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부정하는 ‘네버랜드 신드롬’
나이 듦을 부정하는 ‘네버랜드 신드롬’
  • 최대현 기자
  • 승인 2023.04.1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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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희 배우가 찬 어린이용 액세사리 세트가 최근 유행했다(출처: 네이트뉴스)
▲한소희 배우가 찬 어린이용 액세사리 세트가 최근 유행했다(출처: 네이트뉴스)

최근 1998년 첫 출시돼 청년층의 유년 시절 큰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 빵’이 재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켓몬 빵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를 컨셉으로 해 다양한 종류가 있고, 포켓몬이 그려진 씰을 덤으로 증정하는 상품이다. 이외에도 최근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개봉되는 족족 흥행하고 사람들은 OST를 즐겨 듣는다.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되는 현상인 ‘네버랜드 신드롬’이 유행 중이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올해 우리나라를 강타할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꼽았다. ‘네버랜드’는 소설 ‘피터 팬’ 속 주인공 피터 팬이 살고 있는 가상의 나라로, 아이들이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장소이다. 이를 어원으로 한 네버랜드 신드롬은 나이보다 젊고 개성 있게 사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풍조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현상을 ‘피터 팬 증후군’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증후군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과거를 추억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고, 네버랜드 신드롬은 젊은 인생을 추구하는 모습을 중립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행동 양식에 따라 △돌아감 △머무름 △놂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먼저, ‘돌아감’ 유형은 포켓몬 빵과 바비 인형 등 추억의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상이다. 이는 202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키덜트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키덜트(Kidult)란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어릴 적 갖고 놀았던 추억을 소비하는 키덜트 상품군을 쓸모보다는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며 소비하는 어른들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작년 10월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열린 ‘로얄멜팅 클럽’과 ‘바비 인형’의 협업 상품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는데, 이 기간 주 고객층은 유소년층이 아닌 20대와 30대였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반가움 뿐 아니라, 어린 시절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경제력이 생긴 어른이 돼 구입하면서 소원을 성취하려는 심리 또한 담겨 있다. 다음으로, ‘머무름’ 유형은 나이를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며 더 나이를 들지 않으려 하는 현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던져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학교를 늦게 졸업하고, 경제적 이익과 명예를 얻는 승진의 사회적 책임을 두려워하며 기피하는 현상 등이 예시이다. 마지막으로, ‘놂’ 현상은 어린 시절의 아이들처럼 쉽고 명랑하게 노는 것을 추구하는 현상이다. ‘무지출 챌린지’가 대표 사례로, 현실의 어려움을 절박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닌 게임 속 퀘스트처럼 놀이로 해석한다. 기존의 딱딱한 라디오와 뉴스 등에서 벗어나 N분 요약, 카드 뉴스 등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도 이에 해당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이 유행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크게 2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네버랜드 신드롬은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안정적이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로 이어지는 현상이라는 시선이다. 또한, 의료 기술과 생활 환경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 청춘이 길어지고 생애과정이 다양화되며 어른의 전형적인 모습이 사라졌고, SNS가 발달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공유하며 뽐내고 있다. 이에 개성 있는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렇다면, 네버랜드 신드롬이 우리의 삶에 주는 영향은 무엇이 있는가? 먼저, 네버랜드 신드롬은 세상에 젊음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한층 다양한 개성을 부여한다는 긍정적 영향을 준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낸 네버랜드에 과도하게 몰입되다 보면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하며 문제 발생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 △사회 △정부의 탓으로 돌리거나, 지나치게 자기 취향에 몰두하는 아동기적 행태가 있음을 전문가들이 지적하기도 한다. 적당한 몰입은 우리의 삶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만, 과도한 몰입에서 비롯하는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세계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는 타인에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중장년층과 MZ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혼자서 소소한 소비를 즐기던 과거 ‘조용한 소비’ 문화와는 달리 최근 키덜트 문화는 SNS의 힘을 빌려 공개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이 키덜트족으로 탈바꿈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등 구매력이 높은 이들을 필두로 한 네버랜드 신드롬은 앞으로도 계속 화제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을 거부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며, 현실에서 네버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슴 속에 품은 네버랜드는 유토피아가 될 수도,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유년기의 무탈함과 무책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산뜻함과 발랄함을 찾고자 할 때, 진정한 유토피아로 거듭난 당신만의 네버랜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