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전자상거래 기업 큐텐과 그 계열사인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에서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하며 피해가 늘고 있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가 지난해부터 일부 판매 대금 정산을 지연해 왔는데, 올해 7월 티몬이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하며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큐텐의 구영배 대표가 국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서 입점업체에 줘야 할 판매 대금을 유용해 다른 기업의 인수 자금으로 썼다고 인정하며 소상공인의 공분이 커지고 있다.
구 대표는 과거 인터파크에서 분리된 G마켓을 이끌고 순식간에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1위를 거머쥔 이력이 있다. 2000년대 중반, 그는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 후 이베이의 옥션까지 꺾으며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하고 10년간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지 않겠다는 비경쟁 조항으로 인해, 싱가포르에 큐텐을 설립하고 동남아와 일본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큐텐은 다시 한국 시장에 진입해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구 대표의 행보에 의문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티몬, 위메프 등 연속적으로 인수한 기업들이 모두 적자 상태였고, 인수 이후에도 재무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특히 티몬과 위메프는 지속된 재무 악화로 누적 적자가 자본금을 초과하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접어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재정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에는 현금까지 동원하며 미국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위시(Wish+)를 인수했다. 구 대표는 단기간에 몸집을 불려 올해 하반기 큐텐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무리하게 규모를 확장한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일까. 지난해 10월경부터 판매자 대금 정산 지연 문제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몸집을 불리는 데 판매자 대금을 사용했고, 판매자에게 지급할 대금을 충당하고자 대규모 할인을 진행하며 고객에게 싼값의 물건을 팔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할인으로 손해액이 누적돼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고,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과거 G마켓의 나스닥 상장에 이은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으로 제2의 신화를 꿈꾼 구 대표의 계획은 철저히 틀어졌다. 예상보다 적자 규모가 컸던 인수 기업들이 흑자전환에 실패한 것이다. 한편 재무 건전성을 신경 쓰지 않고 긴 정산 주기를 악용해 돌려막기를 했다는 분석이 나와 관련 법 제도 신설에 대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액은 정확한 추산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규모를 약 8,000억 원대로 추정했으며, 이조차도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총피해액이 1조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무리한 몸집 불리기의 불똥은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에게 튀었다. 지난 7월 말 위메프 입점업체에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위메프 본사로 몰려가 환불을 요구했고, 큐텐 사무실 앞에서 집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8월 첫째 주까지 접수된 환불 신청 요구만 약 600억 상당이지만, 8월 21일 기준 359억 원만 환불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1조 원에 달하도록 추산되는 정산금을 돌려받지 못한 입점업체의 상황은 어떨까. 무리한 몸집 불리기에 당한 대부분의 소상공인 또한 ‘도미노 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존폐 기로에 놓였다.
해당 사태에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긴급 금융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같은 달 7일 발표한 ‘위메프·티몬 사태 대응 방안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우선 판매자를 대상으로 해당 자금 지원 계획에 4,300억 원을 추가한 1조 6,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실시해 긴급 자금 대출과 이자 차액 보전(이하 이차보전)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업은행과 지자체 16곳도 피해 업체 대상 대출 또는 이차보전을 진행하며 판매자 금융 지원에 착수했다.
현 사태에 큐텐그룹 산하 플랫폼 3사는 모두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구 대표는 해결을 위한 자구책을 내놨지만 정작 구체적 자금 조달 계획 없이 △신규 투자 유치 △인수·합병 추진 △구조조정 등을 통한 플랫폼 정상화, 재매각의 계획이 담긴 것으로 전해져, 가능성 없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장을 추진했던 큐익스프레스는 모기업인 큐텐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구제는 제자리, 사태의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중이지만 그룹 핵심 계열사는 각자 제 살길 찾기에 나서며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무리한 나스닥 상장 추진을 통한 몸집 불리기는 결국 파산 도미노를 야기하고 말았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와중 정부와 지자체가 피해 구제를 위해 신속히 나설 동안 정작 원인 제공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신속한 피해 구제와 더불어 업계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산 주기 법제화, 결제 대금 별도 관리 등 제도 개선과 재무 건전성을 고려해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