있다면 이것이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면 좋겠다. 물론 내 질문의 답이 명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스스로 얻는 조금씩의 대답들이 언젠가 미래의 나를 이루는 내 가치관이 되는 것이다. 내 유아기, 청소년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저작권자 © 포항공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