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습을 가하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양측의 반복된 전쟁범죄와 보복을 바라보며,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떠올렸다.
영화는 십자군 전쟁 시기의 세 명의 지도자를 조명한다.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 보두앵 4세 △예루살렘 왕국의 기사 발리앙 △아이유브 왕조의 살라딘이다. 초반에 가톨릭 진영의 보두앵 4세와 이슬람 진영 살라딘의 모습을 각각 제시한 후, 보두앵 4세 사후 일어난 가톨릭 진영의 이슬람교도 상인 공격과 이에 대한 보복 전쟁을 보여준다.
감독은 종교를 믿음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믿음보다 선행과 관용을 중시한 주인공들을 보여주며 종교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시간을 제공한다. 종교적 성지보다 민간인의 안위를 우선한 발리앙의 모습을 제시해 평화적 공존의 중요성과 진정한 종교의 가치를 역설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와 동시에 세련된 영상미와 훌륭한 미장센 또한 놓치지 않는다. 볼 때는 재밌게 즐기다가도, 관람 후에는 종교와 평화에 대해 자연스레 성찰하게 된다.
감독이 ‘하늘의 왕국’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영화는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거의 천 년이 지난 뒤에도, ‘하늘의 왕국’에는 평화가 멀기만 하다’
영화가 다룬 천 년 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의 가치는 ‘선행’과 ‘관용’에 있으며, 평화는 ‘공존’에서 온다는 사실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