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승리는 누구에게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승리는 누구에게로
  • 강호연 기자
  • 승인 2024.11.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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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고 있다(출처: 이포커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고 있다(출처: 이포커스)

오랜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 속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고려아연은 1974년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아연을 비롯한 다양한 금속을 생산하며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계열사인데, 영풍그룹은 1949년 장병희와 최기호 두 창업주가 공동 창업해 수십 년간 동업을 이어왔다. 장병희가 중심이 된 장씨 일가는 전자 계열사를, 최기호가 중심이 된 최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맡아 분리 경영 체제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경영 방침과 지분 구조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발단

최씨 일가가 중심이 된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에 대한 배당금을 줄이고 결별 선언을 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장씨 일가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장씨 일가와 MBK는 최대 2조 원 규모의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에 대응해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도 대기업 측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자사주 매입과 공개매수에 나섬과 동시에 베인캐피탈(Bain Capital)과도 손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40만 원대에 거래되던 고려아연의 주식은 120만 원까지 급등했고, 공개매수 전쟁에서 장씨 일가와 MBK 연합이 우세한 상황이 펼쳐졌다.

MBK의 가처분 신청

장씨 일가와 MBK 연합에 대응해 공개매수를 시도하는 고려아연을 막을 목적으로 MBK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신청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매입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MBK는 두 번에 걸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는데, 첫 번째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를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의 가처분 신청은 모두 기각됐지만, 가처분 신청이 진행되는 동안 MBK는 고려아연의 주식 5%를 취득했다. 이는 예상보다 큰 규모의 시장 지분 확보였고, 고려아연은 이에 대해 MBK의 가처분 신청이 공개매수 과정에 혼란을 일으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시장 교란’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즉, MBK의 가처분 신청이 자사주 매입을 막으려는 시도뿐 아니라 경영권 분쟁을 복잡하게 만들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치권도 가세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주식시장 내 기업 경영 다툼을 넘어 울산 지역 정치권으로도 확산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매우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국가의 여러 산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울산 향토 기업’이기 때문이다. MBK는 사모펀드로, 단기적 수익 창출을 목표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고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MBK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면 고려아연의 지분이 외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울산 지역 정치권과 시민 사이에서 고려아연을 투기 자본에 넘길 수 없다며 ‘약탈적 인수합병’이라는 거센 목소리가 나왔다. 울산상공회의소 이윤철 회장은 “사모펀드의 본질적 목표인 단기간 고수익 달성을 위해 연구 개발 투자 축소, 핵심 인력 유출, 나아가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수 있다”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MBK 측은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하지 않겠다”라며 울산 경제에 손해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 측과 장씨 일가 MBK 연합 측이 공개매수전을 벌인 결과, 양측 모두 과반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고려아연 측은 약 35%, 장씨 일가와 MBK 연합 측은 약 38%의 지분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즉, 어느 측도 단독으로 경영권을 결정할 만큼 충분한 지분을 가지지 못했다. 양측이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주총회 등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외부의 주요 주주나 기관투자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과 같은 큰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자가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다. 장씨 일가와 MBK 연합이 고려아연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했으나 고려아연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신청한 상황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철회

고려아연은 2조 5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 유상증자 계획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발표됐기 때문에, 자금 조달의 목적이 경영권 방어와 관련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부 주주와 투자자들은 이 계획이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하고 경영진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수단이라 여겨 반발했다. 결국, 시장의 우려와 반발을 수용해 고려아연은 지난 13일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으며, 동시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불공정거래 혐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철회는 경영권 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전망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쯤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기업 내부뿐 아니라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 전개에 따라 파급 효과가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