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and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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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항진 / 기계 부교수
  • 승인 2023.09.0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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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할 때 “저는 열유체를 연구하는 기계공학과·원자력공학과 소속의 교수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나의 전공을 대표하는 말은 ‘열유체’인데, 솔직히 말하면, 20년 전의 나는 저런 단어가 세계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의 내가 20년 전의 내게 답하자면 ‘열유체’라는 건 ‘열이라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뜨겁다 혹은 차갑다의 기준이 돼주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액체 혹은 기체 상태의 유체 전달’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추상적인 설명이 20년 전의 내게 이해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로 나는 20년 전에 우리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생이었고, 몇 년 후에는 실제로 그 목표를 이뤄 아주 만족스럽게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본인이 고등학교 때까지 원하던 어떤 목표가, 대학에 들어와서 실제로 배워보니, 그저 존재하던 그 분야에 나 자신이 무언가 판타지를 만들어 좇아온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들이 깨는 순간이 가끔 있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책상을 발로 차면서 깨듯이, 적당한 습도와 시원한 온도를 만끽하면서 귓속에서 나오는 리듬을 타고 달리던 가운데에 갑자기 멈춰 서듯, 그렇게 갑자기 깰 때가 있다. 아주 작게는 성적부터 내가 설정한 모든 목표대로 이뤄지는 것 같던 그 상황에서, 그 간의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루트도 어떨 것이라는 상상으로 어떤 분야들에 대한 혼자만의 가상 세계를 꾸려가다 현실과의 그 괴리를 느꼈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혼란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행동이 최선인지 몰랐고, 지금도 여러 학생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른다. 다만 내게 무언가 처방을 기대한다면, 과거의 내게도 지금의 내게도 할 수 있는, 그래서 나의 제자들에게도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도망가지 말고 여러분을 위해 고리타분하게 깔아 놓은 수업이나 환경들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2학기가 돼서 ‘열유체’를 처음 접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꿈꿔온 나의 전공이 사실은 사회에서 좋아 보이던 것에 끌렸던 것이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던 중 현실에 휩쓸려 들은 필수 전공 중 하나였다. 그런데 듣다 보니 재미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남들이 진로나 전망,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들리지 않았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어디다 쓸지도 모르는 그 내용을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나는 그렇게 큰 대책 없이 전공을 골라 대학원에 갔다.

전공의 선택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지 알지만, 여러분들에게 감히 앞서 걸어갔던 선배 중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이 만든 반짝이는 길을 찾기보다는 본인이 길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다. 반짝여 보여서 갔던 길이 막상 본인이 들어갔을 때 불이 꺼지더라도 그 길에서 꿋꿋이 걸어나가 다시 길을 밝히는 것도 본인이며,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길을 혼자 개척해 나가서 새로운 지평선을 만들어 내는 것도 본인의 역량이다. 우리 학생들은 부디 그 불안함과 어려움에서 탈피해 본인의 역량과 그리고 이미 앞서 나간 많은 선배의 증명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대학 공동체의 우산을 믿고, 최소한 남의 소리가 아닌 본인의 소리를 기반으로 한 선택을 하면 좋겠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명확히 하자면 위의 나의 전공과 관련해서 당시 어디다 쓰일지 몰랐다고 언급했는데, 그건 열유체를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의 이야기였다. 복잡한 소리는 줄이고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열=에너지’이다. 열을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는 열을 연속적으로 옮길 수 있는 유체인데, 그래서 우리가 쓰는 모든 에너지의 시작은 열유체이다. 그렇게 나온 열유체를 전기로도 만들어 배터리에 충전하고, 수소로도 만들어서 에너지 저장이나 철강 등에 쓴다. 우리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지난 30년간 전 세계에서 단 1%도 줄이지 못했다. 환경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 기술의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전기 소모를 증가시킨다. 이러다 보니 현재 열유체 분야는 ‘핫’하다. 나는 점점 ‘핫’해지는 지구에 나름의 기여를 위한 ‘쿨’한 연구를 하고 있다. 다만 위 표현에 대한 오해의 여지가 있어 밝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