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모두의 부주의가 문제를 키웠다
홍콩 ELS, 모두의 부주의가 문제를 키웠다
  • 김윤철, 김태린 기자
  • 승인 2024.04.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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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ELS는 약 15조원에 이른다(출처: 뉴스1)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ELS는 약 15조원에 이른다(출처: 뉴스1)

지난해 말부터 금융권 전반의 우려를 샀던 홍콩 H지수가 하락함에 따라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특히 홍콩 H지수를 기반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이하 ELS)에서 그 충격이 크게 나타났다. 2021년 12,000선에 도달하기도 했던 홍콩 H지수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크게 하락하며 당해 연도 4,000선 대까지 하락했다. 그 뒤로 소폭 회복했지만 이달 1일 기준 5,900선 대를 유지하고 있다. 기준일 종가 대비 50% 이상 하락한 ELS는 현재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간인 ‘녹인배리어(Knock-In Barrier)’에 진입했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15조 1,000억 원의 ELS 상품은 50% 이상 원금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품의 만기일까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에 그저 원금 손실이 불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LS는 금융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주가에 기반한 위험성이 높은 증권이다. 일반적으로 연 5~25%의 수익률을 확정해 보장하므로 수익성은 높으나, 주가의 급락에 따른 원금 손실 측면에서 위험성이 매우 높다. 특히 기초 자산의 가치가 떨어져 녹인배리어에 진입할 경우 투자자는 원금의 대부분을 잃을 수 있다. 문제가 된 홍콩 ELS는 홍콩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상품으로, 이제껏 판매된 홍콩 ELS 상품 대부분이 올해 만기 예정이다. 본래 투자는 손실에 대한 위험성을 전제로 이뤄지는 행위이기에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그 책임을 타인에게 함부로 물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부적절한 영업 목표 설정 △고객 보호 관리 체계 미흡 △판매시스템 부실 등 ELS 판매사가 사기에 가까운 불완전 판매를 지속했다는 점에서 여타 금융 위기와 궤를 달리한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서 홍콩 ELS에 대한 판매 실태 점검을 시행한 결과, 주요 은행에서 홍콩 ELS 불완전 판매 의심 사례가 여러 건 적발됐다. 금감원은 이후 불완전 판매를 자행한 은행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9년 파생 결합상품(DLF) 불완전 판매 사건 이후 5년 만에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됐기에 금융권에 대한 실망감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는 상품 판매 실적을 직원 성과에 반영해 성과주의를 부추기는 국내 금융권의 악습이 꼽힌다. ELS 피해자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층이라는 점도 상품 설명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무리한 판매를 지속한 판매사의 행태를 방증한다.

홍콩 ELS로 피해를 본 투자자가 속출하자 정부는 홍콩 ELS 대규모 손실과 관련해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금감원은 지난달 11일 ‘홍콩 H지수 기초 ELS 검사 결과 및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하고, 판매사와 투자자 간 배상 비율 산정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배상 비율은 △기본 배상 비율(20~40%) △판매사 가중(3~10%) △투자자별 가산(최대 45%) △투자자별 차감(최대 45%) △기타(10% 내외 가감)로 구성된다. 금감원 검사 결과 확인된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배상 비율이 결정되는 구조다. 홍콩 ELS를 판매한 7개 은행 모두 금감원의 분쟁조정 기준안을 수용하며 이달부터 자율배상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나 배상 비율 산정에 불만이 있는 투자자가 적지 않아 판매사와 투자자 간 분쟁 조정에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라임펀드’와 2020년 ‘옵티머스 펀드’ 사모펀드 사기 사건 당시 금융당국이 100% 배상을 권고했던 것과 달리, 이번 사태의 평균 배상률은 40%에 불과한 것을 두고 홍콩 ELS 피해 투자자들은 전액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 모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집회에서 “은행에서는 고위험 고난도 상품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고객에게 판매해 놓고 이제 와서 고객의 자기책임만 내세우고 있다”라며 “금감원이 내놓은 배상안은 어떤 경우에도 은행 책임이 50%를 넘기지 않는 것으로 소비자에게 불만족스러운 방식”이라고 판매사와 금융당국 모두를 비판했다. 판매사는 금융당국의 자율배상 방안을 수용했지만 투자자들의 수용 여부는 별개의 문제인 만큼, 자율배상을 넘어 분쟁조정과 집단소송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홍콩 ELS 사태는 △판매사 △금융당국 △투자자 모두의 책임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판매사는 이번 사건에서 자행된 무리한 영업 경쟁과 불완전 판매에 대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이번 사건을 수습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경우 홍콩 ELS 판매사의 위법 부당행위에 대해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는 동시에, 피해 투자자들의 손실 부담이 경감될 수 있도록 자율 배상과 분쟁조정을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 또한 고난도 금융투자 상품 판매제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는 투자의 책임이 투자자 본인에게 있음을 명심하고 신중히 투자상품의 구매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홍콩 ELS 사태로 인해 국내 금융권의 허점이 다수 드러난 만큼, 잘못된 부분을 속히 바로잡고 건전한 투자 생태계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