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닮은 체스
삶과 닮은 체스
  • Joshua Prigge / 인문 대우강사
  • 승인 2024.04.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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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게임보이, 닌텐도 시대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콘솔 게임기를 경험해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게임의 세계는 해가 갈수록 놀랍게 발전해왔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과거도, 지금도 변함없이 체스다.

체스에서는 가능한 수의 조합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각자 첫 3수만 둬도 총 900만 가지가 넘는 포지션이 나올 수가 있다. 4수를 둘 경우 무려 2,880억 가지의 상황이 가능해진다. 방금 내가 한 체스 게임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그렇게 진행된 경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게임임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수준의 재능이나 높은 위험 부담 없이 인류 최초로 뭔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물론 바둑과 같은 다른 형태의 보드게임도 가능한 수순의 조합이 엄청나게 많지만, 체스 말의 모습과 분위기 때문에 나에겐 체스가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체스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점은, 체스를 두며 겪는 수많은 상황이 내 인생 속 교훈이 돼준다는 것이다. 흔하디흔한 진부한 얘기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명백한 사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스 말인 폰을 보면, △비숍 △나이트 △룩과 같은 다른 중요한 기물과는 달리 모습이 평범하고 수수한 편이다. 가장 앞줄에 일렬로 늘어서 있고, 이론상으로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약하고, 기물의 강함 정도를 나타낸 기물 가치가 낮은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폰들이 연결돼 하나의 체인을 이루게 되면 그 힘은 매우 강력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폰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곤 한다. 때문에 폰을 잘 보호하고 적절한 순간에 활용하는 것이 실력의 척도가 되곤 한다. 이외에도 더 강한 기물들의 도움으로, 폰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만약 폰이 상대편 진영의 끝까지 나아가게 되면 다른 강력한 기물로 승진(Promotion)할 기회가 주어진다. 가장 약한 말이 가장 강해진다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폰을 앞으로 밀어붙인 다른 기물들의 역할이 나에겐 크게 와닿곤 한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힘겹고 지친 순간들이 많았다. 어려움이 닥치면, 지금 내 앞에 산적해 있는 일과 예기치 못한 삶의 무수한 문제들이 마치 끝없이 쌓여가는 크레페 케이크와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방향에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궁지에 몰린 것 같은 상황에 자주 봉착한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도저히 해결책이 없어 보이고,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중요한 것을 희생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판세를 냉정히 살펴보고 시간을 조금 가지다보면, 사실 공격 그 자체보단, 공격의 위협이 더 크게 다가왔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이를 알아차리고 나면, 그때부턴 가장 위험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결하면 된다. 그 위협을 제거하고 나면, 남은 위협들은 와해되고 풀어지며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더는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게 된다. 지금 내가 여전히 여기에 있고,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많은 사람이 체스에서는 많은 수를 미리 생각하고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여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으나, 사실 많은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그렇듯,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략이나 계획 따윈 세우지 않은 채 그저 한 수를 둬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시작할 때는 아무도 최종 결과를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오게끔 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내가 움직일 기물이 다음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위치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기물이 보호받는다면 자연스레 더 좋은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걱정거리도 줄어들 것이다. 전략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유리한 포지션에 놓인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