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영화 흥행의 압도적 1위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오펜하이머’다. 영화의 원작은 2006년 출판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 이전에 존재했던 티탄족으로 ‘먼저 보는 자’라는 이름만큼이나 완벽한 예지력을 가졌다. 그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걸로도 모자라 미래를 알려달라는 제우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죄로 영원히 바위에 묶인 채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자신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자기 간을 내주었을 것이다.
평전의 저자들은 미국인들에게 핵무기를 안겨주고도 소련 간첩으로 몰려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오펜하이머를 프로메테우스에 비견했다. 하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으로부터 처벌받은 대신 인간들로부터는 숭배받았지만, 오펜하이머를 처벌한 건 그로부터 핵무기를 받은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를 영원히 괴롭혔던 진정한 형벌은 공직을 박탈한 청문회나 그의 등 뒤에서 벌어진 배신과 암투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이 무거운 죄책감과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1945년 8월, 마침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미친 듯이 환호하며,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고, 우리 아들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라는 상찬을 들을 때, 오펜하이머의 온몸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원폭의 잔혹한 권능 아래서 숯덩이로 변해버린 수만 명의 비명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힌두 경전 ‘바가바드기타’를 인용해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되뇌었다. 이때부터 그의 내파(內破)가 시작된 것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핵융합이 아군을 피해 적국 상공에서만 이루어질 리 없고, 바이러스는 출입국사무소에서 멈추지 않으며, 대양으로 흘러든 오염물질이 영해를 피해 우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오펜하이머가 스페인 내전의 난민들을 위해 지원금을 보내면서, 동시에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었던 것도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대량 살상 무기를 나치보다 먼저 미국이 차지해야 한다는 데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핵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패색이 짙은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수만 명의 민간인 머리 위에 원폭을 떨어뜨렸다. 미국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웅이던 그가 순식간에 숙청당했던 건 냉전에 돌입한 미국에 매카시즘 광풍이 불면서 그가 한 때 (20세기 초 대부분 지식인이 그랬듯) 공산주의에 동조했었기 때문이다. 우주를 내다본 천재 과학자는 한없이 미천한 인간세계에서 무력했다.
핵무기는 과학이 만들었지만, 결정은 정치가 했고, 판단은 여론이 했으며, 평가는 역사가 한다. 혼란과 혼돈, 모순과 부조리 속에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한다. 홀로 국경을 넘은 것이다. 과학자에게 조국이 있는 한 세계 어디에선가는 계속해서 무기가 개발될 것이고,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 전쟁과 폭력이 멈추지 않은 채 연쇄 폭발을 지속하다 결국 세상이 파괴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게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가 내다본 미래이고, 그가 받은 형벌이다.
우리대학 무은재기념관 앞에는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의 흉상이 커다란 대좌 위에 올라 있다. 거기서 몇 걸음 더 걸으면 우리대학의 상징과도 같은 ‘미래의 한국 과학자’를 위한 빈 대좌가 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류의 삶에 공헌하고 마침내 노벨상을 거머쥘 ‘한국 과학자’의 배출이 우리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구 절벽 △기후 위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상황을 두고 보면 ‘한국 과학자’가 도래하기도 전에 한국이 먼저 소멸할 것 같다.
이제 포스텍은 ‘미래의 한국 과학자’가 아니라 ‘미래를 가능케 하는 자’를 키워야 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힘, 인류를 아우르는 가치를 창출할 인재는 국경 너머의 세계를 보고 과학 밖의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피카소를 보고, T.S. 엘리엇과 마르크스를 읽고, 스트라빈스키를 들으며, 바가바드기타를 읽어보자. 우주의 비밀을 깨닫기 전, 오펜하이머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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