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버스 놓쳤다. 조금만 빨리 왔으면 탈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면 우리는 당연하게도 다음에 올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지, 이미 버스나 지하철을 놓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요하네스 하우쇼퍼 교수는 독특하게도 두 종류의 이력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력, 연구 실적 등을 빼곡히 기록한 보통의 이력서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실패한 것들을 기록한 ‘실패 이력서’라고 한다.
나는 별도의 실패 이력서를 작성해 보지는 않았지만 부끄럽게도 실패 경험을 다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대학교 입시에 실패해서 반수를 했고, 학부 과정과 다른 학과로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대학원 학점도 좋지 못했다. 석사과정에서 박사과정으로 넘어가며 또 실패를 겪었고, 이외에도 각종 신청과 지원을 했다가 떨어진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최근에도 논문과 연구과제에서 좌절을 겪었다. 봄학기 끝자락이 다가오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지만, 가을학기에는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 있어서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런데 늦게서야 받아 든 결과 통지서는 불합격. 눈앞이 아득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며칠을 보냈다.
Meta의 이인자 셰릴 샌드버그가 어느 졸업식 연설에서 “당장은 의미가 없어 보이고 허공에 점을 찍는 것으로 보여도 나중에 가서 보면 지금까지 내가 찍었던 점이 별처럼 서로 연결된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과거 실패가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여러 차례 떨어지며 몇 번을 반복한 전문 자격시험 공부가 나중에 경제와 금융을 처음 접하는 학부생들에게 중요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또, 학부에 입학하자마자 배웠던 코딩은 너무 어려워서 벽처럼 느껴졌고 학점도 낮았다. 하지만 현재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공계 방법론을 경제 및 금융 문제에 활용한 융복합 연구를 진행하는 데 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학원생 시절 불평불만을 하면서 연구과제 제안서를 작성했던 경험과 좋든 싫든 해야만 했던 연구 행정 경험은 대학원 졸업 후 연구책임자로서 덜컥 첫 연구과제를 수주한 후 이를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들 겪는 거고 이렇게 성장하는 거야, 너보다 상황이 더 못한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너는 그나마 나은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와 같은 말들이 당시에는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실패 경험들은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우수한 연구 성과로 여러 차례 언론을 장식하는 교수님들도, 우리나라 첫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저명한 교수님도 처음부터 성공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지질해 보여도 내가 이것저것 실패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얻었던 것들이, 내가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면서도 도서관에서 교과서와 씨름한 시간이, 나의 실력이 되는 것을 중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많은 분이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할 때는 ‘뭐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었던 것들이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중에 하나로 연결된다.
내가 학부생일 때 한 교수님께서 ‘인생에서 한 번은 나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한 기억이 지금까지 난다. 이것은 대학원에서의 몇 년이 될 수도 있고, 각종 △시험 △고시 △취업 △창업 등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과 기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인생을 걸어야 할 때, 이전의 실패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이 정말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할 것이다.
때로는 드물기는 하지만, 비록 앞의 버스를 놓쳤더라도 실제로 1~2년에 한 번씩, 나도 몇 차례 경험한 것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뒤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앞의 버스로 후다닥 환승하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놓쳤다면 바로 다음에 오는 것을 타면 된다. 다음의 것이 반드시 또 오게 돼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