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
타인의 불행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
  • 양지윤 기자
  • 승인 2025.03.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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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공간에 숨어 타인의 불행을 컨텐츠로 소비하는 사이버 레커(출처: 뉴스1)
▲온라인 공간에 숨어 타인의 불행을 컨텐츠로 소비하는 사이버 레커(출처: 뉴스1)

지난달 16일, 유명 배우 김새론 씨가 향년 2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며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김 씨는 2022년 음주 운전 사고 피의자로 물의를 일으켜 논란이 된 이후, 자숙 기간을 거친 뒤 복귀를 준비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끝없는 악성 댓글(이하 악플)과 사이버 레커 유튜버 등에 시달리다 끝내 하늘의 별이 됐다.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은 단 한 순간도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중의 웃음이 단 하루 만에 비판의 여론으로 뒤집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른바 ‘마녀사냥’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처럼 정보화 시대 익명성과 온라인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 간의 소통은 더욱 활발해졌으나, 그로 인한 역효과 또한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씨를 비롯한 다수의 유명인이 익명성 뒤에 숨은 대중의 비난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바 있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비난과 질타의 화살은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은 혐오

신원을 감춘 상태로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인을 표적 삼아 조롱하고 비방하며, 개인 정보를 유출하는 영상을 주력 콘텐츠로 삼는 ‘사이버 레커’가 유행하고 있다. 유명인 관련 스캔들이 발생하는 즉시 영상을 올리는 모습이, 교통사고 현장에 앞다퉈 몰리는 견인차와 비슷해 ‘레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이들은 ‘조회수 몰이’를 통한 광고 수익 창출을 목표로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양산하며, 표적을 비난하도록 여론을 선동한다.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 표현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콘텐츠와 상품으로 소비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의 유명인이 해명에 나서거나 사이버 레커와의 소송을 통한 전면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 씨를 비롯한 아이돌의 악성 루머를 소재로 영상을 제작해 온 유튜버 ‘탈덕수용소’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로 지난해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수사 결과 계정 소유는 유튜브 채널에서 유료 회원제를 운용하며 500명에 달하는 회원을 통해 약 2년 동안 2억 5천만 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이버 레커는 악플 확산의 발상지로 주목된다. 사이버 레커는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특정인을 조롱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이에 동조하는 악플러들이 해당 인물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퍼붓도록 유도한다. 영상 속 댓글 창은 그 자체로 혐오 표현의 온상이 돼 타인의 불행을 조롱하는 동시에 여론을 분열시키느라 과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온라인 공간 속 만연한 혐오의 화살들, 처벌 현황은?

다수의 피해자가 곤욕을 치르는 상황이지만,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발생하는 명예 훼손의 처벌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이버 레커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해 활동한다. 유튜브 본사가 미국에 위치한 만큼, 그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서 본국 사법 체계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피해자는 한국, 미국 양국의 변호사를 선임해 본사에 직접 접촉해야만 사이버 레커의 신원을 겨우 확보할 수 있으며, 신원을 확보한 뒤에나 국내에서 고소 및 고발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건의 피해자 본인이 매우 소모적이고 절차적인 장벽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소송이 시작돼도, 대다수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성립을 위해서는 ‘비방의 목적’이 인정돼야 하는데 사이버 레커는 비방을 수단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어 ‘조회수 몰이’를 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처리되는 것이다. 결국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이 아닌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돼 유죄를 인정받아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악플러’에 대한 처벌은 사이버 레커보다 비교적 잘 마련돼 있어, 실제 고소 및 고발 사례가 증가했다. 하지만, 이 또한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러 있어 근본적인 ‘악플 근절’이라는 해결책은 이뤄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비난 여론을 선동하는 사이버 레커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 콘텐츠에 모여드는 악플러들의 수 또한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인터넷 준 실명제 △사이버 레커 정보 공개법 △유튜브 사전 규제법 등 여러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공식 언론이 아닌 미디어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사전 규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외 본사와도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법적 장치의 마련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정보화 기술과 맞물려 타인과의 소통은 더욱 용이해졌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을 향해 더욱 쉽게 화살을 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돼 만연해진 시대다. 오늘날, 법적 측면에서는 타인의 불행을 행복으로 여기며 쉽게 소비하고, 실어 나르는 행동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주체인 대중은, 온라인 공간 속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에 대해 늘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