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롤드컵, DRX의 우승에는 낭만이 있다
2022 롤드컵, DRX의 우승에는 낭만이 있다
  • 최대현 기자
  • 승인 2022.12.10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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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드컵 결승에서 창단 첫 우승의 기분을 만끽하는 DRX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
▲롤드컵 결승에서 창단 첫 우승의 기분을 만끽하는 DRX 선수단 및 코칭스태프

지난달 6일,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 막을 내렸다. 오랜만의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내전’이 진행된 가운데, DRX가 T1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승리하며 기적 같은 구단 첫 우승을 만들어냈다.

 

전례 없는 ‘4시드 우승’, DRX는 출전권도 힘겹게 따냈다

롤드컵은 게임 제작사인 ‘라이엇 게임즈’에서 주최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대회로, 모든 선수의 꿈의 무대이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는 총 16팀이 진출하고, 이때 각 리그의 수준을 고려해 출전권인 ‘시드’가 분배된다. LCK의 경우 LPL(중국 리그)과 함께 최고 수준 리그로 인정받기 때문에 가장 많은 4장의 시드가 부여된다. 이 LCK 내부 규정에 의해 LCK 서머 우승팀인 ‘GEN.G’와 스프링, 서머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T1’은 각각 1시드와 2시드로 일찌감치 진출을 확정 지었다. 나머지 2개의 자리를 두고 4개의 팀이 결정전을 치르는 구조인데, 당시 4개의 팀을 포인트로 순위를 매겼을 때 DRX는 △담원 기아 게이밍(이하 DK) △리브 샌드박스(이하 LSB) △KT 롤스터 게이밍(이하 KT)에 이은 4번째였다. 즉, 롤드컵 결정전에 출전한 팀 중 객관적인 전력이 최하위로 평가됐다. DK는 첫 경기에서 LSB를 손쉽게 잡아내며 3시드를 따냈고, DRX는 상위 팀인 KT전과 LSB전에서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승리하며 가까스로 롤드컵 행 막차를 탔다.

DRX는 힘겹게 올라간 롤드컵 본선에서도 불안정한 경기력을 보였다 C조에 배치돼 초반 LEC(북미 리그) 최강팀인 ‘Rogue’와 우승 후보 ‘TES’에 패배하는 등 휘청였지만, 이후 반등하며 결과적으로는 C조 1위로 8강전에 진출했다. 이후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승리하며 기적 같은 결승 진출을 일궈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Kingen’ 황성훈의 활약 

이번 대회의 MVP는 DRX의 탑 라이너 ‘Kingen’ 황성훈이 수상했다. 황성훈은 사실 팀이나 리그 내에서, 심지어 이번 대회의 결승 이전까지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지난 2017년 프로에 데뷔해 APK Prince, KT, BLG에서 활약하는 등 잔뼈가 굵은 탑라이너지만, 평소 조용한 성격인 그에 비해 팀에는 스타성을 가진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피지컬을 앞세워 공격적인 플레이로 게임 초반을 설계하는 ‘Pyosik’ 홍창현 △LPL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뒤 올해 LCK에 입성해 좋은 폼을 보여준 ‘Zeka’ 김건우 △‘Faker’ 이상혁과 함께 리그오브레전드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Deft’ 김혁규 △‘롤 도사’라는 별명을 얻은 ‘BeryL’ 조건희까지 다른 4명의 선수가 모두 주목받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황성훈은 결승 이전까지는 탱커 챔피언을 주로 맡으면서 팀을 든든하게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그는 ‘마스터 오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답게 주력 챔피언인 ‘오른’으로 팀을 굳건하게 받치며 김건우의 슈퍼플레이를 더 부각하는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런 황성훈이 결승전에서는 완벽한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대회 동안 ‘OP’(능력치가 좋아 전략 싸움의 핵심 되는 챔피언)로 여겨졌던 아트록스가 8강 및 4강전을 거치며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고 판단돼 서서히 밴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성훈은 자신 있게 아트록스를 꺼내 들었고, T1의 ‘Zeus’ 최우제가 상성이 좋은 피오라와 그웬으로 응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발전부터 본선 리그전 및 토너먼트 속 준결승까지는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미드라이너 김건우, 그리고 조건희의 뛰어난 센스플레이와 경험에서 나오는 오더가 DRX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결승전 자체는 황성훈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DRX의 바텀 듀오는 ‘Gumayusi’ 이민형과 ‘Keria’ 류민석으로 결성된 롤드컵 최강의 바텀 듀오를 상대로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김건우도 살아있는 전설인 이상혁의 관록 앞에서는 고전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황성훈의 아트록스는 날아다니며 게임을 주도했다.

 

살아 있는 역사, ‘Deft’ 김혁규의 생애 첫 우승 

이번 DRX의 우승은 과정 자체로의 감동도 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스토리 또한 감동적이다. 김혁규는 자타공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여겨지는 선수이다.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만 활약하며 전 세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경기 최다 킬 기록과 전 세계 최초 리그 통산 3000킬 기록을 보유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이다. 그는 LPL의 EDG, LCK의 △삼성 갤럭시 △한화생명 E스포츠 △킹존 E스포츠 등 다양한 팀에서 10년간 활약하며 LCK 우승과 LPL 우승을 2회씩 경험하며 MVP로도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막바지에 다다르는 그의 경력에는 ‘롤드컵 우승’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없었다. 결승에서도 바텀 라인의 순수 2대2 싸움에서는 다소 고전했지만, 교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DRX의 기적 같은 우승에 힘을 보탰다.

낭만이 있는 DRX의 우승 과정을 보며 DRX를 응원하는 팬들도 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가운데, 아쉽게도 내년에는 모두가 함께하는 DRX를 볼 수 없을 전망이다. 우승의 주역인 코치진 및 주전 5인이 모두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각 선수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역대급 명승부를 펼치며 꼴찌의 반란을 보여준 전 DRX 선수들의 앞날을 기대한다.