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도서정가제, 올바른 방향은
변화하는 도서정가제, 올바른 방향은
  • 이주형, 정유현 기자
  • 승인 2024.02.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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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출처: 조선일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출처: 조선일보)

 

 

지난달 22일 정부는 도서정가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웹툰, 웹소설과 같은 웹콘텐츠를 도서정가제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고 영세서점의 할인율을 유연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해당 내용이 발표된 직후 출판업계와 웹콘텐츠 업계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출판업계는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가 전자책의 도서정가제 대상 제외 청구를 기각한 것을 들며 개편안의 내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웹콘텐츠 업계는 평소 도서정가제의 내용이 웹콘텐츠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개편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하기에 도서정가제의 행방에 관한 논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도서정가제란 도서의 유통 과정에서 정해진 비율 이상으로는 책값을 할인할 수 없도록 정한 제도를 말한다.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가격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를 막고 대형·온라인 서점 및 대형 출판사가 과도한 할인으로 중소규모 서점 및 출판사를 압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03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다. 도입된 당시는 온라인 서점을 대상으로 적용됐으며 1년 이내의 신간에 한해서 최대 10%만 할인 판매가 허용됐다. 하지만 2007년 10월부터 법이 개정되며 신간의 기준을 발간된 지 18개월 이내의 서적으로 규정하고, 신간 최대 10% 할인을 오프라인 서점까지 확대했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에 다시 개정돼 발매일에 상관없이 모든 도서에 한해 최대 10% 할인 제한이 생겼고, 직접할인과 포인트 적립, 사은품 증정 등의 간접할인을 합해도 정가의 15%를 넘길 수 없게 됐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서정가제 유지 타당성을 3년마다 검토하고 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는 출판업의 수출 비중이 높지 않고 지역 서점의 수가 많다. 이들은 자국 출판업계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대표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출판업계의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대형 서점의 할인율에 밀려 소규모 서점이 피해를 보게 되자, 1981년 ‘랑법’을 제정하며 도서정가제를 최초로 법제화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지역 서점과 대형 서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소수 출판물과 출판 산업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었다.

반면 영미권 국가의 경우 출판업의 수출 비중이 높고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은 결과,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서점이 성장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위 출판사가 전체 시장 매출의 97%를 차지하는 불균형한 출판 생태계가 형성되는 모습도 관찰됐다.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시행 양상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도서 시장의 규모가 영미권에 비해 협소하기 때문에 영국을 제외한 유럽권 국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측은 도서정가제의 의의가 할인 경쟁에 취약한 이들을 보호함으로써 출판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양한 분야의 출판 활동을 촉진하는 데 있다고 본다. 최대 할인율을 정해놓음으로써 대형 출판·유통사와 영세서점 사이의 할인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며 전국 영세서점의 감소를 완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할인 제한의 부재는 도서의 정가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 △서점 △출판사 모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응해 도서정가제는 서적에 가격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출판 시장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신인 작가와 영세출판사는 도서를 안정적으로 출판할 수 있고, 동시에 독자는 다양하고 풍부한 도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도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하나의 근거로 작용했다. 즉, 도서를 문화적 가치를 갖는 하나의 문화 공공재로 보고, 단순한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도서가 문화상품으로서 기능하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존재한다. 할인 제한으로 인해 높게 책정된 책의 판매가는 믿고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의 구매를 촉진한다. 이는 신인 작가 보호를 통한 도서의 ‘문화적 다양성 보존’이라는 도서정가제의 기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글을 쓰고 출판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도서정가제가 과연 도서의 다양성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생겨나고 있다. 한편 도서는 현재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이 다른 형태의 매체를 통한 여가 활동과도 경쟁 관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는 도서의 가격 경쟁력을 낮추고 도서 시장을 침체시킬 수 있다.

도서 유통 구조의 본질적 문제도 지적된다. 대개 할인 경쟁의 불균형은 서점별 공급률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공급률이란 출판·유통사가 서점에 책을 납품하는 가격의 정가 대비 비율을 뜻한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은 영세서점보다 비교적 낮은 공급률을 점하고 있어 할인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기 이전에 도서 유통 구조의 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도서정가제의 조정 방향을 둘러싼 여러 찬반 논쟁이 있으나, 결론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소비자 △출판업계 △작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